수상집 1집 '주제와 변주'
 

피아노로 기초적  연마를

 ―음악가가 되려는 학생들에게―

나  운  영

   연주가, 작곡가, 평론가를 가리켜 흔히 음악가라고 부른다.  물론 연주가, 작곡가, 평론가의 분야는 모두 다르긴 하나 결코 작곡 이론을 모르는 사람이 연주가가 되거나 연주를 못하는 사람이 작곡가가 되거나 또는 연주도 작곡도 못하는 사람이 평론가가 되는 것은 아니다.
   다시 말하면 작곡 이론을 모르고서는 좋은 연주를 할 수 없는 일이며,  연주에 경험이 없거나 적어도 피아노(또는 오르간)를 잘 칠 줄 몰라서는 좋은 작품을 쓰기 힘들 것이며,  더욱이 연주나 작곡에 경험이 없이는 올바른 평론을 할 수 없는 일이다.  이것은 극히 상식적인 말이나 오늘날 우리나라에서는 불행하게도 그렇지 못한 것이 도리어 상식(?)으로 되어 있는 까닭에 사이비 음악가들로 말미암아 정상적인 음악 발전에 큰 지장이 된다고 말할 수도 있는 것이다.  제삼자가 볼 때 음악가의 생활은 마치 여름날의 매미와 같이 즐거운 것만 같이 보일지 모르나 그 이면에는 여름날의 개미 이상의 피땀을 뿌리는 노력과 고생이 숨어 있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할 것이다.  그러고 보면 음악가란 자기를 희생하여 남을 즐겁게 해 주는 사람을 말하는 것이므로 그 자신은 행복스럽지 않을지도 모를 일이다.  저 유명한 아우어 교수의 말대로 「음악은 기술이 끝난 데서부터 시작된다」고 하겠지만 음악가들은 누구를 막론하고 첫 단계인 이 기술연마에 인생을 흘려 보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니 적어도 음악가가 되려는 학생이라면 누구나 먼저 굳은 각오가 있어야 할 것이다.
   음악가가 되려면 그 기초 훈련만 하더라도 시창, 청음, 음악통론, 화성학, 악식론, 음악사, 피아노 기술 등 여러가지가 있으나 그 중에서도 가장 기초가 되는 것은 무엇보다도 시창과 피아노 기술일 것이다.
   시창이란 어떤 곡을 보든지 그 즉시로 음정이나 박자, 리듬을 정확하게 노래할 수 있는 기술을 말한다.  이것은 비단 성악을 전공하는 사람뿐만 아니라 기악 연주가, 작곡가, 평론가 등 그 어느 누구든지 연마해야 하는 기술이다.  그러므로 이 기술을 연마하려면 「코르위붕겐」 제1권이나 「쏠페지」 또는 「콩코오네」 등의 교칙본을 통해서 계단적으로 훈련을 쌓아야 한다.
   다음으로 피아노 기술은 피아니스트가 되려는 사람은 물론이고 작곡가나 지휘자, 성악가, 평론가, 바이올리니스트 까지라도 모두 공부해야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피아노는 화성악기이므로 음악의 3대요소 가운데의 하나인 하모니를 맛보려면 반드시 이 피아노를 연주할 수 있어야  할 것이며,  거의 대부분의 곡조가 피아노 반주로 작곡되어 있고 특히 작곡에 있어서도 실내악곡은 물론 관현악곡까지라도 먼저 피아노곡으로 데상을 하는 것이 상식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적어도 음악을 본격적으로 연구하려면 무엇보다도 이 피아노를 마스터해야 하는 것이 절대적 조건이다.  외국의 성악가들은 자기 자신이 피아노 반주를 치며 노래를 하거나 학생들을 지도하는 것이 보통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부끄럽게도 겨우 멜로디밖에는 칠 수 없는 성악가가 분명히 적지 않은 것을 발견하게 될 때 과거의 교육의 결함을 절실히 느끼게 된다.
   또한 작곡가의 경우를 생각해 보더라도 적어도 자기가 작곡한 곡쯤은 자기가 피아노를 연주할 수 있어야 할 것이어늘 피아노 연주는 고사하고 피아노 반주곡 조차 온전히 칠 수 없는 작곡가가 엄연히(?) 있는 것은 위에서 말한 멜로디밖에는 칠 수 없는 성악가의 경우 이상으로 기이한 일이라 아니할 수 없다.
   다음으로 평론가란 연주가의 연주와 작곡가의 작품을 이론 정연하게 비평하여 올바른 방향으로 그들을 지도 육성해야 할 책임이 있는 것이므로 평하기 전에 먼저 그 곡조 자체를 작곡학적으로 분석할 수 있어야 할 것이며,  어떠한 곡이라도 그것을 피아노로 연주해 보아 실제로 들어본 뒤가 아니면 제 3자의 연주나 작품의 옳고 그름을 판단키 어려운 일이다.  자신이 피아노 연주를 통해서  작곡학적으로 그 곡조를 분석해 보지 못하고 흔히 레코드만을 통해서 몇번 들어보고 그 연주를 평하거나 특히 신작 발표에 있어서 작곡자의 악보를 한번 보지 못하고 대담하게도 그 작품을 평한다는 일은 우리나라에서나 볼 수 있는 일일 것이다.  이것은 대담하다는 것보다 경솔하고 무책임한 일이며 큰 죄악이라고 보아야 마땅할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시창과 피아노를 통해서 기초적인 기술을 연마하라」
 「음정감, 리듬감, 화성감을 시창과 피아노를 통해서 훈련 받는 것만이 유일의 바르고 또한 빠른 길이다」
   이것이 음악가가 되려는 학생들에게 권하고 싶은 나의 말이다.

 <  1955.  8. 학도주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