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집 1집 '주제와 변주'
 

한국교회음악의 진로

나  운  영

   민족성과 시대성을 떠난 작품은 진정한 의미에서의 작품이라 할 수 없으며 또한 이 민족성과 시대성이 희박한 작품이 위대한 작품이 될 수 없는 것임은 하나의 상식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민족성을 망각해서는 안 될 것이고 더욱이 이를 무시해서도 안 될 것이다.
   그러면 과연 민족성과 시대성이란 무엇을 가리키는 것일까 ?
   이는 두말할 것도 없이 20세기 후반기에 태어난 한국사람으로서는 마땅히 「한국적인 현대음악」 내지 「현대적 한국음악」을 창조해야 한다는 것이다.  즉 다른 나라의 옛 것을 맹목적으로 모방, 추종하지 말고 우리의 것을 찾아내자는 것과 시대조류를 바르게 인식하여 무의식적으로라도 이에 대하여 역행하는 일이 없도록 하여야 한다는 뜻이다.  하기야 한국적인 동시에 현대적인 작품을 써야 된다는 데 대하여 반대할 사람은 없을 것이나 우리들의 주변에는 스스로 혹은 부지불식간에 이를 반대하는 편에 서 있는 절대 다수의 작곡가가 있는 것만은 또한 사실이다.

   그러면 또 그 원인은 무엇일까 ? 이는 첫째로 작곡기법이 미숙한 탓과 둘째로 그 미숙한 점을 합리화시키려 드는데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잠깐 한국교회가 현재 사용하고 있는―한국사람의 곡이 단 한 장 <금주가> 밖에 들어 있지 않은―합동찬송가 중에서 먼저 비교적 서양적 색채가 농후한 것을 지적해 보는 것도 과히 무의미한 일은 아닐 것이다.
   즉    19장 (면류관 가지고 주 앞에 드리세)
           31장 (저 아침 해 뜰 때 신선한 맘으로)
           97장 (고요한 밤 거룩한 밤)
           99장 (오 베들레헴 작은 골 너 잠들었느냐)
         388장 (예수님의 귀한 사랑 심히 사모합니다)
         517장 (하나님 허락하심에 주 팔리시던 날 밤에)
         567장 (종소리 크게 울려라 저 하늘 끝까지 퍼지게)

    다음에는 비교적 동양적인 색채가 농후한 것을 지적해 보기로 한다.
    즉   95장 (주 예수의 강림이 불원하니)
         192장 (웬말인가 날 위하여 주 돌아가셨나)
         227장 (웬말인가 내 형제여 주 아니 믿다가)
         240장 (어지러운 세상중에 기쁜 소리 들리네)
         521장 (아무 흠도 없고 거룩 거룩하신)

   이상 열거한 곡을 통하여 무엇이 서양풍이고 또 무엇이 동양풍인가를 누구나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우리 한국사람으로서는 우리의 생리에 맞는 동양적 색채가 농후한 것을 작곡하여야 될 것은 더 길게 말할 필요조차 없는 일이나 다만 위에 열거한 곡들이 모두 시대적으로 볼 때 너무도 낡아 빠진 것이라는 점이 또한 문제가 된다.  즉 다시 말하면 리듬, 멜로디, 화성 등에 있어서 좀더 새로운 스타일이 절실히 요구된다는 것만은 알아야 할 일이다.
   다음에는 한국 교회음악의 방향에 대하여 생각해 보기로 한다.  우리의 국악은 아직도 이론적 체계가 서 있지 못하므로 먼저 양악의 이론을 한국적으로 섭취하여야 할 것이나 물론 이것도 고전음악에서 그칠 것이 아니라 낭만, 근대, 현대음악에 이르기까지 모든 과정을 제대로 밟아야 할 것이며 그 다음에 이것을 토대로 삼아 민족적인 방향으로 코스를 돌려야 될 것이다.  그렇게 하여야만 「민족적인 동시에 현대적인 작품」 또는 「현대적인 동시에 민족적인 작품」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다음에 그 방법에 있어서는 첫째로 현대적인 형식과 내용의 곡을 써야 할 것이고,  둘째로 민족적인 형식과 내용의 곡을 써야 할 것이고,  셋째로는 「현대적 형식과 민족적 내용의 곡」이나 또는 「민족적 형식과 현대적 내용의 곡」을 써야 될 것이다.  앞에서 강조한 바와 같이 민족성과 시대성을 망각하거나 무시해서는 안 될 것은 물론이거니와 작품을 쓰는 데 있어서 그 형식과 내용에 대하여도 이를 소홀히 생각해서는 안 될 것이다.
   나는 위에서 합동찬송가 가운데서 예를 들었다.  이제는 나의 작품 가운데서 몇 가지 예를 들어 보기로 하겠다.  첫째로 <손들고 나아감」은 합동찬송가  262장 가사로 된 것이고,  둘째로 <이제 이곳에서>는 도드리장단으로 작곡된 곡이고,  셋째로 「부활절 칸타타> 중의 <골고다의 언덕 길>은 창극 풍으로 된 것이고,  넷째로 「다윗의 노래> 중의 <시편 23편>은 흑인영가 풍으로 된 것이며,  합창곡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는 현대풍으로 작곡된 것이다.  물론 이런 작품에서 그 시대성을 논하는 것이 다소 무리가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무엇보다도 이것에서 동양적 내지 한국적 정서가 풍긴다는 점만은 누구나 부인 못할 것이다.
   우리는 한국 교회음악의 진로에 있어서 그 방향과 방법을 그르쳐서는 안 될 것이다.  오늘날 예배에 있어서 그 삼분의 이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음악임을 생각할 때 시대적으로 너무도 뒤떨어진 서양적 색채가 농후한 곡만을 모방하여 작곡해야 될 까닭이 무엇인가 ?  독일의 현대작곡가 스토크하우젠은 다니엘서 3장의 가사로 <젊은이의 노래」란 칸타타를 전자음악으로 작곡하고 있는 이때에 현대적 작곡은 경건하지 못하다고 단정하려 드는 것은 매우 어리석은 생각임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외국사람들이 우리네들의 작품을 평하여 낡아빠진 서양풍(Poor Western Style)이라고 하는 것을 우리는 깊이 반성해 보아야 할 것이 아닌가 ?

 <1958. 5.  기독교 사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