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집 1집 '주제와 변주'
 

국악개혁론 7개조
-국악은 원시형태에서 벗어나야 한다-

나  운  영

   국악전성시대는 이미 간지 오래고 지금은 문자 그대로의 국악 수난시대이다.
    8.15 직후에는 자못 국악이 보호되는 듯이 보이더니 오늘날에 와서는 양악(순수음악과 경음악)과 국산 일본색 유행가의 틈에 끼어 지리멸렬되고 말았으니 국가의 응급 조처 없이는 그 발전은커녕, 영영 없어지고 말 비통한 운명에 빠진 국악을 어찌 수수방관(袖手傍觀)하고만 있을 수 있으랴?

   국악이 이와같이 멸망의 길을 걷고 있을 수밖에 없는데는 반드시 그 원인이 있을 것이 아니겠는가?  물론 여기에는 과학적 두뇌를 가진 국악인이 희소(稀少)하다는 점과 소위 아악, 당악, 향악계의 국악인과 속악계의 국악인이-마치 양악에 있어서의 순수음악인과 경음악인과의 관계와 같이-서로 대립되어 있는 관계로 크게 발전되지 못하는 점 등등도 원인이 될 수 있는 것이나 나는 소위 양악인 중의 한 사람으로서 그 개선과 세계 진출을 위하여 나의 지론(持論) 7개조를 소개하고자 하는 바이다.
제1조 조율법의 개혁     우리나라 악기의 조율은 순정조(純正調)도 평균율(平均率)도 아니요 중국이나 일본과도 다른 것만은 사실이나 아직도 12율(率)의 진동수가 정확하게는 측정되어 있지 않으므로 연주자의 음감의 차이에 따라 그 조율도 각각 달라 통일이 되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그런데 서양사를 들추어 보면 본래  피타고라스조(調)나 순정조이었던 것을 1722년부터 평균율로 개혁 실시한 것이 오늘날까지 그대로 내려오고 있다는 사실이다.
    즉 그 까닭은  피타고라스조나 순정조와 평균율이 보통 사람의 귀로는 그리 크게 틀리게 들리지 않을 뿐만 아니라  피타고라스조나 순정조로는 전조(轉調)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선율적으로나 화성적으로 보아서는 다소 결함이 있더라도 평균율로 통일 실시하게 된 것이다.
    물론 이와 같이 평균율로 조율했다고 하더라도 현악(絃樂)이나 성악에 있어서는 되도록 순정조에 가깝도록 조절하여 연주하는 것이 원칙으로 되어 있는 것을 생각할 때,  우리도 일단 평균율로 조율해 놓되 실제 연주에 있어서는 우리 조율에 맞도록 몇 개의 음을 다소 조절하는 것이 현책(賢策)이라고 생각한다.  다행히도 국악기 중에는 건반악기가 없을 뿐만 아니라 관악기에도 건(鍵)장치가 없으므로 반음보다 더 좁은 음정은 용이하게 조절할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국악기를 평균율로 통일시킨다면 서양악기와도 자유로 합주할 수 있으므로 국악발전에 일대 서광(瑞光)이 비치게 될 것이 분명하다.

   제2조 기보(記譜)법의 개량(改良)     오늘날 국악에 있어서는 가장 개화됐다고 하는 정간보(井間譜)를 사용하고 있으나 이것은 단지 그 선율의 줄거리만이 표시될 뿐 상세한 것은 도저히 기보될 수가 없다.  그런데 양악사를 들추어 보면  알파벳에서  네우마(neuma)를 거쳐 오늘날의 오선보(五線譜)가 완성된 것이니 우리도 오선보를 채용해야 된다는 것을 역설하는 바이다.
   다만 평균율적이 아닌 음은 ↑또는 ↓표로 표시하면 될 것이다. (이것은 헝가리, 체코는 물론이고 여러 나라에서 사용하고 있는 부호이다).  그 밖에 장식음을 비롯하여 강약, 속도, 발상에 관한 부호(이태리말로된 부호가 아님)와 반복, 생략기호 등도 양악의 그것을 그대로 쓸 것이며,  다만―양악의 가지가지의 장식음과 전혀 다른―국악 특유의 장식음은 그 부호를 제정하여 통일시켜 사용해야 할 것이다.

   제3조  악기제작법의 개량    우리나라 악기는 악기마다 그 규격이 동일하지 못한 것이 많을 뿐만 아니라 특히 완전8도가 맞지 않는 것이 있으니 제1조에서 상술(詳述)한 바와 같이 먼저 평균율로 고치는 것이 절대로 필요하며,  더욱이 양금은 과를 끊어서 각 음이 정확하게 조율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며,  아쟁은 개나리 막대기로 줄을 긁음으로써 희한한 잡음이 나게 되니 이를 양악기의 더블베이스의 활을 사용하는 것이 효과적이며,  관악기는 가령 대금, 중금, 소금처럼 한 악기를 각각 세 가지씩 만들어 마치 양악의 2관편성이나 3관편성의 관현악과 같이 만들 수 있게 하고 건(鍵)을 장치하여 음역을 넓힐 것이며,  현악기는 가령 가야금을 소, 중, 대, 특대로 만들 것이다. 그리하여 마치 양악의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더블베이스와 같이 가야금 자체만으로도 사중주 또는 오중주를 할 수 있도록 제작하는 것이 필요하며,  아울러 현악기에 있어서는 마이크 없이는 소리가 약하니 그 공명(共鳴)이 잘 될 수 있도록 개량해야 될 것이다.
   제4조  연주법의 개혁    창(唱)에 있어서의 발성법을 포함하여 국악기의 소리 내는 법에 대해서는 각기 많은 비법이 있을 것이나 마치 양악에 있어서의 현악기의 보잉(運弓法), 관악기의 텅잉(單切法과 複切法)을 비롯하여 리드미크(韻律法), 아고기크(速度法), 프레이징(句節法)등의 이론이 확립되어 좀더 예술적으로 연주 될 수 있게 해야 할 것이다.
   제5조  화성화(和聲化)에 대하여     흔히 말하기를 양악은 입체적이어서 화성이 있고 동양음악은 평면적이어서 화성이 없다고 함으로써 동양음악 내지 한국음악의 특이성을 자랑하기까지 하는 사람이 많은 모양이나 이것은 그릇된 견해일뿐더러 도리어 국악을 위하여도 수치스러운 말이라 아니할 수 없다.
    도대체가 화성이 없는 음악은 원시음악에 지나지 않는 것이며 이는 아직도 화성법이 연구되지 않은 까닭이요 결코 화성이 불필요한 까닭은 아니다. 이제 여기서도 양악사를 들추어  보면 먼저 모노디(monody, 單旋音樂)가 올, 기눔,  포부르동(fauxbourdon),  지멜로 발전되어 화성법이 완성되었고 헤테로포니(heterophony),  디스칸투스(discantus) 등이 발전되어 대위법이 완성된 과정을 생각할 때 우리나라의 음악은 아직도 모노디나 헤테로포니의 상태에 머물러 있는 것이 분명할 뿐이다.  즉 아직까지도 한 선율을 화성반주 없이 연주하거나(모노디),  여러 악기로 꼭 같이 연주할 때에 선율을 약간 수식하거나 일시적으로 음을 달리 연주하는 폴리포니의 원시형태(헤테로포니)에 머물러 있으니 이는 하루 바삐 화성화해야 할 것이다.  이에 있어서 서양 고전 화성인 3도화성만으로는 안 될 것이며 부가(附加)화음, 4도화성 등 근대화성을 절충 사용하여 선율에 잘 부합되는 화성을 붙여야 될 것이다. 다만 선율에는 어느 정도 그 배경으로서의 화성이 내포되어 있는 것이 상례이니 선율을 더욱 연구하여 화성법을 발전시켜야 할 것이다.  오늘날 화성이 없는 음악은 원시음악으로 규정되어 있는 만큼 국악을 화성화해야 한다는 것은 나의 7개조 중 가장 강조되는 점이다.

   제6조 창작에 대하여    국악은 본래 그 악곡의 수가 많았던 모양이나 오늘날 그 대부분은 없어졌고 곡명 만이 전해 내려올 뿐이며 그나마 현재 남아 있는 것들도 완전히 녹음 채보되어 있지 않으므로 이를 작곡학적으로 연구하여 새로이 작곡하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며 간혹 몇몇 국악인이 작곡했다고 하는 곡을 들어 보면 재래의 것 그대로의 원시형태에 머물러 있는 정도이니 이는 분명히 양악인들이 우리의 전통적인 고전음악의 내용과 형식을 상세히 연구하여 화성화된 완전한 예술음악을 작곡해야만 될 것이다.
    따라서 양악인은 먼저 속악, 향악, 당악, 아악의 순으로 국악을 채보하고 작곡학적으로 분석 연구하여 편곡,편작곡, 작곡할 수 있도록 돼야 할 것이며 시대사조(時代思潮)에 따라 좀 빠르고 경쾌하고 변화가 많은 곡을 작곡해야 할 것이다. 이에 있어서 리듬, 선율,화성뿐만 아니라 특히 악식에 있어서도 국악의 독특한 악곡형식에 의한 작곡은 물론이고 양악의 론도형식이나 변주곡형식,소나타형식 등등에 의한 창작도 있어야 할 것이다. 그밖에 소나타, 심포니,콘체르토,조곡(組曲),푸가 등 모든 종류의 음악도 작곡돼야 할 것이다.  

   제7조 교육법에 대하여     국악이 오늘날까지 발전되지 못한 원인 중의 하나는 교육법의 결함일 것이다.  즉 구전심수식(口傳心授式)이어서 능률이 나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므로 일체의 국악곡은 오선보로 채보하여 가르칠 것이며,  특히 기악교육을 위해서는 교칙본을 만들어서 계단적으로 용이하게 습득할 수 있게 해야 될 것이며 , 감상교육에 있어서나 가창,  기악교육에 이조,  고려조,  삼국시대, 삼한시대 음악의 순으로 현대에서 고전으로 또는 속악,  향악,  당악,  아악의 순으로 역행 지도 하는 것이 절대로 필요하다는 것을 나는 주장한다.
    왜냐하면 양악에 있어서는 옛날부터 오늘날까지 음악이 비상히 변천 발전되었는데도 불구하고 ―고대음악부터 가르치기 시작하지 않고― 고전파 음악부터 시작하는데 국악은 첫째로 악곡 수가 적고 둘째로 전혀 창작이 중단상태에 빠져 있으니 만큼 현대인의 감정에 맞는 속악부터 또는 이조음악부터 가르치는 것이 배우기가 쉬울 것이다.
   여기서 나는 감상교육에 있어서 신화적인 해설에 그치지 말고 음악 자체(리듬, 멜로디,  화성,  악식, 관현악법)에 대한 해설을 해야 될 것이라는 점을 첨가해서 말하고 싶다.

    이상으로 나는 조율법,  기보법,  악기제작법, 연주법,  화성화,  창작,  교육법에 관해서 그 개혁을 역설하였다.  이것은 절대로 국악을 전적으로 무시하거나 경시하는 태도에서 쓴 것이 아니다.  나는 국악을 골동품으로 비유하고 싶다.  골동품은 무한한 가치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나는 골동품 중에서도 국보적 존재인 국악을 어디까지나 높이 평가하는 나머지 보다 큰 발전을 위하여 그 개혁을 주장한 것이다.  마땅히 국악은 원시형태에서 벗어나야 할 것이며 향토예술로서 겨우 명맥을 유지함에 그쳐서는 안 될 것이다.
    끝으로 이 개혁론은 첫째로 국악기만으로 연주되는 국악 자체를 개혁하여 「신한국고전음악」을 만들기 위한 것과,  둘째로 국악기와 양악기를 합주 절충시켜 「신한국음악」을 만들기 위한 것과,  셋째로 양악기만으로 연주하여 국제성을 띤 「한국현대음악」을 만들기 위한 것이다.  하루 바삐 국악이 그 원시형태에서 벗어나 위에 말한 「신한국고전음악」,「 신한국음악」,「한국현대음악」이 완성되기를 충심으로 바라마지 않는 바이다.

〈1957.5. 서울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