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집 1집 '주제와 변주'
 

국민개창(國民皆昌)운동을 제창(提唱)함

나  운  영

   국민개창의 필요성을 운운할 시대와 시기는 이미 지나간지 오래다.   8.15  9주년을 맞이한 오늘 아직도 이 땅에는 일제의 식민지 정책의 하나이던 유행가가 분명히 들리고 있다.  다방에서, 요정에서, 공장에서, 학원에서 또 병영에서 . . .
   그렇다고 해서 비단 일본 유행가를 부르는 사람들만을 문제 삼는 것은 아니다.  그 보다도 일본 유행가를 그대로 모방한 국산 유행가의 발호(跋扈)를 방임해 두는 관계당국의 방책을 먼저 문제 삼고자 한다.
   방임은 조장을 의미한다.  해방 후 9년간에 이 나라에서 출판된 군가집, 유행가집과 이에 따라 제작된 유행가 레코드를 보라.  당국자는 다만 가사의 검열에만 그칠 것이 아니라 곡조 자체의 비민족적인 또한 퇴폐적인 정서까지도 검토해야 할 것이다.  곡조의 해독이 민중에 끼치는 영향이 가사의 그것에 비하여 훨씬 크다는 사실을 먼저 알아야 한다.

   그러나 또한 이것은 관계당국에게 국민가요의 통제를 요망하는 말이 결코 아니다.  통제를 요하는 단계는 아직도 요원하다.  통제보다 앞서야 할 것은 생산장려다. 통 제는 이따금 생산을 저지시키는 결과를 초래하므로 . . .
   도대체 국민가요의 생산이 활발치 못한 원인이 어디에 있으며 이 노래가 불리어지지 않는 이유가 무엇인가 ?  모든 것을 불문에 붙이고라도 시인과 작곡가와 연주가가 각각 그 분야의 책임을 분담해야 할 것이 아닌가 ?  작사와 작곡과 보급에 이상이 있는 건 아닐까 ?
   시인들은 추상적인 내용,  과히 중요치도 않은 형용사를 나열하여 자수(字數)를 채우는 습성 등을 버리고 무엇보다도 대중의―평이하고도 솔직한 말로 박력있고 지도이념이 뚜렷이 나타난 가사를 자발적으로 작곡가에게 제공해야 할 것이며,  작곡가는 극히 비근한 예로 흑인영가, 불란서의 「샹송」이나 애란(愛蘭), 소격란(蘇格蘭), 하와이 민요 등과 특히 우리나라의 민요, 잡가, 신 민요, 창가 등을 적극 연구하여 우리 민족의 생리에 맞는 작품을 솔선 생산하여 연주가에게 인계해야 할 것이며,  연주가는 이것을 들고 민중 속으로 파고 들어 애창보급에 헌신해야 할 것이다.
   이 3자가 연합하여 유기적인 활동을 개시해야 될 것이나 이것이 이상론으로 그칠진댄 차라리 1인 2역 또는 1인 3역으로라도 이 국민개창운동을 기어이 전개시켜야만 할 시기가 당착했다고 나는 생각한다.  왜냐하면 사실상에 있어서 전란  이후로 이 땅에는 국민가요가 없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며 퇴폐적인 일본색 국산유행가가 이 이상 더 계속된다면 조국과 이 민족의 장래가 가히 우려되겠기에 . . .

   생각컨데 국민개창운동은 일개인이나 일단체 만의 일이 아니다.  이것은 진실로 일대구국운동이며 민족운동이다. 그러므로 이 운동에는 군관민의 차이도 없으며,  선후도 없을 것이며,  더욱이 방해공작이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오직 이것만이 조국의 통일, 재건, 부흥을 위한 운동이라고 확신하는 사람들이 중심이 되어 삼천리 도처에서 이 운동이 부단히 전개되기를 조국과 민족은 요구하고 있다.
   국민개병을 주창하고 있는 오늘 국민개창을 아울러 고창함으로써 조국과 민족에 이바지하는 길―이것이야말로 시인과 음악인 뿐만 아니라 전 국민에게 부여된 특권인 동시에 조국과 민족의 이름으로 발하여지는 지상명령이다.

 < 1954.  8. 서울신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