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집 1집 '주제와 변주'
 

일본색 일소의 재론

나  운  영

  ' 이승만 정권 하에서는 엄중한 단속으로 인하여 빛을 보지 못하던 「일본 레코드」가  4.19 이후 경찰의 단속이 소홀해진 틈을 타서 시정에 범람하고 있어 뜻있는 이의 이맛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 . .'
   이상은 '부산에 일본레코드 범람. . . 버젓이 가두에서 판매 . . . 녹음기 등으로 무진장 재생까지'라는 제목으로 동아일보( 9월 8일자 )에 게재된 기사의 일부이다.

   '4.19 이후에 달라진 것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일본유행가 레코드를 다방, 요정 등에서 공공연하게 틀고 있는 사실이다'라고 나는 대답한다.  즉  4.19 이전에는 이별의 부산정거장 등 대중가요중 절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국산 일본색 유행가」를 비롯하여 일본유행가의 가사 만을 빼버린―기악곡으로 된 레코드음악이 다방, 요정, 가두에서 들려오더니 요즈음에 와서는 「유라꾸쪼(有樂町)데 아이마쇼」등 일본사람이 작사, 작곡하고 일본사람이 노래한 진짜 일본음악 레코드를 다방에서 틀어 놓고 자못 일제가 그리운 듯―지긋이 눈을 감고 감상하는 50대의 장년층과 이 레코드를 따라 함께 노래를 부르며 즐기고 있는 40대의 청년층을 흔히 볼 수 있으니 이는 도저히 웃어 넘겨 버리거나 묵과할 수 없는 중대한 일이라 아니 할 수 없다.
   하기야 이승만 정권하에서도 공보실 제정의 국민가요 「백만인의  노래」 가운데에는 소위 대중가요 작곡가들에 의해 작곡된 일본색 가요가 많았었고,  일본색 유행가 레코드가 문교장관 특상을 받은 일까지도 있었으며,  한편 HLKA를 통하여 일본색 유행가가 대대적으로 방송보급되었고 ,  더욱이 「대북방송」에까지 방송됨으로써 남한의 부패상을 노정(露呈)시킨 사실 등등이 있었으나 그래도 그때에는 방일(防日)이라는 국시(國是) 아래 문교부에서 민족적이며 건전한 국민가요, 신작민요, 동요를 모집 제정하여 「국민개창(皆唱)운동 추진회」와 KLKA 등을 통해 보급시키는 등―비록 형식적일망정 일본색 일소(一掃)에 대한 조치가 취해졌던 것 만은 사실이다.
   일본색 유행가와 진짜 일본음악이 일본고유의 민족음계인 「미야꼬부시」(都節)로 작곡되었다는 것에 대해서 기회가 있을 때마다 장소를 가리지 않고 외쳐 왔으므로 재론하는 것 자체가 민망스럽긴 하나 재론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 더욱 원망스럽다.
   즉 음악에 있어서 일본색은 게다짝 소리를 연상시키는 리듬이나,  멜로디의 진행,  이상야릇한 창법 등에서도 완연히 나타나나 무엇보다도 「미. 도. 시. 라. 파. 미」로 된 음계에서 손쉽게 찾아낼 수 있다.  따라서 「미. 도. 시」, 「시. 라. 파. 미」. 「라, 파, 미」, 「미, 파, 라」, 「라, 시, 도, 미」 등으로 된 곡은 모두가 일본색이라고 단정할 수 있는 것이다.  시험 삼아 아래의 세곡을 비교해 보기로 하자.

    '라. 라. 시, 라. 라. 시, 라. 시. 도. 시, 라시라파, 미. 도. 미. 파, 미. 미. 도. 시 . . .'[사꾸라]
    '도. 시. 도. 미. 파, 미. 도. 시. 라. 시, 도. 시. 라. 파, 미. 도. 미. 파. 미 . . .' [이별의 부산정거장]
    '미. 도. 미. 도. 시, 라. 파. 라. 파. 미, 라. 미. 라. 시. 도, 시 . . . '[사께와 나미다까]
    위의 세 곡은 모두가 「미야꼬부시」로 작곡되었으므로 일본색 정서가 진하게 풍긴다는 것을 아무도 부인 못할 것이다.
   '과학에는 국경이 없다.  그러나 과학자에게는 국경이 있다' (파스퇴).
   이 말을 '음악에는 국경이 없다. 그러나 음악인에게는 국경이 있다'라고 바꿔 볼 때 자칫하면 잘 못 생각이 들기가 쉽다.  즉 '음악에는 국경이 없다'고 했으니 '일본색을 운운할 필요조차 없지 않은가'고 반문하기 쉬우나 그 다음 말에 '음악인에게는 국경이 있다'라 했으니 민족적으로나, 국가적으로나 금하는 일은 하지 않아야 될 것이 아닐까 ?  일본색이 민족의식을 좀먹게 할 뿐만 아니라 염세적인 길로 우리를 빠뜨리고 만다는 것을 조금이라도 깨닫는다면 양국간의 국교가 정상화될 때까지는 제아무리 음악에 국경이 없다 하더라도―민족적 양심에 비추어―결단코 물리쳐야 할 일이 아니겠는가 ?

   요즈음 일본색 일소(一掃)를 일소(一笑)하는 듯 일본문학전집이 출판되고 일본영화의 수입까지 화제에 오르고 있는가 하면 일본사람이 주인공으로 등장하고 일본국가(기미가요)와 민요가 그대로 나오는 푸치니 작곡의 오페라  <나비부인>(Madam Butterfly)을 공연코자 준비중인 단체가 있다는 것을 전해 들을 때 우리모두가 마땅히 자숙, 자성해야만 될 것이라는 것을 재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
   끝으로 수입이란 말은 수출을 전제로 하고 말해야 될 것이다.  수출 없는 수입이 경제파탄을 초래한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향악, 속악 등 민속적인 요소를 토대로 하여 작곡된 한국적 현대음악으로서의 민족음악을 먼저 수출한 다음에 수입을 논해야 될 것이다.  여기서 나는 민속음악과 민족음악을 좀더 분명히 규정 지어 놓을 필요를 느낀다.  비유컨데 민속음악은 원료에 지나지 않는 것이므로 이것에 의한 생산품을 수입해야 될 것이 아니겠는가 ?  원료를 외국에 흘려 내보내거나 팔아 먹고, 그 대신 우리에게 필요가 없을 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 큰 해독을 끼쳐주는 물건을 그나마도 밀수입한다는 것은 망국적 행위요, 매국행위라 아니할 수 없다.  따라서 밀수입한 일본음악의 레코드를 사서 틀어 놓고 즐기는 자는 그것을 밀수입한 상인과 공범의 벌을 면키 어려울 것이다.

  < 1960. 9. 연세춘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