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집 1집 '주제와 변주'
 

나의 음악수첩

나  운  영

   바하(J.S.Bach 1685 ∼ 1750)와 헨델(Handel 1685 ∼1759)은 같은 독일사람이나 그들의 작풍은 매우 대조적이어서 바하가 기악적, 내면적, 대위법적이라면,  헨델은 성악적, 외면적, 화성적이라고 흔히들 말한다.  그러나 그보다 바하는 독일적이요, 헨델은 이태리적이다 라고 나는 말하고 싶다.  즉  헨델은 이태리식 오페라 작곡법을 배워 거의 일생을 이태리와 영국에서 지냈으므로 단지 그가 독일사람이라 해서 그의 작품을 독일적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한편 소위 레코드음악 평론가들은 <마태수난곡>을 가리켜 바하의 대표적 작품이라고들 하나 나는 그보다는 <미사곡>(B단조)을 훨씬 높이 평가하고 싶다.  따라서 그의 <미사곡>과 헨델의  오라토리오< 메시아>를 교회음악의 최고봉으로서 인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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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이든(Haydn 1732∼1809)과 모짜르트(Mozart 1756∼1791)와 베토벤(Beethoven 1770 ∼1827)은 비엔나에서 같이 활약했던 것이다.  그러나 하이든과 베토벤에 비하여 모짜르트의 작풍은 이태리적이었다.  모짜르트는 교향곡에서부터 실내악, 오페라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작품을 남겼으나 그의 최대걸작은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돈 죠반니>,<마적>이다.  한편 하이든의 음악은 단순 명쾌한데 비하여 모짜르트의 음악은 아름답고 우수에 가득차 있으며 베토벤의 음악에는 반항정신이 넘쳐 흐르고 있다.  교회음악인들은 하이든의 오라토리오 <천지창조>를 내세우려 드는 모양이나 이것은 멘델스존의  오라토리오 <엘리아>와 함께―헨델의 <메시아>와는 비교도 안되는 수준이하의 작품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교향곡, 현악 4중주곡 등 수많은 그의 작품중에서 나는 <첼로협주곡>을 가장 사랑한다. 그리고 모짜르트의 기악 작품 중에서는 <교향곡 제 41번(주피터)>를, 베토벤의 교향곡 중에서는 <제 3번(영웅)>을 최고의 작품으로 인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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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슈베르트(Schubert 1797∼1828)와  슈만(Schumann 1810∼1856)은 독일예술가곡의 대표자로 알려져 오고 있다. 그러나 슈베르트는 예술가곡의 창시자로서의 공적을 높이 평가하는 것 뿐이고 그의 작품으로서는 <마왕>을 제외하고는 거개가 민요의 형태에서 그리 벗어나지 못한 감이 든다. 이에 비하면 슈만의 연가곡 <시인의 사랑>,<여인의 사랑과 생애> 등은 멜로디부터가 소위 창가풍이 아니고 특히 반주가 예술적이어서 마치 「노래와 피아노를 위한 쏘나타」의 감을 준다. 그러나 나는 슈만을 예술가곡 작곡가로만 생각하고 싶지는 않다. 그의 <바이올린협주곡>을 최대 걸작으로 알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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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가니니(Paganini 1782∼1840)와 베를리오즈(Berlioz 1803∼1869)는 리스트(Liszt 1811∼1886)와 함께 그 당시에 일대 쎈세이션을 일으킨 사람들이었다. 즉 파가니니는 바이올리니스트로,  베를리오즈는 관현악 작곡가로서,  리스트는 피아니스트로서 문자 그대로 귀신과 같은 존재였다.  특히 파가니니는 세계적이 아니라 세기적인 바이올리니스트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그를 위대한 작곡가로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다.  그의 작품으로는 <바이올린 협주곡>(5편)과 <24개의 카프리초> 등이 있으나 <카프리초>가 월등히 좋은편이고  <협주곡>은 수준  이하의 작품이다.  따라서 어디까지나 우리는 그를 역사상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로만 추대해야 할 것이다.  한편 베를리오즈는 역사적인 관현악 작곡가라기보다는 표제음악 창시자로서 기악곡에 있어서 새로운 분야를 개척한 점을 높이 평가해야 하는 것이다. 그의 작품으로는 <환상적교향곡>이 아직도 인기를 차지하고 있으나 교향곡 <이탈리아의 해롤드>도 들을 만한 사랑스러운 작품이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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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쇼팽(Chopin 1810∼1849)과 리스트(Liszt 1811∼1886)는 파리악단에서 데뷰한 피아니스트였었다.  실은 쇼팽을 데뷰시킨 사람은 리스트였던 것이다. 쇼팽은 피아노의 시인이었으며,  리스트는 바이올린에 있어서의 파가니니의 기교를 능가할 정도의 테크니션이었다.  그들은 연주법에 있어서나 작풍에 있어서나 너무도 대조적이었다. 좀 심하게 말해서 쇼팽의 음악은 병적이고,  리스트의 음악은  외화내허(外華內虛)란 말로 표현하는 것이 적절하리라 생각된다. 나는 쇼팽의 <발라드 4번>과 리스트의 <교향시 제3번>(전주곡) 만을 높이 사고 싶다.  이 이외의 곡들은 각기 동공이곡(同工異曲)으로 「들려주기 위한 곡」이라기보다는 「연주하는 즐거움을 맛보기 위한 곡」이라고 보는 것이 좋을 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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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그너(Wagner 1813∼1883)와 브람스(Brahms 1833∼1897)는 같은 독일사람이나 그 작풍이 매우 대조적이다.  바그너가 독일적인데 대해 브람스는 보다 헝가리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또한 바그너가 극적인데 비하여 브람스는 서정적이다.  바그너가 진보적이라면 브람스는 보수적이었다.  그 당시 「바그네리즘」이란 선풍이 국내작곡가에게는 물론 전세계의 악단을 휩쓸고 있을 때에 그의 영향을 받지 않는 사람은 브람스뿐이었다고 역사가들은 기록하고 있으나 이것은 매우 과장된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그는 바그너와는 반대로 오페라를 작곡하지 않았으며 실내악곡을 주로 썼던 것이며 절대음악의 길로만 매진했던 것뿐이다.  바그너는 작곡기법상으로 당대와 후세에 큰 영향을 주었고 반면에 브람스는 주옥같은 작품만을 남겨 놓았다고 말하는 것이 타당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브람스 작곡의 <클라리넷 5중주곡>을 <바이올린 협주곡>과 함께―나는 항상 높이 평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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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르디(Verdi 1813∼1901)와 푸치니(Puccini 1858∼1924)는 역사적인 이태리 오페라 작가이다. 그러나 나는 항상 베르디에게서는 독일적인 것을, 그리고 푸치니에게서는 불란서적인 것을 느끼고 있다. 즉 베르디의 작품이 중후한데 비하여 푸치니의 작품은 우아하며, 베르디보다 푸치니가 훨씬 감각적이라는 말로 대신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나는 베르디의 <아이다>와 푸치니의 <나비부인>을 즐긴다. 이 두 작품은 동양적 색채가 진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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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쏘르그스키(Moussorgsky 1839∼1881)와 림스키·코르사코프(Rimsky-Korsakov 1844∼1908)는 러시아 국민악파(5인조) 가운데 가장 큰 공을 세운 사람이었다. 그러나 무쏘르그스키는 보다 진보적이었고,  림스키 코르사코프는 보수적이었다. 그러므로 무쏘르그스키는 감각위주로 작곡했으며,  림스키 코르사코프는 어디까지나 아카데믹한 수법을 구사했던 것이다. 또한 무쏘르그스키는 오페라와 가곡을 주로 썼으며,  림스키·코르사코프는 광범위하게 작곡했으나 관현악법의 대가로서 <세헤라 자데>,<스페인 기상곡> 등 명곡을 남겼다. 더욱이 림스키 코르사코프는 보로딘, 무쏘르그스키 등 동료의 작품을 관현악으로 편곡하여 후세에 남겼으니 그 공을 인정해 주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편곡함에 있어 특히 무쏘르그스키가 과거의 이론을 무시하고 의식적으로 쓴 것을 친절(?)하게도 교과서적으로 뜯어 고쳐 놓았으니 개악(改惡)을 일삼은 셈이다.  한편 무쏘르그스키의 원곡은 드뷔시를 크게 감동케 하여 마침내 인상주의음악을 낳게 된 것이다.  나는 그의 작품 <전람회의 그림>을 라벨 편곡으로 들을 때마다 그 표제음악적 작곡기법에 대해 감탄을 금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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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이코프스키(Tchaikowsky 1840∼1893)와 드보르작(Dvorak 1841∼1904)은 모두가 후진음악국에 속하는 작곡가이다. 그리고 차이코프스키는 그당시 국민악파들로 하여금 절충파란 비난까지 받은 바 있으나 오늘날에는 러시아를 대표하는 작곡가임에 틀림 없고, 드보르작은 스메타나의 영향을 받아 민족적인 작품을 썼으니 서로 흡사한 점이 많은 편이다.  만고에 차이코프스키를 「러시아의 베토벤「이라고 한다면, 드보르작은 「체코의 브람스」라고 하는 것이 적절한 표현이 아닐까 생각된다.  따라서 차이코프스키의 음악은 매우 감격적이요, 드보르작의 음악은 매우 감동적이다. 나는 차이코프스키의 <교향곡 제 5번>과 드보르작의 <첼로협주곡>을 높이 평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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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노(Gounod 1818∼1893)와 생상(Saint-Saence 1835∼1921)은 음악사에 크게 소개되고 있다.  나는 항상 이것이 불만이다.  구노는 교회음악과 오페라를 주로 썼다고 하나 오늘날 연주되는 것은 <파우스트> 뿐이고,  반면에 생상은 <바이올린협주곡 제3번>,<교향곡 제3번>,<피아노협주곡 제2번>,<오페라 삼손과 데릴라> 등등을 남겼으니 이 두 사람을 동등하게 대우한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다.  본래 불란서 사람들은 화려하고 통속적인 구노의 오페라를 좋아하기 때문이기도 하려니와 아마도 그는 <아베마리아>로서 널리 알려진 것이 아닌가도 추측되니 그러고 보면 바하의 덕을 크게 입은 셈이 아닐까 ?  한편 생상은 절충적이란 평을 듣기는 하지만 기법상으로 보나, 작품 자체로 보나 구노와는 비교가 안될 만큼 위대한 존재임을 생각할때 「명성과 실력은 반비례한다」는 나의 지론이 이 경우에 들어 맞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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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랑크(Franck 1822∼1890)와 스크리아빈(Scriabin 1872∼1915)은 모두가 별로 인기가 없는 작곡가라로 말할 수 있다.  즉 그들의 음악은 난해성과 신비성으로 말미암아 생전에는 인정을 받지 못했다고 한다.  그러나 프랑크의 <교향곡>,<교향적 변주곡>,<바이올린 소나타> 등은 날이 갈수록 높이 평가되는 것을 볼 때,  스크리아빈의 경우가 더욱 안타깝다.  그것은 스크리아빈이 드뷔시의 인상주의와 그의 독자적인 무조적 수법을 한데 뭉친 까닭에도 있겠으나 그보다도 근본적으로 그의 음악 자체가 아류(亞流)에 속하기 때문이라는 것을 그의 후계자가 없는 것으로 증명코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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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거(Reger 1873∼1916)와 말러(Mahler 1860∼1911)는 후기 독일낭만파에 속하는 작곡가이다.  그러나 레거는 주로 실내악곡을 썼고,  말러는 주로 대편성의 교향곡을 작곡하였다.  또한 레거가 브람스의 영향을 받은데 비하여 말러는 바그너와 브룩크너(Bruckner 1824∼1896)의 영향을 받았다. 그리고 레거는 오르가니스트로 활약했고,  말러는 오페라 지휘자로 활약했다.  레거의 음악이 반음계적인데 비하여,  말러의 음악은 본질적으로는 전음계적이다.  나는 특히 레거에게 음악이전이란 느낌을 갖곤 한다.  즉 그의 작곡기법은 거의 완벽에 가깝다고도 할 수 있으지 모르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지적작업에 속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줄로 안다.  한편 말러에게는 허세, 과장 같은 것을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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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뷔시(Debussy 1862∼1918)와 라벨(Ravel 1875∼1937)을 거의 같게 취급하는 것은 잘못이다. 드뷔시는 인상주의음악에 속하고 라벨은 신고전주의음악에 속하며, 드뷔시가 불란서적이라면 라벨은 서반아적이다. 그러고 보면 이 두 사람의 음악은 본질적으로 다르다고 말할 수 있다. 드뷔시를 위대한 예술가라고 한다면, 라벨은 위대한 예인(藝人) 즉 「장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것은 <목신의 오후에의 전주곡>과 <볼레로>를 잠깐 비교해 보아도 넉넉히 알 수 있다.  어떤 이는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전곡>을 가리켜 신약성경이라고 했다지만 나는 드뷔시의 <12 전주곡집 제1. 2권>을 신약성경으로 삼고 있다. 그리고 라벨 작품 중에서는 가곡집 <세헤라사데>를 높이 평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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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쉔베르크(Schonberg 1874∼1951)와 바르토크(Bartok 1881∼1945)는 무조음악의 작곡가이다. 그러나 쉔베르크가 세계주의적인데 비하여 바르토크는 민족주의적이며,  쉔베르크가 12음기법이란 조직적인 무조음악을 창조한데 비하여 바르토크는 비조직적인 넓은 의미에서의 무조적음악을 작곡하였다.  나는 쉔베르그의 <현악 5중주곡(淨夜)>을 들을 때마다 그의 음악성에 대하여 재인식을 하게 된다. 즉 그가 절대로 파괴를 일삼는―음악적인 것과는 거리가 먼 작곡가가 아니라는 것을 느끼게 된다.  한편 바르토크의 <콘스라스트스>를 들을 때마다 그의 「재치」에 감탄하게 된다. 그러나 솔직히 말해서 나는 쉔베르크의 <바이올린협주곡>과 바르토크의 <현악 4중주곡 제 1번>을 미칠 듯이 즐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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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로코피에프(Prokoflieff 1891∼1953)와 스트라빈스키(Stravinsky 1882∼)를 가리켜 신고전주의 작가라고 하지만 실은 서로 거리가 멀다고 나는 생각한다. 프로코피에프가 보다 모짜르트적인데 비하여 스트라빈스키는 보다 바하적이고,  프로코피에프의 작품이 선율적인데 비하여 스트라빈스키의 작품은 율동적이다.  또한 프로코피에프의 작품이 상식적이라고 한다면 스트라빈스키의 작품은 매우 개성적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프로코피에프의 <피터와 늑대>,<키제중위 조곡> 같은 것을 근대음악 내지 현대음악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이것은 너무도 조성(調性)이 뚜렷하고 전통적인 화성이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또한 스트라빈스키의 <아폴론 뮤사제트>나 <칸타타>에도 흥미가 없다. 이것은 너무도 시들어 버린 장미와 같은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내가 높이 평가하는 작품은 프로코피에프의 무용조곡 <강철의 걸음>, <바이올린협주곡 제1번>과 스트라빈스키의 <불새>,<결혼>,<병사의 이야기> 등이며 그 중에서도 <결혼>은 가장 나의 맘을 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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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르그(Berg 1885∼1935)와 베베른(Webern 1883∼1945)은 쉔베르그의 수제자였었다. 이 두 사람은 12음기법에 의해 작품을 썼으나 베르그에게는 서정적요소가 강한데 비하여  베베른에게는 그런 요소가 없고, 또한 베르그가 보다 온건한 편이라면  베베른은 매우 급진적이다. 나는 베르그의 <바이올린협주곡>보다는 도리어 <서정조곡>을 더 높이 평가하며, 베베른의 <파싸칼리아  작품 1번>를 들을 때마다 쉔베르그의 <현악 6중주곡(淨夜)>을 들었을 때와 꼭 같은 판단을 내리게 된다. 베베른의 소위 점묘주의(點描主義)음악이 오늘날 이렇게도 현대음악에 큰 영향을 줄 줄은 아무도 몰랐었을 것이다.

        < 1961. 8. 思想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