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집 1집 '주제와 변주'
 

베토벤과 인생고(人生苦)

나  운  영

     악성 베토벤에 관해서는 여러가지로 기묘한 에피소드가 많습니다. 그의 연주회 때에 옆사람과 소곤소곤 이야기하는 귀부인을 꾸짖어 「이따위 돼지같은 것들에게 들려 주기 위한 피아노는 아니다.」라고 말하며 피아노 뚜껑을 닫고 나가 버렸다든가 하면,  이웃집 사람들이나 극장 지배인과도 다투고 심지어 자기를 후원해 주는 귀족들과도 싸우기가 일쑤였고,  보불전쟁 당시에는 불란서 군대의 장교들을 위해 피아노 연주를 강요당했을 때에 단호하게 이를 거절하고  200킬로를 걸어서 비엔나로 돌아 간 일도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어떤 날 그의 하인이 시장에서 곯은 달걀을 사가지고 온 것을 보고 그것을 하나하나 내동댕이친 일이라든가,  요리집 보이가 스프를 퍼주는 법이 되먹지 않았다고 그 보이 머리 위에 뜨거운 스프를 부어 버린 일까지 있었다고 합니다. 그의 괴벽한 성격을 하나 더 폭로한다면 그는 그가 들어있는 하숙집 사람들이 복도에서 마주칠 때마다―그를 존경하는 뜻으로―공손히 절을 하는 것이 귀찮다고 당장에 그 집을 나가 버리기도 했습니다. 그가 아침에 세수를 하고 창가에서 머리를 빗다가 길 가는 사람이 보기라도 하면 소리를 질러 화를 냈다고 합니다. 이렇게 신경질이었고 광증이 나타나서 그의 주위의 사람을 당황케 했습니다. 그러면 그 원인이 어디에 있었을까요 ?

    남에게 굽히지 않는 강한 성격, 경제적인 타격, 사랑에의 실패, 귀족계급에 대한 「이유없는 반항」, 가정교육의 결핍 . . . 등 여러가지 원인이 있을 것이지만 뭐니뭐니 해도 가장 큰 원인은 「귀가 안 들리는 사실」과 「그것을 남에게 숨기기 위하여 고민하는 일」에 있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즉 그는 이 육체적인 조건으로 말미암아 가난과 고독과 불안과 싸우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가 23세때에 유명한 「하인리겐슈타트의 유서」를 쓰고 자살을 기도했던 것도 이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밖에 또 하나의 원인이 있었으니 그것은 조카와 제수(弟嫂)를 둘러싸고 일어나는 여러가지 사건이었습니다. 즉 그가 45세때에 그의 동생이 아홉 살 난 그의 아들 칼을 베토벤에게 맡기고 세상을 떠나게 되자 베토벤은 그를 친자식처럼 일방적으로 사랑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칼은 그를 도무지 이해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도리어 귀찮은 존재로 생각하여 반항을 일삼았고 또 이 사이에 제수가 끼어 칼을 빼 돌리기가 일쑤여서 여러 차례에 걸쳐 서로 재판을 하기도 했고,  더욱이 56세때에는 칼이 자살을 기도하는 등 그를 몹시도 괴롭혔으므로 그의 심적 타격이 날로 심해졌던 것입니다.  이와같이 그는 육체적 조건과 경제적 타격과 심적 고민 등으로 말미암아 드디어 57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나고 만 것입니다.
    그의 후기작품이 매우 심각한 것은 이와 같은 환경 속에서 그 괴로움을 이기려고 발버둥질 쳤던 때문이기도 합니다.  즉 그의 마지막 작품인 6편의 <현악 4중주곡> 작품 127, 130, 131, 132, 133, 135번은 그야말로 모든 인생고를 초월한 음악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의 <제 9교향곡>을 「괴로움을 이긴데서 오는 기쁨의 표현」이라고 말한다면 그의 <현악 4중주곡>―특히 작품 135번은 체념에서 우러나온 종교음악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그는 귀병을 비롯하여 폐염, 황달, 류마치스, 소화불량, 기관지염, 수종, 안질 등을 앓으며 2개월간에 4차 수술을 받았고 자기를 그렇게도 괴롭혔던 칼을 상속인으로 정하는 유서를 쓰고 사라졌습니다.

  <1962. 11.  새교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