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집 1집 '주제와 변주'
 

심로신불로(心老身不老)

나  운  영

   「예술은 짧고 인생은 길다」
   나는 소위 격언이니 금언이니 하는 것을 뒤집어 보기를 즐깁니다. 이것도 말하자면 「이유없는 반항」일는지 모릅니다.
   신로심불로(不老)란 말이 있습니다.
   「몸은 비록 늙었어도 마음만은 아직도 젊다」는 뜻이겠지요. 그런데 여기의 「」을 정력으로 「」을 정열로 바꾸어 생각해 본다면 「정력은 비록 없어도 정열만은 아직도 남아 있다」는 말이 되겠지요.
   이번에는 역설로  심로신불로(不老)란 말을 생각해 봅니다. 「마음은 늙었으나 몸은 아직도 젊다」, 「몸은 아직도 젊었으나 마음은 벌써 늙어 버렸다」, 「정력은 있으나 정열이 식어 버렸다」― 이 얼마나 절망적인 말입니까? 물론 나 자신을 포함해서 오늘날에 우리나라 청년들 가운데는  심로신불로(不老)의 부류에 속하는 자가 의외로 많지나 않을는지요. 젊은이들이 도무지 패기가 없다. 씩씩한 기상이 보이지 않는다. 모두 조로증에 걸린 자와 같다는 말이 들려 오는데 이것은 모두가  심로신불로(不老)를 의미하는 것이라고 보아서 틀림이 없을 것이 아니겠습니까?
   요즈음 「이유없는 반항」이란 말이 거의 유행되다시피 되어 있는데 물론 이것도 큰 문제가 아닐 수 없으나 그 보다도 나는 「이유없는 복종」이 더 큰 문제라 생각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닙니다. 즉―적어도 젊은이에 있어서는―「이유없는 복종」이란  심로신불로(不老)와 일맥상통되는 점이 있다고 할 수 있는 까닭입니다.
   하기야  심로신불로(不老)보다는 나을는지 모르겠으나 예술은 짧고 인생이 길어서는 안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심로신불로(不老)가 되어서는 우리들의 장래가 매우 염려된다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오늘날 우국(憂國)하는 사람은 많아도, 구국(救國)하는 사람은 적고 어떤 일에 있어서 「추진(推進)」을 운동하는 사람은 많아도, 「운동」을 추진하는 사람은 적은 것이 우리나라의 실정이라고 본다면 이 모든 원인이 신로심불로(不老)에 있다고 하기보다는 도리어  심로신불로(不老)에 있다고 단정하는 것이 타당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우리 젊은이들은 먼저 역사적 전통을 올바르게 계승해야 하고 다음에 이를 기초로 하여 끝끝내 민족적인 동시에 현대적인―또는 현대적인 동시에 민족적인 우리의 문화를 새로이 건설해 내야만 될 것이 아니겠습니까?  
   심로신불로(不老)―이것은 죽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끝으로 음악과 관련을 맺어서 생각해 볼 때에 새파랗게 젊은 작곡가가 18세기식 낡은 스타일의 작품을 쓰면서 만족하려 드는 것도 심로신불로(不老)요,  젊은 연주가가 새로운 곡을 연주하려 들지 않고 음악학교 재학시절에 배웠던 것만을 우려 먹으려 드는 것도 심로신불로(不老)요,  더욱이 요즈음 대학생들이 베토벤의 <운명>,슈베르트의 <미완성>,차이코프스키의 <비창>,드보르작의 <신세계> 등을 감상하는 데서 그칠 뿐 전자음악(Elektronische Musik), 구체음악(Musique Concureto), 12음 음악(Dodecaphony, Twelve Tone Music) 등은 고사하고 바르토크,스트라빈스키,드뷔시 등의 작품을 들어 보려고 생각조차 않으려 드는 것도 심로신불로(不老)가 아니고 또 무엇이겠습니까?

 < 1958. 10. 思潮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