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취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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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운 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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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작곡을 하는 사람입니다'란 말과 '나는 작곡가입니다'란 말은 다르다고 생각된다. 즉 전자는 작곡을 취미로 삼는 것이고,후자는 작곡을 직업으로 삼는 것이니 말하자면 전자는 아마요,후자는 프로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나의 취미'라는 제목을 가지고 생각해 볼 때 취미와 직업은 물론 다른 것이기는 하지만 대중가요 작곡가가 아니어서 작곡을 직업으로 삼지 못하고 대학 교수로 겨우 연명을 하고 있는 형편이니 이렇게 생각하면 적어도 나에게 있어서는 작곡이 취미라고 말할 수밖에 없게 된다. 물론 이것이 한국적 특수사정이고 보니 어찌 할 도리가 없으나 작곡가가 작곡을 직업으로 삼고 그 이외의 것을 취미로 삼아 생을 즐길 수 있는 시대가 돌아오기를 참고 기다릴 수밖에 업는 것이 너무도 안타까운 노릇이 아닌가? 문득 '예술을 위한 예술'이란 말이 생각난다. 이 말은 어디까지나 순수한 말이다. 빵을 위해 작품을 쓴다는 것이 순수하지 못하다는 말인데 좀 돌려서 생각하면 우리들의 한국적 특수사정이 도리어 나를 이렇게 순수한 예술가로 만들어 주는 것만 같으니 고소를 금할 수 없다.
나는 몇 가지 취미를 가지고 있다. 남들은 등산이다, 바둑이다, 사진이다,골동품 수집이다,낚시다- 특히 요즈음 크게 빈축을 사고 있는 골프 등을 취미로 삼고 있는 듯하나 등산은 육체적 노동에 속하고, 바둑이나 낚시는 시간이 너무 허비되고, 사진이나 골동품 수집,골프는 돈이 많이 드니 적어도 나에게는 적당치 못하다. 나의 취미의 첫째는 '다방순례'이다.나는 자칭 '커피당 당수'요, '다방조합장'이어서 다방을 순례하는 것이 일과로 되어 있다. 외국 사람들은 작품을 쓰기 위해 여행을 다닌다지만 학교에 매어 사는 나로서는 그런 것은 바랄 수도 없는 일이고 보니 이 다방 저 다방을 찾아다니며 그 분위기에 젖어 작곡 구상을 하는 것으로 만족할 수밖에 없다. 둘째는 '서점순례'이다. 나는 책난봉이어서 귀한 책을 사 모으는 것이 취미이다. 충무로나 세종로의 외국 책방은 물론이고 동대문,청계천 구석구석을 찾아 다니며 희귀서나 진서를 발견했을 때의 기쁨이란 무엇에도 비할 수 없을 것 같다. 셋째는 '추상화 감상'이다. 근대.현대음악은 미술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많이 받아온 것만은 사실이다. '한국적인 현대음악 작곡'이 전공인 나로서는 되도록 추상화를 이해해 보려고 미술 전람회장을 부지런히 드나든다. 나는 그림을 잘 모르지만 구상화는 좋아하지 않는다. 추상화 또는 구상화적 추상화가 무조건 맘에 든다. 좀 무식한 말일지 모르지만 색채사진이나 극장 간판그림과 같은 구상화는 딱 질색이다. 넷째로 'TV스포츠 감상'이다. 몇 해 전만 해도 나는 운동경기 구경을 거의 다녀 본 일이 없었지만 3년 전부터 '연고전'에는 빼놓지 않고 응원을 다닐 뿐만 아니라 특히 TV 레슬링 중계 구경에 미치기 시작해서 이 구경 때문에 밤 예배를 못 본 일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그런데 요즈음에 와서는 좀 급(?)이 높아져서 인지 레슬링보다는 권투 구경이 훨씬 더 흥미가 있어 TV로 권투시합을 구경할 때에는 응원하느라고 목이 다 쉴 지경이니 몇 해 동안에 나 자신도 많이 달라진 듯한 느낌이 든다.
다방순례,서점순례,추상화 감상,TV스포츠 감상 등 많은 취미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어떻게 생각하면 취미가 하나도 없다는 말도 되는 듯 한데 그리고 보면 나는 이렇다 할 취미를 못 가졌을 뿐만 아니라 직업과 취미마저 혼동하는 인간이 아닌가 생각할 때 허황되게 작가 기금을 바랄 것 없이 순수음악 작곡에 의한 작곡료,사용료,악보 인세 등으로 넉넉히 살아갈 수 있는 음악풍토를 만들기 위해 힘써야 할 것은 물론이고, 여러 가지 취미 가운데서 특히 하나만을 택할 수 있는 인간이 되어 봤으면 한다.
취미와 직업은 엄연히 구별이 있고 또한 구별이 되어야만 한다. 왜냐하면 취미는 어디까지나 여기적(餘技的)인 것에 지나지 않으며, 한편 직업은 필사적(?)이라고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1968.2호 공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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