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집 2집 '독백과 대화'
 

해방후 한국에 미친 미국음악의 영향과 그 반응

나  운  영



서 론
   해방후 한국에 미친 미국음악의 영향과 그 반응을 논하기 전에 미국음악이 언제부터 우리나라에 들어왔는가 하는 문제를 생각해 보기로 하자. 즉 1885년 H. G. Appenzeller(1885∼1902)와  H. G. Underwood(1859∼1916) 두 선교사가 서울에 들어와 기독교를 전파한 이래 찬송가가 보급되고 배재학당과 이화학당이 창설됨으로 말미암아 우리나라에 있어서의 서양음악의 기초가 닦아졌다. 물론 찬송가에는 미국음악 이외에도 영.독 등 여러 나라의 작품이 들어 있기는 하나 미국 선교사에 의하여 수입된 것을 생각할 때 우리나라는 1995년부터 이미 미국음악의 영향을 받아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 뒤에 이상준, 김인식, 김형준 등이 미국 선교사로부터 양악의 기초교육을 받아 양악 수입기에 있어서의 3대 공로자가 되었으며,  한편 이화,숭실,연희 등에서 鄭엘리스,  金메리, 임배세, 박경호, 현제명, 박태준 등이 배출되었고 이어 박경호, 안기영, 현제명, 홍난파, 김영의 등이 미국에 유학하여 본격적인 전문교육을 받고 귀국한 후 양악계의 선구자로서 양악 발전에 진력했으나 40년간의 일제탄압 아래 악단은 제대로의 발전을 보지 못한 채 8.15 해방을 맞이하게 되었던 것이다.
   물론 이때까지 미국 유학생 이외에도 계정식,채동선,안병소,이애내 등 독일 유학생과 김영환, 홍난파,김원복,이흥렬,정동모,김인수,김성태,이인범 등 절대다수의 일본유학생과 또한 국내에서 수학한 음악인의 활약은 잊을 수 없으나 상기(上記)한 미국 유학생들이 악단에 있어서의 주동적 역할을 한 것만은 사실이다. 혹자는 한국양악계를 아래와 같이 5기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다.

   1900∼1926     수입기
   1927∼1940     육성기

   1941∼1944     침체기

   1945∼1954     건설기

   1955∼             개화기

   즉  8·15 해방 이후 6.25 사변이 끝나고 정부가 환도한 때까지를 건설기로 보고 , N.B.C 교향악단과  미국 5인음악가가 내한한 1955년 이후를 개화기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어쨌든 해방 후 유학생 중에는 미국 유학생이 단연 수위(首位)를 차지하고 있고 한편 우리나라에 온 음악단체 또는 개인 중에서도 미국에서 온 단체나 개인이 가장 많은 것으로 보아 우리나라가 미국음악의 영향을 과거에 가장 많이 받았고 또한 현재도 받고 있다는 것을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

본 론
   해방 이후 오늘날까지 우리 악단은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해 오고 있다고 말해도 좋을 줄로 안다. 여기에는 여러가지 원인이 있을 것이다.
   첫째로 성인 음악가들이 대거 미국으로 건너가 교육을 받고 돌아왔기 때문이다. 즉 교향악 지휘의 임원식, 김생려, 김만복, 원경수 등, 합창 지휘의 이동일, 정상수 등, 기악의 백낙호, 오정주 등, 성악의 김자경, 이경숙, 이명숙, 전승리 등, 작곡의 이상근이 비교적 활발히 활동을 하고 있는 셈이다.
   둘째로는 많은 청소년 음악학도들이 역시 미국으로 건너가 교육을 받고 있으며 그곳에서 단연 두각을 나타내고 있기 때문이다. 즉 기악의 한동일, 김영욱, 정명화, 정경화 등, 성악의 채리숙, 양경자 등이 조국을 빛내 주고 있고 한편 원경수, 현종건 등은 교향악 지휘자로 선발되어 활약하고 있다.
   셋째로는 많은 음악단체와 개인이 미 국무성 파견 계획 등으로 내한 공연을 가졌기 때문이다. 즉 단체로는 N.B.C 교향악단, 로스안젤레스 교향악단, 미국 공군 교향악단, 리틀 오케스트라, 신시나티 교향악단, 웨스트민스터 합창단, 하바드대학 합창단, 피바디대학 합창단, 미시간대학 합창단, 쥴리아드 현악4중주단, 뉴욕 목관5중주단, 파인아아트 현악4중주단 등과 개인으로는 미국 5인음악가로 알려진 골든(바이올린),  번슈타인(피아노),  케이(첼로),  나이지(오보),  알토베리(호온)를 비롯하여 자코비(교향악 지휘),  앤더슨(알토),  트라우벨(소프라노),  터커(테너),  비토(하아프),  로라(플루우트),  스미드(피아노),  윌크(바이올린),  알렌(소프라노),  후루고니(피아노),  하우스만(피아노),  다미아니(교향악 지휘),  리바크(바이올린),  세놉스키(바이올린),  로즈만(오보),  브레스킨(교향악 지휘),  피들러(교향악 지휘),  안·샤인(피아노),  리치(바이올린),  헤니모비츠(피아노) 등과 이 밖에 주로 미국에서 활약하고 있는 피아티고르스키(첼로),  제르킨(피아노),  루빈슈타인(피아노) 등 세계적 대가의 연주를 들을 수 있었는데 그들의 연주는 기악 교수들의 시범연주를 거의 들어 볼 수 없는 우리나라에 있어서 음악학도들에게 너무나도 큰 자극을 주었으며 한편 미국 5인음악가(골든 외 4인),  윌리암슨(합창 지휘),  해리스(오페라 연출),  줄리아드 현악4중주단,  베이컨(피아노), 문츠(피아노) 등의 대학에서의 공개강의도 교육적으로 볼 때 많은 성과를 거두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 특별히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이와 같이 미국에서 공부하고 돌아온 사람이나 미국에서 계속 공부하고 있는 사람이나 미국사람으로서 우리나라에 와서 연주한 단체나 그리고 우리나라에 와서 강의한 사람이나 누구를 막론하고 그들이 거의 다 미국 작곡가의 작품을 대상으로 삼고 있지 못한다는 점이다. 즉 그 들은 Bach, Mozart, Beethoven, Chopin, Tchaikovsky, Debussy 등등―유럽 작곡가들의 작품을 주로 대상으로 삼고 연주하거나 가르치고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비단 우리나라에서만의 현상이 아니다. 미국에서도 꼭 같은 모양이니 이렇게 되면 「과연 미국음악 내지 미국문화가 존재하느냐?」하는 심각한 문제로 번질 우려성마저 생기게 된다.
   여기서 참고 삼아 잠시 미국음악 발달사를 더듬어 본다면 현재 미국 작곡계를 지배하고 있는 Copland, Harris, Hanson 등도 모두 유럽의 유학생이며 일류 교향악단은 모두 유럽의 지휘자에 의해 육성되고 있으며, 일류 연주가는 물론 음악 학교의 일류 교수들 가운데서도 유럽 사람들 또는 유럽 유학생들이 그 태반을 차지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이 유럽의 전통음악을 미국에서 소개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니 이렇게 생각한다면 미국이나 우리나라나 사정이 비슷하지 않나 하는 느낌마저 받게 된다. 그렇다고 해서 나는 미국과 우리나라 악단을 동급으로 생각하는 것은 절대로 아니다. 다만 「한국에 미친 미국음악의 영향과 그 반응」이란 제목을 놓고 생각해 볼 때에 큰 의문이 생긴다. 즉 「과연 우리 악단이 미국음악의 영향을 과거에 받았을까? 또는 현재도 받고 있을까?」하는 문제를 가지고 좀 더 신중히 논해 볼 필요가 있다.

   첫째로 현재까지 우리나라에서 연주된 미국 작품이란 매우 드물다. 이제 대표적인 곡을 소개한다면 아래와 같다.
  1. Mac Dowell : Piano Concerto No. 2.
  2. Gershwin : Rhapsody in Blue.
  3. Gershwin : An American in Paris.
  4. Gershwin :Concerto in F.
  5. Copland : Outdoor Overture.
  6. Copland : El Salon Mexico.
  7. Barber: Adagio for Strings.
  8. Hovhaness : Symphony No. 8.
  9. Hovhaness : Psalm & Fugue for String Oechestra.
10. Negro Spirituals.
11. Copland : Appalachian Spring, Suite.
12. Hovhaness : Symphony No. 16.
13. Hanson : Serenade.
14. Mennin : Canto for Orchestra.
15. Cowell : Persian Set.
16. Creston : Legend.
17. Sousa : March Album.
18. Menotti : Amahl & the Night Visitors.
19. Menotti : Telephone.
20. Grofe : Grand Canyon, Suite.
   물론 이 밖에도 실내악곡, 성악곡으로는 연주된 것이 더 있을 줄 아나 대체로 이런 정도밖에는 소개되지 못한 것을 보면 우리나라에 있어서의 미국음악의 영향이란 그다지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아님을 짐작할 수 있다.
   둘째로 우리나라 사람으로서 과거에 미국에 가서 배운 자는 물론 현재 배우고 있는 자라 할지라도 그들이 연주하는 곡은 거의 유럽 작곡가의 작품인 것이 사실이니 역시 미국음악의 영향이란 거의 찾아볼 수 없을 정도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셋째로 미국사람이나 미국에서 활약하고 있는 유럽 연주가들 가운데는 그 연주가 유럽의 전통적인 해석, 표현에 비하여 얕고, 가볍고, 품위가 없는 듯한 느낌마저 주는 경우가 많으므로 우리로서는 이에 대하여 정확한 판단을 내려 되도록 그러한 미국식 연주법은 본받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편이라고도 말할 수 있으니 여기에 있어서도 결과적으로 미국음악의 영향이란 그리 많이 찾아 볼 수 없는 실정이 아닐는지? 이렇게까지 생각하게 되면 소위 순수음악계에 있어서는 실질적으로 미국음악의 영향을 그리 많이 받고 있지 않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에 반하여 경음악계에는 미국음악이 단연코 철저히 침투되어 있다는 점을 아무도 부인 못할 줄 안다.
   Jazz는 현대음악의 아류로서 아래와 같이 정의를 내릴 수 있다. 「유럽의 멜로디와 화성과 악기가 아프리카의 리듬과 혼합되어 미국에서 육성된 음악―스탄즈」 이것은 가장 적절한 표현이다. 이 Jazz가 미국민요, Negro spiritual은 물론 Operetta Musical Comedy, Musical play, Pop song, Dance music등에 얼마나 큰 영향을 주었느냐에 대해서는 새삼스럽게 논할 필요조차 없을 것이다. 이런 등속의 음악들은 오늘날 미국뿐만 아니라 유럽 특히 수년 전부터는 소련에까지 널리 보급되어 소련의 음악학교에 Jazz과가 설치되기까지 했으니 그 영향은 전세계적이라 아니할 수 없다. 미국에 있어서는 세기적인 교향악 지휘자 Toscanini보다 Mantovani가, Anderson보다는 Jackson이, Tucker보다 Net King Cole이 더욱 인기가 있다고 말하는 사람이 생길 정도로 Jazz를 포함한 경음악이 널리 사랑을 받고 있는데 이런 음악이 8.15 해방과 더불어 미군이 진주함에 따라 우리나라에 들어오기 시작하여 W.V.T.P, A.F.K.N.등을 통하여 방송됨으로써 급속도로 퍼지게 된 것이다.
   뿐만 아니라 서울을 비롯하여 미군부대 위문을 목적으로 하는 Show단체, 경음악단이 우후죽순격으로 수없이 나타나 미군부대뿐만 아니라 국영 방송국, 민간방송국은 물론 각종 유흥장에서 연주되고 한편 레코드를 통해 다방, 경음악 감상실 등에서 매일 매시 듣게 되기 때문에 우리나라 사람들은 어린이들까지도 째즈를 포함한 경음악이 귀에 젖어 중독되어 있는 형편이다. 하기야 해방 전에도 조선 악극단, 성보 악극단, 약초 악극단, 라미라 악극단, 반도 가극단 등이 있어 째즈를 모방한 경음악을 연주하기는 했으나 본격적이라고 할 수 있는 경음악은 해방 후에 KPK 악단, CMC 악단 등에 의해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나마도 6.25 사변과 함께 이 악단도 없어지고 요즈음에 와서는 예그린 악단, 워커힐 악단, 서울방송 경음악단을 비롯하여 수많은 경음악단이 생겨 미국의 경음악을 직수입하여 퍼뜨리고 있으니 이 경음악을 통한 미국음악이야말로 순수음악의 경우와는 달리 우리나라에 과거에도 크게 영향을 주었고 현재도 많은 영향을 주고 있으니 그 반응은 상상하고도 남음이 있을 것이 아닌가?

   주지하는 대로 나는 왜색가요를 비롯한 퇴폐적인 대중음악을 철저히 배격하는 사람 중의 한 사람이다. 나는 해방 후 아니 정부가 환도한 이후에 생산된 대중가요 가운데 80%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 왜색가요라는 것을 밝힌 일이 있다. 그리고 이 왜색가요를 배격하는 뜻이 비단 일본 고유음계인 미야꼬부시(都節)로 작곡되었기 때문만이 아니라 그 미야꼬부시로 작곡한 곡은 모두 염세적이고 퇴폐적인 정서를 풍기기 때문이며 더우기 이 미야꼬부시는 일본 고유음계이므로 어느 나라 사람이 사용하더라도 일본 냄새가 진하게 풍기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 있어서 40, 50대의 성인들은 왜색가요에 젖어 있어 흘러간 노래, 추억의 노래 등은 물론 국산 왜색가요를 즐겨 듣고 있고 10, 20, 30대의 청소년들은 째즈를 포함한 미국음악에 젖어 있어 Pop song은 물론 Beat rhythm에 맞춰 Twist 춤에 이성을 잃었다고 해도 좋을 상태이니 우리나라의 앞길이 어찌 될 것인가? 확실히 우리나라에 미친 미국음악의 영향은 너무도 크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나는 위에서 왜색가요의 해독성에 대하여 논했다. 그러나 째즈를 포함한 경음악 가운데도 지나친 것은 왜색가요 못지 않게 아니 왜색가요 이상으로 많은 독소를 내포하고 있다는 것을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 즉 이런 음악은 사람의 정신을 흐리게 할 뿐만 아니라 사람을 관능적인 면으로 몰고 가기 때문에 정신위생상 매우 해롭다. 나는 이런 음악을 음악(音樂) 아닌 음악(淫樂)이라고 부르고 싶다. 또한 이런 노래를 성가(性歌)라고 부르고 싶다. 특히 청소년들이 이런 음악에 감염되면 쉽사리 완치될 수 없다고 본다.
    나는 지금까지 째즈를 포함한 경음악 가운데 지나친 것에 대해서 그 해독성을 지적하였을 뿐 째즈 또는 경음악을 전적으로 배격하지는 않았다. 위에서도 언급한 바와 같이 째즈는 현대음악의 아류이긴 하나 오늘날 현대음악 작곡가 가운데서 째즈의 영향을 받지 않은 사람이 매우 드물다는 것을 모르는 바가 아니다. 즉  Gershwin은 Symphonic Jazz를 창시한 사람이고 Stravinsky는 <Soldier's Tale>, <Ragtime for 12 Instruments>를 작곡했으며,  이 밖에도 Hindemith, Satie, Milhaud, Honegger, Carpenter, Ravel, Liebermann등은 모두 째즈 어법(語法)을 활용하여 작곡한 작곡가들이다. 따라서 째즈는 절대로 무시해 버릴 수 없는 신흥(新興)음악일 뿐만 아니라 앞으로도 끊임없이 발전되어 나갈 수밖에 없는 음악이므로 우리는 째즈의 장래를 주시해야 하며 무조건 배격하는 어리석은 생각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 강력히 주장하고 싶다.
    나는 몇 해 전에 「경음악을 즐기는 것은 현대인의 본능이다.」라는 제목으로 대략 다음과 같은 글을 쓴 일이 있다.
   '아마도 우리나라처럼 순수음악과 경음악이 유달리 확연히 구별되어 있는 나라는 없을 것이다. 다 같은 음악인데 순수음악은 중시하고 경음악은 지나치게 경시하는 까닭에 심지어 이에 종사하는 사람까지도 한편은 음악가의 대우를 받고 한편은 소위 딴따라패로 불리고 있을 뿐만 아니라 나중에는 그 음악을 감상하는 사람까지도 둘로 나누어 문화인과 야만인 또는 교양인과 무식인으로 취급하려 드는 희비극이 연출되는 것을 볼 때 과연 그 원인이 어디에 있는 것일까?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뉴욕 필하모니 오케스트라의 正지휘자인 Leonardo Bernstein은 <Jeremiah Symphony>나 <Fancy Free>뿐만 아니라 Musical <West Side Story>도 작곡했고,  째즈왕으로 불리고 있는 Benny Goodmann은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Juilliard Music School의 Clarinet 교수를 겸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수년 전에 새로운 스타일의 째즈인 <The Third Stream>으로 화제를 모았던 째즈 작곡가 Gunther Schuller는  Gershwin 모양으로 소위 Symphonic Jazz로서 <Concertino for Jazz Quart & Orchestra>(째즈 4중주와 관현악을 위한 小협주곡)와 <Wind Quintet>(관5중주곡) 등을 작곡하는 한편 Berkshire Music Center에서 작곡을 강의하고 있으니 미국에서는 순수음악과 경음악은 물론 순수음악인과 경음악인의 차별이 그다지 없다고 말할 수 있다. 이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폐단도 있을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상호간의 이해를 증진시키는데 있어서는 대단히 편리하고 합리적인 생각이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우리나라에서는 소위 경음악인만이 째즈를 받아들이며 퇴폐적인 관능적인 면을 주로 추구한 듯한 느낌을 주어 온 국민이 그 피해를 입고 있는 형편이나 앞으로는 소위 순수음악인들도 째즈를 받아들이되 감각적인 명랑한 면을 주로 추구함으로써 온 국민을 건전한 방향으로 이끌고 나갈 수 있게 되기를 바라고 싶다. 20세기의 경음악이 무조(無調)음악, 12음음악, 구체(具體)음악, 전자(電子)음악, 점묘(點描)주의음악, 우연성(偶然性)음악, 불확정성(不確定性)음악 등에 있어서의 모든 전위적(?)인 기법을 도입하여 활용함으로써 날로날로 발전되어 가고 있으니 도리어 이것을 진지하게 연구할 필요가 있다고 나는 주장한다. 다만 이것을 연구하는데 그칠 것이 아니라 이것 중의 무엇을, 어떻게 섭취하여 한국적인 현대음악을 창조하느냐가 앞으로의 과제일 뿐이다.'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우리나라에 있어서 순수음악인들은 주로 미국에서 미국음악 아닌 유럽 음악을 받아들였고 경음악인들은 주로 국내에서 미국 째즈를 자기나름으로 받아들였으니 「해방 후 한국에 미친 미국음악의 영향과 그 반응」이란 과제를 놓고 생각할 때 이것은 경음악계만 해당되고 순수음악계와는 별로 관계가 없는 것 같은 느낌을 갖게 되는데 여기에서 큰 모순점을 발견하게 된다. 즉 「미국에는 순수음악이 없느냐? 미국에는 째즈밖에 없느냐?」하는 문제가 대두된다.
   이 문제에 대해서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요즈음 중진국이란 말이 우리나라에서 즐겨 사용되고 있는 모양인데 「우리나라가 음악 후진국이라면 미국은 음악 중진국」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다. 이렇게 말하면 공박하려고 나서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으나 분명히 우리는 후진국이요, 미국은 중진국이다. 왜냐하면 예를 들어 우리나라에 있어서 아악, 당악, 향악, 속악이 그 우수성을 세계에 자랑하나 이것들은 어디까지나 향토음악, 지방음악, 민속음악으로서의 그 가치를 말하는 것이지 절대로 세계성을 띤 민족음악으로서의 그 가치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마찬가지로 미국에 있어서 아메리카 인디언의 음악 내지 째즈는 어디까지나 향토음악, 지방음악, 민속음악으로서 그 가치가 인정되는 것이지 절대로 세계성을 띤 민족음악으로서 그 가치가 인정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미국에 MacDowell, Gershwin, Lves, Copland, Hariss, Hanson, Schuman, Cage, Foss, Carter, Schuller 등 유능한 작곡가가 배출되었다고 해도 국제적으로 인정 받는 작곡가는 한 두 사람밖에 없는 것을 생각하면 미국을 가리켜 음악 중진국이라고 하는 나의 발언이 그리 망언(妄言) 또는 방언(放言)에 속하는 것은 아닐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우리나라에 있어서의 경음악계가 미국의 향토음악, 지방음악, 민속음악으로서의 째즈를 받아들이는 것은 무방하나 순수음악계에 있어서는 음악 중진국으로서의 세계성을 띤 미국 민족음악을 받아 들일 것이 아니라 선진국으로서의 유럽민족의 민족음악―즉 Bach, Beethoven, Wagner, Debussy, Schonberg, Stravinsky 등을 받아들이는 것이 현명한 일이 아닌가도 생각된다. 그러나 이에 대해서 나는 지나친 의구심을 갖지 않는다. 왜냐하면 현명한 미국 사람들은 우리에게 중진국으로서의 자기네들의 음악을 절대로 강요하지 않고 선진국으로서의 유럽의 음악을 가르치고 있기 때문에 그들에게서 배운 우리나라 사람들도 함부로 미국음악을 소개, 보급시키려 들지 않고 있으니 지나치게 염려할 필요는 없다. 다만 여기에서 우리가 배울 점이 있다. 즉 미국 음악가들이 유럽음악을 어떻게 받아들여서 오늘날 음악 중진국이 되었는가에 대한 그 과정을 우리가 참고하여 우리도 하루바삐 후진국에서 벗어나 미국과 같은 중진국이 되어야 하고 이에 만족치 말고 유럽 중에서도 독일, 불란서와 같은 일등 선진국이 될 날을 꿈꾸어야 될 것이 아니겠는가?
   나는 이런 관점에서 미국 작곡가들의 작품을 흥미있게 듣고 있다. 예를 들어 세계적으로 가장 널리 알려져 있는 Copland는 천재 Gershwin을 모방, 추종하고 있다고 해도 과히 망발은 아닐 줄로 생각하며 Piston은 미국적 색채가 별로 보이지 않은 국제성(?)을 띤 작품을 주로 쓰고 있으며 Hanson은 북구(北歐)적이며 이에 비하면 Schumann, Barber등은 미국 작곡가로서의 특성을 잘 나타내고 있다고 말할 수 있고 이 밖에 Foss, Cage, Schuller등은 좀 더 관망해야 할 것 같다. 따라서 우리로서는 처음부터 유럽을 상대로 할 것이 아니라 미국 작곡가들의 고민 즉 그들이 유럽의 음악을 어떻게 받아들였는가―그 방법을 참고하여 우리가 유럽 음악을 받아들일 때에 우리는 우리대로 다시 말해서 한국적으로 올바르게 섭취해야 할 것은 물론이고 설사 우리가 미국음악을 받아들이는데 있어서도 어디까지나 우리에게 이로운것, 우리가 필요한 것만을 섭취해야 한다는 것을 명심하고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겠다는 것을 나는 거듭 주장하는 바이다. 나는 「한국음악의 지방성과 국제성」이란 제목 아래 다음과 같이 말한 일이 있다.

    '요즈음 학생들 중에는 일본 글을 배우는 자가 많은 모양인데 이에 대하여 경고하고 싶다. 즉 일본의 고유문화를 섭취하기 위해서는 일본책을 읽어야 할 것이나 서양문화를 섭취하기 위해서는 일본사람들의 책에 의존하는 것은 금물이다. 왜냐하면 서양문화를 일본사람들이 자기들의 사고방식이나 취미에 맞게 섭취한 것을 우리가 다시 받아들인다면 우리는 언제까지나 일본사람에게 뒤떨어질 수밖에 없지 않은가? 서양문화는 英, 獨, 佛 등 원서를 통해서 직수입해야 할 것이다. 따라서 설사 우리가 일본책을 구한다 하더라도 이것을 어디까지나 비판적으로 읽어 외극문화를 받아들이는데 있어서 그릇됨이 없도록 해야 할 것이다. 우리의 40, 50대 중에서 「일본식 서양문화」나 「미국식 서구문화」를 배워 온 사람이 많지나 않을까? 이제부터라도 우리는 우리 민족음악을 창조하는데 필요한 것만 외국에서 직수입해야 할 것을 잠시라도 잊어서는 안된다.'
    이상은 일본책을 상대로 한 말이나 이것은 그대로 미국책에도 적용된다. 즉 우리가 미국에 가서 미국의 고유음악을 섭취하는 것은 좋으나 그야말로 미국식 서구음악을 섭취해서는 안될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외국문화의 수입소화(輸入消化)와 고유문화의 계승발전」이란 두 개의 과업을 동시에 병행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된 우리로서 더욱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과거 20 수년간 자라온 우리의 모습을 되살펴보고 외국문화의 수입, 소화에 있어서 앞으로 우리가 취해야 할 올바른 자세가 무었이냐를 찾기 위해 우리는 다시 한번 심사숙고할 단계에 직면하고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자고로 배외(拜外)사상과 배외(排外)사상에 젖어 있다. 다시 말해서 외국 것이면 무조선 숭상하고 모방, 추종하려는 소위 진보적(?) 사상과 외국 것을 무조건 배격하고 내 것만을 내세우려 드는 소위 쇄국(鎖國)적(?) 사상에 사로잡혀 있지 않나 하는 느낌이 든다. 이 배외(拜外)사상과 배외(排外)사상은 비록 발음은 같으나 내용은 정반대가 아닌가? 그러면서도 우리가 외국문화를 수입, 소화시키는데 있어서는 이 두 사상이 꼭 같은 피해를 우리에게 준다. 따라서 우리는 이런 생각에 사로잡힐 것이 아니라 오직 우리 순수음악계와 경음악계가 무엇을 받아들여야 할 것인가를 결정 지어야겠다.
   이쯤 되면 우리는 과거는 물론 현재까지도 무비판적으로 마구 받아들이기만 했다고 해도 변명할 여지가 없지 않은가? 두 말할 것 없이 현대는 문화교류의 시대이다. 그러므로 특수성, 지방성을 경쟁하기보다 일반성, 세계성을 지향해야 하며 우리 문화에 도움이 된다면 얼마든지 외국 것을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외국 것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기만 하지 않았던가? 다시 말해서 무엇을, 왜,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것인가에 대하여 비판을 갖지 못하고 무조건 외국 것이면 받아들였기 때문에 우리는 식중독에 걸리고 말았다.
   한편 우리는 우리 것을 만들어 내지도 못했고 좀 더 솔직하게 말해서 우리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있기 때문에 우리 것을 외국에 내어 놓지도 못하고 있었지 않았나? 아무리 현대가 일반성, 세계성을 지향하는 시대라 해도 특수성, 지방성만은 무시, 경시할 수 없는 일이 아닌가? 근래에는 우리 연주가들이 외국에서 연주하는 기회가 많아졌다. 그러나 그들이 과연 우리 작품을 한 곡이라도 연주하였던가? 그들이 외국에 가서 외국 사람의 작품만을 연주하였으니 어찌 이것이 문화교류라 할 수 있겠는가? 내 나라의 작품을 소개함으로써 문화교류가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수년전부터 국제음악제를 비롯하여 외국의 저명한 연주가들의 내한연주를 들을 수 있게 되었는데 우리는 받아들이기만 했고 우리 것을 내보내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니 언제나 일방통행을 면할 수 있을 것인가?
   거듭 말하거니와 우리는 외국 음악을 받아들이는데 있어서 좀 더 신중을 기해야 되겠다. 우리의 미풍양속을 해치는 것이나 우리의 민족정서를 좀 먹는 것이나 말초신경을 자극시키는 것, 성적 충동을 불러 일으키는 것, 타락, 염세, 멸망의 길로 이끄는 것을 더 이상 받아들여서 될 말인가? 위에서도 말한 바와 같이 수입기, 육성기, 침체기를 거쳐 건설기, 개화기로 접어든 우리 악단에 있어서 우리는 언제까지나 이 무방비상태를 계속 좌시하고만 있을 것인가? 우리는 외국의 음악 식민지(?)로 자처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제 결론을 내리기 전에 또 다시 「조로증(早老症)에서의 탈피」라는 나의 글을 인용하려 한다.

    '우리나라에 있어서 학생들에게 시범연주를 들려 주면서 가르칠 수 있는 기악지도교수가 극히 희소한 것만은 누구나 부인할 수 없는 엄연한 사실이니 외국의 권위있는 교수를 초청하여 그들에게서 시범연주를 통해서 제대로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되어야만 비약적인 발전을 가져올 수 있다고 본다. 연주기술이란 말로만 가르칠 수 없다. 외국인 교수들이 자기 자신이 직접 연주하면서 악곡분석 및 연주법 설명을 하는 것을 볼 때―우리 학생들에게는 그것이 매우 신기하게 느껴지는 그 자체가 신기한 생각이 아닐 수 없다. 요즈음은 루빈스타인을 비롯하여 제르킨, 리치, 피아티고르스키, 스테파노, 런던심포니, 도이치오페라단 등 세계적인 연주를 들을 기회가 많아진 것만도 다행한 일이나 순간적인 연주를 구경하는 것보다는 단지 한 시간이라고 그들에게 직접 Lesson을 받을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되는 것이 얼마나 교육적으로 큰 성과를 거둘 수 있는 일인가를 생각해 볼 때 적어도 우리나라에 있어서의 음악교육계만은 세대교체니 정년퇴직이니 운운하기 전에 먼저 이 근본문제부터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이상으로 나는 미국이 진정으로 우리 음악계를 사랑한다면 미 국무성 파견계획에 의해 연주가만 보낼 것이 아니라 노련한 일급 교수를 더 많이 보내 주기를 바란다. 그리하여 그들이 장기간 우리나라에 머무르고 있으면 그 동안에 우리 악단은 올바른 방향으로 육성될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뿐만 아니라 교환교수제도를 실시한다든가 국제교육회(I. I. E)를 통하여 우리나라의 유능한 음악인으로 하여금 미국 음악계를 시찰할 수 있게 해 주기를 바란다.

 결 론
   「해방 후 한국에 미친 미국음악의 영향과 그 반응」이란 제목을 가지고 다시 생각해 볼 때 결과적으로 순수음악계에서는 결정적인 영향을 받은 것은 별로 많지 않고 경음악계에서는 치명적인 영향을 받았다고 나는 믿으며 따라서 순수음악계에서는 미국음악에 대하여 별로 그 반응이 나쁘지도 좋지도 않으나 경음악계에서는 그 반응이 매우 좋다고 느끼는 사람과 매우 나쁘다고 느끼는 사람으로 나누어져 있으나 뜻있는 사람들은 그 반응이 매우 좋다고 느끼는 사람에 대하여 적지 않은 우려를 표시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한 견해라 말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우리는 미국음악을 수입하는데만 열중했고 이것을 올바르게 소화시키지 못해 고생을 겪고 있는 형편이다. 그러므로 지금부터라도 우리는 배외(拜外)사상과 배외(排外)사상을 버리고 먼저 우리나라의 가곡, 가사(歌詞), 창극, 가야금 산조, 남도 시나위, 농악, 범패(梵唄) 등에서 민족음악을 창조하는데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만을 미국음악에서 받아들여야 할 것이 아닌가?
   우리는 첫째로 고유음악을 계승해야 하고,  둘째로 외국음악을 수입해야 하고,  셋째로 고유음악을 발전시켜야겠다.  왜냐하면 우리가 우리나라의 음악에서 민족적 요소를 발견하기도 전에 외국음악이 물밀듯이 닥쳐 들어오면 결국 이것들이 뒤섞이게 되어 우리것과 외국것을 가려낼 수가 없다. 오늘날 우리 음악계의 실정이 바로 이것이다. 국악인은 양악을 도외시해 왔고 양악인은 국악을  멸시해 왔다. 그러므로 이제부터라도 국악인은 양악을, 또한 양악인은 국악을 연구함으로써 우리의 공동목표인 「민족적 아이디어와 현대적 스타일」이 결부된―민족음악 창조를 위하여 합심, 진력해야 할 것이다.
    따라서 첫째와 둘째의 그 순서가 바뀌어서는 안 될 것이며 둘째와 셋째 순서가 바뀌어져도 안 될 것은 자명의 이치이니―오직 이 세가지 방법만이 우리가 취해야 할 올바른 자세라는 것을 나는 거듭 강조하는 바이다.

 < 1968. 7. 아세아연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