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집 2집 '독백과 대화'
 

어느 평신도의 고백

나  운  영

   「나의 전공은 작곡이고 직업은 교수요 취미는 레슬링입니다.」고 말한다면 어딘가 좀 잘못됐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하고 많은 취미 가운데 어째서 레슬링을 택했느냐고 물으시겠지요.
   약 4년전의 일이었습니다. 십 여년 동안 한 교회의 성가대를 지휘해 온 나는 낮 예배에는 물론 빠짐 없이 출석했었습니다. 낮 예배에 교회에 가는 것은 나의 책임을 다하기 위한 것이기도 했지만 이것은 바로 말해서 하나의 습관이기도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웬일인지 늘(?) 졸기만 하다가 돌아오곤 했었습니다.
   아마 아버지 집이라 편안해서 허락 없이 잠이 잘 오는지 몰라도 어쨌든 아무리 정신을 차리고 설교를 들으려 해도 나도 모르는 사이에 「옳습니다. 옳습니다.그저 목사님 말씀이 자당하외다.」 하는 식으로 졸다가 오는 예가 한 두번이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보면 낮 교인으로서는 소위 개근 낙제생인 것만은 틀림 없는 셈이었지요. 그런데 그 당시 공교롭게도 주일 밤예배 시간마다 TV 레슬링 중계방송이 있었습니다. 나는 본래 상한 갈대(?)인지라 남들과 싸움 한번 못해 보고 자라서 그런지 이 레슬링을 구경할 때면 피가 끓고 통쾌해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완전히 흥분의 도가니에 빠져 버리고 마는 것이었습니다. 주일 밤 예배에 오르간을 치기 위해서라도 나가기는 해야 겠는데 레슬링은 점점 가경에 이르니 이때의 나의 고민을 여러분도 짐작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하는 수 없이 그야말로 눈물을 머금고 완전 타의 또는―좋게 말해서 자의반 타의반으로 교회에 달려가게 됩니다. 그러니 설교가 제대로 머리에 들어갈 리가 없지 않겠습니까?  기도를 하는 순간에도 예수님의 영상은 도무지 떠오르지 않고 김일 선수의 이마만이 눈앞에 아른거리는 것이었습니다.―이런 것을 생각하면 확실히 사람은 영혼과 육신이 있는 모양이지요? 즉 나의 경우에 있어서 육신은 교회당 안에 분명히 앉아 있지만 영혼은 틀림 없이 안방극장 TV 앞에서 열을 올리고 있으니 이래서 또한 나는 밤교인으로서도 개근낙제생을 면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소위 현대인은 공사다망해서 그런지 혹은 외국 사람을 본받아서인지 한달에 네번 주일 낮예배만 의무적으로 출석하고 마는 소위 주간교인의 수가 점점 늘어만 가는 이때에 비록 완전 타의이든 자의반 타의반이든 낮밤으로 교회엘 가니 남들이 보기에는 가장 모범적인 교인처럼 보일지 모르겠지만 하나님만은 아실 것이 아니겠습니까? 우리가 낮예배에만 출석하든 밤예배에만 출석하든 그 자체가 문제되는 것이 아니라 「무엇 때문에 갔었으며 무엇을 느끼고 돌아왔느냐?」 또한 「느낀 것을 가지고 어떻게 행동하느냐?」가 중요한 것이지요. 위에서 나는 「출석」이란 말을 여러 차례 썼습니다. 바로 말해서 나는 교회당에 출석은 했습니다. 그러나 예배는 드리지 못했다고 생각되기 때문에 「출석」이란 말을 강조했던 것입니다. 교회당의 자리를 차지하는 것만으로는 교인이라고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다시 4년전의 일을 더듬어 보겠습니다. 「전국 복음화 운동」이 활발하게 추진되던 때였습니다. 부흥 전도 강연이 있었던 바로 다음 날 학교 채플시간에 나는 열변을 토했던 것입니다. 즉 「새로운 교인을 받아들이는 일이 물론 중요하지만 그보다도 지금까지의 교인을 놓치지 말기를 바란다.」고 말했던 것입니다. 오늘날 한국 교회는 새로 믿기로 작정하는 사람의 수보다 교회를 버리고 떠나가는 사람의 수가 훨씬 많은 것만 같이 생각됩니다. 항상 되풀이되는 말이기도 합니다만 한국 교회는 전도하는 일에만 열심인 것처럼 느껴집니다. 여러분! 소위 저명인사들을 보십시오. 그들은 거의 교회를 이미 졸업해 버린 사람들입니다. 어렸을 때나 이름이 나지 않았을 때에는 열심으로 믿었지만 몸이 자라고 출세한 다음부터는 교회를 졸업해 버린 것이 분명합니다. 졸업생 사은회 때마다 나는 같은 말을 되풀이합니다. 즉 대학 졸업장이란 「등록금 영수증」에 불과하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실력을 기르지 못한다면 아무 소용이 없지 않겠습니까? 학문에는 졸업이 없습니다. 그보다도 교회에는 졸업장이 없습니다. 더욱이 신앙생활에는 졸업이란 있을 수 없지요. 그리고 보면 비록 완전 타의나 자의반 타의반일망정―아니 예배는 드리지 못하고 교회당에 출석만이라도 하는 교인이 된다 할지라도 어쨌든 예배시간에 안방극장에서 레슬링 구경하는 일만은 그만 두어야겠습니다.
   한국 교회는 교회 안으로 들어오는 사람의 수보다 교회를 일단 거쳤다가 밖으로 나가 버리는 사람의 수가 나날이 늘어 갈 뿐만 아니라―좀 심하게 말해서 교인의 수에 비해서 교회당이 너무도 크고 또한 교회의 수보다도 목사님의 수가 많지 않나 생각될 지경입니다. 보십시오. 어느 교회든지 낮예배 때에는 앉을 자리가 없다지만 밤예배 때에는 빈 의자만이 정숙하게(?) 예배를 드리고 있는 느낌마저 듭니다. 그렇다면 교인들이 주머니를 털어서 큰 교회당을 지을 필요 없이 천막을 치고 낮에만 예배를 보고 밤에는 걷어 치우면 될 것이 아닙니까? 물론 도시 교회로서의 고민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이렇게도 밤예배에 모이지 않을 바에야 차라리 외국처럼 밤예배를 폐지해 버리는 것이 마음 편할 것 같습니다.
   밤예배이든 낮예배이든 교인들의 수가 날로 줄어드는 데는 반드시 무슨 원인이 있을 것입니다. 일방적으로 교인들이 태만하다든가 교인들의 믿음이 식어졌다고만 말해 버릴 수는 없을 것입니다. 혹자는 말하기를 교회가 썩었기 때문이요, 교파 싸움 때문이라고도 합니다. 그러나 한마디로 말해서 오늘의 한국 교회는 사회보다 뒤떨어져 있고 직업적인 목사님들의 설교가 우리들에게 감화, 감동을 주지 못하기 때문이며, 교회가 점점 세속화되어 가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교회 안에 사람이 없습니다. 은혜가 없습니다. 이 나라와 이 백성을 위해서 교회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조차 모르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해도 과히 망발이 아닐 듯 싶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욕은 남에게 뒤집어 씌우고 영광은 하나님 대신 나 혼자만이 누리려고 생각해선 되겠습니까? 교회가 썩었다고 졸업해 버릴 것이 아니라 우선 교회를 바로잡기 위해 나부터라도 열심히 출석해야겠습니다. 그리고 특히 내 교회를 졸업해 버린 옛 친구들을 다시 교회로 이끄는 일부터 시작해야겠습니다. 현대인의 생리에 맞는―한국적인, 한국을 위한, 한국의 새 교회를 만들기 위해 서로서로 힘을 합쳐야겠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에 옮겨야겠습니다. 이것이 서투른 나의 간증입니다.

 < 1969. 3. 1 새생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