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집 2집 '독백과 대화'
 

새로운 음악풍토의 형성을 위하여

나  운  영

음악회와 초대권
   적어도 우리 사회에 있어서 음악회에는 초대권이 따르기 마련이다. 다시 말해서 음악회를 열 때에는 선배에게는 물론 동료나 후배까지라도 초대권을 보내야 하는 것이 상식이 되어 버렸고 또한 초대권을 받는 것이 당연한 것으로 되어 버렸다. 그런데 이 음악회가 「초대공연」이라면 또 몰라도 「유료공연」인 경우에는 회원권 한 장 한 장 마다 세금이 붙는 것은 물론이고 이 회원권을 다 팔아도 모든 경비를 치를 돈이 모자라는 것이 상례인데 이래가지고서야 어찌 음악회를 열 수 있을까? 그것도 든든한 후원자가 있어서 하는 것이라면 모르되 남에게 빚을 얻어서 모두 초대권을 뿌려 음악회를 열고 완전 적자를 보아 재기불능의 비참한 신세가 되어 버리고 마니 외국에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한국적 기현상이라 아니할 수 없다.
  그런데 이렇게 초대권을 보내야 하는 것이 한국적 음악풍토라고 규정지어 놓고 생각하더라도 실제에 있어서 초대권을 두 장씩 보내야만 욕을 먹지 않으며 그것도 2층 중앙 앞자리에 나란히 앉아서 구경할 수 있도록 해 주어야만 비로소 별 말이 없게 되니 이래서야 어떻게 음악회를 해 먹겠느냐 말이다.
  가령 초대권 한 장을 보내 왔다면 한 두 장쯤은 제 돈을 내서 사 가지고 가족이나 친구들과 함께 간다거나 혹은 금일봉이나 기념품을 들고 가서 발표하는 주인공에게 선사하고 위로 격려해 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래야만 초대권을 받은 사람도 떳떳할 뿐만 아니라 이렇게 하는 가운데 우리 음악계가 날로 날로 발전할 수 있게 되는 것이 아닐까?
  도대체 음악회에 초대권을 보내야만 하는 좋지 못한 버릇이 언제부터 생겼는지 몰라도 이것은 「공짜」를 좋아하는 우리 민족성 때문이 아닌가 싶다. 그렇기 때문에 이 민족성을 뜯어 고치려면 우선 초대권부터 없애 버려야 한다는 것을 나는 강조한다. 우리나라에 있어서 음악회가 자주 열리지 못하는 까닭이 어디에 있는가? 또 음악인들이 계속해서 공부 못하는 이유가 어디에 있는가를 생각해 보면 그 주요 원인은 초대권을 뿌리고 음악회를 해 놓고는 망해 버릴 수밖에 없게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초대권을 뿌려도 사람이 많이 안 오는 이유는 또 무엇일까? 공짜로 받았기 때문에 귀하게 생각되지 않으니 좀 피곤하거나 바쁘면 아예 가지도 않고 그 초대권을 썩혀 버리게 되기 때문일 것이다. 내 돈을 내고 산 표라면 기를 쓰고라도 달려갈 것이나 공짜 초대권이니까 값이 없고 보니 가고 안 가고는 절대 자유이다. 따라서 초대권을 좌석의 3배 가까이 뿌려 놓고 기다려도 좌석의 3분의 1도 차지 않는 음악회를 종종 보게 되는 것도 알고 보면 당연한 노릇이라 아니 할 수 없다. 이런 모든 점을 생각해 볼 때 한국적 음악풍토가 바뀌려면―아니 우리 음악계가 발전되려면 이 초대권 제도를 하루 바삐 완전히 없애 버려야 할 것을 나는 강력히 주장한다.
  즉 그 음악회가 연구발표이든 흥행이든 일체 초대권을 보내지 말 것이며 또 초대권을 바라지도 말고 나 자신이 즐기기 위하여 혹은 음악인을 위로, 격려하기 위하여 회원권을 사 가지고 가는 팬의 수가 늘어날 때 비로소 우리 음악계가 눈부신 발전을 보게 될 것이다.


음악회와 꽃 다발
   음악회에 가 보면 무대 위로 꽃다발을 들고 나와 정중히 절을 하고 꽃다발을 선사하고 악수를 교환하는 아름다운 광경을 흔히 볼 수 있다.
   나는 이런 광경을 볼 때마다 그 꽃다발보다는 꽃다발을 선사하는 마음씨가 더 아름답다고 생각된다. 그런데 하도 이것이 하나의 관례처럼 되어 있어서인지 꽃다발이 들어오지 않으면 웬일인지 그 날의 음악회는 쓸쓸한 느낌을 주거나 혹은 그 날 음악회가 실패로 돌아간 듯한 느낌마저 주니 우스운 노릇이다. 요즈음에는 꽃다발 대신에 화분이나 화환을 직접 선사하거나 혹은 무대 위에 미리 갖다 놓거나 또는 음악회장 현관에 전시하는 수가 많아졌는데 이것도 음악회의 분위기를 살려 주어 매우 좋게도 느껴진다.
   그러나 한편 다시 생각해 볼 때 꽃 같은 것은 그날 그때의 전시효과로서는 만점일지는 모르나 곧 시들어 버릴 뿐이므로 피땀 흘려 연주한 당사자에게 실질적인 도움은 주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 아닐까? 빚을 내서 음악회를 열고 공짜표(초대권)를 뿌리고 연주한 다음 꽃다발이나 한아름 받아서 무엇하겠는가? 이보다는 금일봉을 보낸다든가 기념품을 선사하는 것이 얼마나 당사자에게 도움이 클 것인가를 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흔히 결혼식이나 장례식 때에 청첩장을 받으면 금일봉을 들고 가는 것과 마찬가지로 음악회 때에도 의례 금일봉쯤은 들고 가는 다정스런 백성이 된다면 얼마나 음악인들에게 위로와 큰 격려가 될까? 이렇게 되면 음악인의 경제적 부담을 조금이라도 덜어 줄 수도 있고 그를 위로 격려해 주는 뜻도 되어 그로 하여금 다시 용기를 내어 다음 발표회를 꿈꿀 수 있는 직접적 동기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열리는 음악회―특히 제1회 발표회는 흔히 창간호 겸 폐간호의 잡지격이 되어 버리는 예가 허다한 것을 목격하게 되는데 이것은 일반이 음악인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나는 본다.
   외국에서는 일년에 한 두번 공연하면 일년은 먹고 살 수 있는 캐런티가 나온다든가 한번 음악회에서 흑자를 보아 남은 돈으로 다음 공연 준비를 마음 놓고 할 수 있게 되니 온갖 힘을 모아 피땀 흘려 예술에만 정진할 수 있는 것을 생각해 볼 때 우리에게는 꿈같은 이야기로만 느껴진다.
   나는 십여년 전부터 음악회에 있어서 꽃다발 주는 것을 반대해 왔다. 이왕 줄 바에는 꽃보다는 오선지를 달라고 말한 일이 한 두번이 아니었다. 모르긴 모르지만 아마도 우리나라에서 음악회 때에 꽃 대신 오선지를 받은 사람은 내가 처음이 아닐까 생각된다. 나는 이렇게 해서 오늘날까지 적어도 오선지 걱정은 안하고 살아 왔으니―오선지가 없어 고민했다던 저 악성 슈베르트 보다는 훨씬 행복스러운 사람이라는 것을 자각하는 동시에 받은 오선지를 사용할 때마다 고마움을 느끼며 이것으로 해서 나는 격려를 받고 나에게 오선지를 준 사람들의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열심히 작곡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꽃 대신으로 금일봉이나 기념품을 선사하는 새로운 풍습이 우리나라에서 날로 날로 퍼지고 퍼질 때 우리 음악계가 자연 발전될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음악회와 우리 작품연주
   우리나라에서 개최되는 음악회의 프로그램만을 보면 그 연주가가 한국 사람이 아닌 것만 같은 착각을 하게 된다. 왜냐하면 우리 작품이 한곡도 들어 있지 않을 때가 절대로 많기 때문이다. 나는 이런 프로그램을 볼 때마다 이 음악회가 누구를 위해서 행해지는 것인가? 이 연주자는 우리나라 사람이 아니고 외국 사람인가? 그에게도 민족혼이 있을까? 또 이런 음악회를 가질 필요가 어디 있을까? 그는 왜 외국 곡만 가지고 연주를 하는 것일까? 그가 음악회를 갖는 목적이 무엇인가? 아니 한국 음악인으로서의 그의 존재가치가 어디 있는 것일까 ....를 반문하고 싶어진다.
   그렇다고 해서 브라질과 같이 우리 작품을 반드시 연주하도록 법령을 만들어 그 시행을 서둘러야 한다고 주장까지 하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음악을 하는 목적의식이 뚜렷한 사람이라면 우리 작품을 연주하는 데에서 더욱 큰 보람을 느낄 수 있어야 할 일이 아닌가?
   쉽게 말해서 우리가 음악을 전공하는 목적이 우리 민족음악 문화를 창조하기 위한 것이요 우리 작품을 올바르게 연주할 수 있게 되기 위하여 서양음악을 공부한다는 것을 바로 깨닫고 이와 같은 올바른 목적의식을 가지고 공부하고 음악활동을 하지 않으면 아무리 외국 작품을 열심히 공부하거나 외국에 가서 외국곡 만을 공부하고 돌아온대도 아무 의의가 없으며 그런 것만을 통해서는 우리 음악문화가 조금도 발전되지 않을 것임을 깨달을 수 있어야 할 것이 아닌가?
   아무리 음악에는 국경이 없다고 하지만 순수한 의미에 있어서 독일 예술가곡은 독일 사람이 부르지 않고서는 참 맛을 낼 수 없다고 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 작품은 우리나라 사람이 연주해야만 제 맛이 나는 법이고 또한 마땅히 그래야만 할 일이 아닌가?
   오늘날과 같은 국제 문화교류 시대에 있어서 우리는 무슨 곡을 가지고 외국과 교류를 할 것인가? 베토벤 작품을 가지고 교류를 할 작정인가?
   내 나라의 것을 수출하고 외국 것을 수입하는 것만이 문화교류이다. 이런 점에 있어서 우리는 먼저 음악회 때 우리 작품을 솔선해서 많이 연주해야 할 것이며 우리 작품을 연주하는 데 대한 민족적 긍지와 예술가적 양식을 가져야겠다. 다시 말해서 우리 작품을 제외하고 외국 작품만을 즐겨 연주하려 드는 이러한 몰지각한 음악인이 없어지는 날 비로소 우리 음악계는 세계를 향해 첫발을 내 디딜 수 있게 되리라.

   「음악회과 초대권」, 「음악회와 꽃다발」, 「음악회와 우리 작품 연주」―  이 세가지가 우리나라에 있어서의 순수음악 진흥을 위한―  아니 고질화되어만 가는 듯한 우리 음악계에 새 바람을 불어 일으키기 위한 나의 제언이다.

< 1968. 7. 가요생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