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집 3집 '스타일과 아이디어'
 

장로

나  운  영

   문교부 주최 제7,8회 전국 음악 경연대회에 첼로부문에 참가자가 단 한 사람도 없었다. 심사원은 십 여명인데 참가자가 없었기 때문에 그 때에 나는 단종애사(斷種哀史)란 수필을 쓴 일이 있다. 언제부터 나의 이두문학(?)이 시작되었는지도 모르나 단종애사(端宗哀史)와 단종애사(斷種哀史),  오락(娛樂)과 오락(誤樂),  학자(學者)와 학자(虐者),  성가(聖歌)와 성가(性歌),  음악(音樂)과 음악(淫樂),  공처가(恐妻家)와 공처가(恭妻家),공처가(攻妻家),  창악(唱樂)과 창악(娼樂),  무용가(舞踊家)와 무용가(無踊家),  전공(專攻)과 전공(全攻),  전위예술(前衛藝術)과 전위예술(全僞藝術) 등등 나는 수 많은 새로운 말을 만들어 냈다.

   지난 6월 6일 나에게는 장로라는 무거운 직책이 맡겨졌다. 아직 40대의 나에게 늙을 '노(老)'자는 도무지 어울리는 것 같지 않아 곰곰히 생각해 보았다. 말하자면 자칭 이두문학인으로서의 본능이 다시 발동된 셈이다.
    장로에는 여섯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장로(長奴)이다. 주의 종이니 '착하고 게으른 종'은 물론 '악하고 게으른 종'이나 '악하고 부지런한 종'이 되지 말고 '착하고 부지런한 종'이 되어야겠다.
    둘째는 장로(長虜)이다. 내가 23년째 성가대 지휘자로 섬겨오고 있는 서울 성남교회에서 장로가 되었으니 평생토록 서울 성남교회의 포로가 된 셈으로 알고 그야말로 개근 낙제생이 되는 한이 있더라도 내 교회를 졸업하지 말아야겠다.
    셋째는 장로(長努)이다. '천재는 없다' '재주있는 자는 재주로 망한다'는 말을 나는 믿고 있기 때문에 베토벤을 본받아 항상 힘써 작품을 쓰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작품이란 수 없이 많이 쓰는 가운데 잘못해서 한 두 걸작이 나올 수 있는 것이니 나는 교향곡 11편에 만족하지 말고 좀 더 좋은 작품, 개성적인 작품, 외국 2세적인 작품이 아닌 한국의 현대음악을 쓰기 위해 더욱 힘써야겠다.
    넷째는 장로(長勞)이다. 이것은 셋째와 거의 비슷한 뜻이 되겠지만 한 여름에 개미처럼 땀흘려 꾸준히 일을 해야겠다. '작품은 99퍼센트의 땀과 1퍼센트의 영감으로 이루어진다'는 말을 생각해 볼 때 쉬지 않고 노동하는데서 삶의 보람을 느낄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다섯째는 장로(長怒)이다. 특히 교회에 있어서 항상 분쟁을 일으키는 자가되어서는 안되겠다. 장로는 성직자와 교인 사이에서 중재역할을 함으로써 모든 일을 은혜스럽게 또한 지혜롭게 처리해 나가야 할 것이다. 너그러운 마음, 부드러운 마음의 소유자가 되어야 덕 있는 자로서 존경을 받을 수 있을 것이 아닌가? '일노 일노'란 말이 있듯이 성내는 일은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이로울 것이 없다. 다만 악과 불법, 무법을 보고 참지 못하는 마음, 즉 의분을 느낄 줄도 아는 사람이 되어야만 사회에 있어서나 교회에 있어서나 올바른 현실참여를 할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겠다.
    여섯째는 장로(長老)이다. '신노로심불로'란 말이 있는데 우리나라 사람 중에는 '심로신불로'에 속하는 자가 더 많지 않나 생각된다. 이 조로증 환자가 득실거리는 사회가 되어서는 안될 말이다.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란 말이 있지만 나라에서 연금을 주고 별장가지 지어주었건만 30년동안 작품하나 쓰지 못하고 있다가 그만 자연사 해 버린 핀란드의 작곡가 시벨리우스의 경우를 생각한다면 그에게 있어서는 혹시 '예술은 짧고 인생은 길다'란 말이 더 어울리지나 않을는지? 그러나 한편 생각해 볼 때 우선 우리는 오래 살고 볼 일이 아닐까? 모차르트 같은 작곡가는 천재였으니 오래 살 필요가 없겠지만 나 같은 범인은 좀 오래 살아야만 천재가 해 논 일의 몇 분의 일이라도 해낼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나에게 맡겨진 일을 감당해 내려면 늙도록 살아 남아야 되겠다. 그래야만 이 민족, 국가, 학계, 교계, 악계에 진 빚을 갚아 나갈 수 있을 것이 아닌가? 그렇다고 나에게 불로장수의 뽀족한 비결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건강에 유의하여 인생여로에 있어서 적어도 도중하차하는 자가 되어버리지는 말아야겠다. 항상 생각을 젊게 가질 뿐만 아니라 시기와 질투, 모략과 중상 같은 것을 모르고 그저 소신껏 '나의 길'을 묵묵히 달릴 때 나는 늙지 않을 것을 확신한다.
  뜻밖에 나운몽 장로 아닌 나운영 장로가 되고 보니 굴레를 뒤집어 쓴 소와 같은 느낌이 든다. 그러나 그럴수록 노(奴),노(虜),노(勞),노(努),노(怒),노(老)의 여섯 글자의 뜻을 바로 알고 우선 나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은 사람부터 되어야겠다는 마음가짐을 갖게 된다.

    나는 바하처럼 교회음악에만 몸을 바칠 생각은 없다. 그러나 장로가 된 것을 계기로 하여 특히 교회음악의 토착화를 위해 더욱 힘을 기울이고 싶다. 교회음악이 날로날로 세속화되어만 가는 이때에 무엇보다도 교회음악의 토착화와 현대화가 급선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미 나는 「교향곡 제7번」(성서)과 「교향곡 제10번」(천지창조)를 비롯하여 「크리스마스 칸타타」, 「부활절 칸타타」 그밖에 「다윗의 노래」등을 작곡하였지만 앞으로는 한국 찬송가와 오페라, 오라토리오 「탕자가」 작곡에도 심혈을 기울여야겠다. 교회음악은 음악의 극치이며 따라서 교회음악은 세속음악보다 훨씬 쓰기가 힘든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나로서 베토벤의 만년의 현악 4중주곡과 같은 심오한 작품을 쓸 수 있는 자가 되고 싶다.

<1971. 8. 월간중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