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집 3집 '스타일과 아이디어'
 


나  운  영

   너 나 할 것 없이 우리나라 사람처럼 공짜구경을 좋아하는 백성은 없을 것 같다. 그런데 공짜구경 중에서도 가장 볼 만한 것은 불구경이다. 물론 불난 집 식구들에게는 좀 미안한 노릇이지만 구경꾼으로서는 그저 통쾌(?)하기만 하니 우리네들의 마음이 모두 글러 먹은 탓일까?
   벌써 20년 가까이 되는 일이지만 부산 국제시장에 큰 불이 났을 때 나는 남부민동 언덕에서 단숨에 뛰어내려와 밤 늦도록 신나게 불구경을 했었다. 그 때의 나의 기분을 요즈음 말대로 한다면 그야말로 스릴과 샤쓰빤쓰(서스펜스)가 만점이라고나 표현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불이 났을 때 구경꾼들이 몰려들면 소방대원들의 작업에 큰 지장을 주기만 할 뿐 별로 도움도 안될 것이지만 기어코 몰려가서 제각기 한마디씩 「그 불 잘 탄다」 「정 신나게 타누나」하고 감탄사를 연발하게 되는 것을 어찌하랴?

   다시 10년전의 일을 더듬어 본다.
   새벽에 깜짝 놀라 일어나보니 우리집 옆 옆집에서 불이 났다. 우선 고이 잠든 아이들을 때려 깨워 어머님에게 맡겨 놓고 우리 내외는 물건을 꺼내기 시작했다. 아내는 금붙이와 돈부터 꺼내기 시작했다. 그러나 나는 내 작품 보따리부터 꺼냈다. 피아노에, 책에, 레코드에, 전축에 - 모두 타서는 안될 것뿐이지만 그런 것은 둘째 문제고 나에게 있어서는 첫째도 작품이요 둘째도 작품이니 작품은 나의 분신일 뿐만 아니라 이 중 하나라도 타 버린다면 지금까지 살아온 보람과 흔적이 없어지는 것이 아닌가? 때는 마침 겨울인지라 다음 차례로는 옷과 이부자리를 꺼냈다. 욕심 같아선 세간을 모조리 꺼내서 피난시키고 싶었지만 그럴 시간 여유도 없고 해서 제각기 가장 소중히 여기는 것을 일단 꺼낸 다음에 비로소 불구경을 시작했다.
   남의 집 불구경은 그토록 좋아했던 나지만 나 자신이 이 일을 당해보니 손이 떨리고 마음을 걷잡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바람이 불어 닥쳤다. 그 바람이 처음에는 남의 집 쪽으로 불더니 차차 내 집 쪽으로 불어오는 것이 아닌가? 어느덧 옆 옆집의 불이 옆집으로 옮겨 붙기 시작했으니 이 일을 어찌하랴? 처음에는 그저 눈에 띄는 것만을 꺼내 놓았는데 바람이 이쪽으로 불어대니 눈앞이 캄캄해진다. 하다 못해 부지깽이 하나까지라도 태우는 것이 아까울 지경인데…

   이 때에 나는 얼떨결에 이런 기도를 했다. "하나님 아버지! 바람이 저쪽으로 불게 해주십시오, 내 집만은 타지 않게 해주십시오…" 진심으로 간구한 내 기도가 그래도 하나님께 상달 되었던지 바람의 방향이 바뀌기 시작했다. 나는 여기에 힘을 얻어 더욱 간절히 기도했다. 이러는 동안에 불은 드디어 꺼져갔다. 나는 또 다시 기도를 드렸다.  "하나님 내 기도를 들어주셔서 고맙습니다 …"
   천만다행이라 생각하면서 다시 짐을 끌어들이면서 곰곰히 생각해 보았다. 나의 기도가 그것이 과연 기도라 할 수 있을까? 바람이 남의 집 쪽으로 불게 해 달라고 했으니 이런 못된 기도가 또 어디 있을까? 어째서 "지금이라도 당장 바람이 그쳐서 불이 꺼지게 해주십시오"하고 기도하지 못하고 그토록 이기적인, 악독한 기도를 했었을까? 나는 내 자신이 부끄러워졌다기보다 미워졌다. 나는 평소에 성선설을 믿어왔지만 나만은 예외에 속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나는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용서를 빌었다. "나의 어리석고 간악한 마음을 고쳐주십시오…"
   편집자는 납량특집으로 나에게 글을 청했는데 여름에 불 이야기는 얼토당토 않은 것 같기도 하지만 이열치열이란 말도 있으니 과히 번지 수가 틀리는 이야기는 아닐 듯 싶다. 지금도 불구경을 즐기던 일과 바람이 남의 집 쪽으로 불게 해 달라고 기도했던 일을 생각하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얼굴이 화끈 달아오다가도 식은 땀이 등골을 지나간다.

 <1971. 9.  월간문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