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집 3집 '스타일과 아이디어'
 

조가 (弔歌) 전문

나  운  영

   20년전 성재 이태영선생이 돌아가신 며칠 후에 나는 조가 (弔歌)작곡 부탁을 받았다. 정지훈선생이 작사한 조가 가사를 놓고 나는 밤새워 작곡해서 보냈다. 그 뒤로부터 해공 신익희선생, 인촌 김성수선생, 유석 조병화선생, 가인 김병노선생, 창랑 장택상선생, 부통령 함태영선생, 낭산 김준연선생 등 정계의 거물급의 장례 때마다 맡아놓고 조가를 작곡하게 되었으니 이게 무슨 인연 때문일까?
   선친이 김성수, 최두선 선생과 더불어 중앙고보 학감을 역임했었고 나 자신이 또한 중앙고보를 나왔기 때문에 그런 인연으로 내게 맡겨진 것일까? 그렇지 않으면 장의 위원회나 장의사와 특별히 무슨 관계라도 있어서 일까? 아무리 생각해 봐도 그 까닭을 알 도리가 없다.
   어언 스무차례 이상이나 결혼주례를 맡은 일은 있어도 아직까지 「장례주례」는 맡아본 일이 없는데 어째서 조가는 내게만 부탁이 오는지 그 까닭을 가끔 생각해보게 된다.

   나는 교향곡, 협주곡, 예술가곡, 교성곡, 성가를 작곡하는 한편 교가, 사가를 비롯하여 국민가요, 응원가, 동요 등 닥치는 대로 쓰고 있지만 조가를 처음 부탁받았을 때에는 좀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단조로 쓰면  집시의 노래 또는 일본 유행가조가 되기 쉽기 때문이다.   여기서 나는 무엇보다도 한국적 색채가 짙게 풍기도록 작곡하느라고 무진 애를 썼다. 그랬더니 일반적으로 좀 부르기가 힘들긴 하지만 정말로 눈물이 절로 나올 정도로 슬픈 곡이 되어 버렸다. 조가를 전문적(?)으로 작곡하다보니 이제는 추도음악회를 또한 연거푸 마련하게 되었으니 이것마저  전문이 되지나 않을는지….  지난 2일 이인범 학장 추모음악회에 이어 오는 16일에는 현제명박사 추모음악회를 갖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 음악회가 연세대학교 음악대학 현제명박사 기념관 건립추진에 큰 계기가 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1973. 10. 18. 한국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