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집 3집 '스타일과 아이디어'
 

음악 고문

나  운  영

   「음악고문」이라고 하면 누구나 이것도 감투의 하나로 생각하기 쉽겠지만 내가 말하는 고문이란 고문(顧問)이 아니라 고문(拷問)이다.
   기차나 고속버스를 타면 의례 카세트 테이프로 음악을 들려준다. 지루한 여행에 지친 승객들을 조금이라도 위로해 주기 위해 이처럼 서비스를 해주니 그저 고맙기만 하다. 그런데 들려오는 음악은 거의가 소위 유행가이며 그나마도 여러 가지가 아니라 대여섯 곡이 항상 되풀이되기 때문에 한 두 시간을 앉아 있노라면 귀에 못이 박히도록 같은 곡을 복습(?)하게 된다. 그것도 좀 조용조용히 들려 주었으면 모르되 너무 큰 소리로 들려주니 우리같이 유행가를 좋아할 줄 모르는 족속들은 들을 수도 안들을 수도 없어 그야말로 진퇴유곡이다.
   그야 내 취미에 맞는 음악만을 들려 달라고 할 수는 없지만 순수음악과 경음악, 고전음악과 현대음악, 양악과 국악, 기악곡과 성악곡 등 좀 번갈아 골고루 들려 주었으면 그래도 참고 견딜 수가 있겠는데 거의 유행가만을 강제로 먹여주니 이것을 참고 꿀꺽꿀꺽 삼키고 있노라면 음악고문(音樂拷問)이란 말이 저절로 머리에 떠오른다. '음악이란 이다지도 사람을 괴롭히는 존재일까? 내가 - 베토벤처럼 - 왜 귀머거리가 못 됐단 말인가?'하는 탄식이 절로 나온다.
   비단 기차나 고속 버스뿐만이 아니라 시내 버스, 택시, 다방 등 가는 곳마다 과히 고상치도 못한 음악 속에서 살게 마련이다. 이 한가지만으로 우리나라의 민도(民度)가 외국인들에게 그릇 저울질될까봐 두렵기만 하다.

 <1970. 7. 월간 샘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