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집 3집 '스타일과 아이디어'
 

한 여름 밤의 꿈

나  운  영

    「한 여름 밤의 꿈」이란 제목으로 글을 쓰려하니 갑자기 독일의 작곡가 멘델스존이 머리에 떠오른다. 그는 문호 셰익스피어의 희곡에 의한 부수음악으로 「한 여름 밤의 꿈」을 작곡했는데 특히 이 곡에 나오는 결혼행진곡은 저 바그너의 결혼 행진곡과 함께 우리가 늘 듣게 되는 명곡이다. 언제부터인지는 몰라도 결혼식에 신부가 입장할 때에는 바그너의 것이 연주되고, 신랑 신부가 퇴장할 때에는 멘델스존의 것이 연주되는 데 아마 멘델스존의 것이 화려하기 때문에 마지막에 연주되는 것이 아닐까?
    이제 <한 여름 밤의 꿈>이란 제목을 놓고 다시 한번 생각하니 문득 머리에 떠오르는 것은 우선 알래스카의 신기한 풍경이다. 나는 지난 4월 중순에 미국에 갈 때 서울 - 도쿄 - 앙카라지 - 시애틀 - 포틀랜드의 코스를 택했었다. 도쿄를 거쳐 알래스카의 앙카라지 공항에 내려보니 바다가 온통 얼어붙어 있었다. 물론 빙산에 대해서는 중학 시절에 배웠던 것이긴 하지만 넓은 바다, 끝이 없는 바다가 - 아니 파도가 그대로 얼어붙어 버렸고 군데군데 빙산이 우뚝 서 있는 게 아닌가? 그 때가 4월 중순인데 알래스카의 바다는 이같이 얼음으로 뒤덮여 있는 것이 참으로 신기하고도 신비스러운 느낌마저 들었다. 다시 나는 비행기를 갈아타고 시애틀에 내리니 시내 한복판에 큰 호수가 있는데 그 호수와 호수가에 핀 벚꽃의 빛깔이 너무나 대조가 되면서도 잘 어울리는데는 다시 한번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또다시 비행기를 타고 포틀랜드로 향했는데 도중에 흰 눈에 쌓인 높은 산을 불 수 있었다. 마치 우리가 흔히 사진에서 볼 수 있는 일본의 후지산을 연상케 했다. 산의 모양은 물론 정상이 눈에 덮여 있는 모습이 후지산과 비슷한 것을 볼 때 '과연 장관이로다!'라는 감탄이 저절로 터져 나왔다. 그 산 위를 비행기로 지나가니 말이다.
   드디어 포틀랜드에 내려보니 이곳은 그야말로 그린벨트 그대로였다.
   어찌나 큰 나무와 잔디가 많은지 - 뿐만 아니라 모든 주택이 목조건물인데다가 같은 모양은 찾아 볼래야 찾아 볼 수가 없고 각각 그들의 취미에 따라 모두 개성 적으로 짓고 사는 점이 특이했다. 즉 그들의 건축양식이 각각 다른 것을 볼 때 건축이야말로 <얼어 붙은 음악>이라는 말의 참뜻을 이해할 것만 같았다.
   그 뒤 나는 뉴욕, 보스톤, 워싱톤, 시카고, 로스엔젤레스를 거쳐 하와이의 호놀룰루에 도착하자 열대식물이며, 끝없는 바다며, 비키니 차림으로 거리 중심지를 활보하는 여성들을 보고 그곳이야말로 자상낙원 그대로라고 생각했다. 무더우면서도 시원한 기후라든가 산천초목 대자연이 마치 우리 제주도와 비슷하다고 느꼈다.
   도쿄를 거쳐 드디어 서울에 돌아오니 알래스카와 시애틀과 포틀랜드 그리고 하와이의 풍경이 눈 앞에 아른거린다. 그저 시원한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이렇게 늘 이 풍경을 회상하기만 하면 아마 올 여름은 선풍기나 에어콘 없이도 견뎌낼 것만 같다.
   동화에 나오는 개미와 베짱이가 생각난다. 나도 개미를 본받아 올 여름 열심히 작품을 써야겠다.
   개미가 피땀 흘려 일할 때 놀기만 했던 베짱이의 신세를 잘 알고 있기에--- 덥다는 핑계만 할 것이 아니라 더위를 어떻게 이기느냐가 문제이다.
   삼복더위하면 초복, 중복, 말복을 의미하는데 이것은 또한 「세 번 엎드린다」는 뜻도 된다. 즉 가장 더운 초복 날, 중복 날, 말복 날 만이라도 부질없이 밖으로 나돌아 다니지 말고 집에 돗자리를 깔고 누워 눈을 지그시 감고 다시금 알래스카의 빙산과 빙하, 시애틀의 호수, 포틀랜드의 눈에 덮인 산과 그린벨트 그리고 하와이의 해변가를 더듬어 보면서 언젠가는 또 한번 가볼 「한 여름 밤의 꿈」이나 꿔볼까나….

 <1969. 9. 월간 학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