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집 3집 '스타일과 아이디어'
 

한국 현대음악의 현황과 그 전망

나  운  영

   우리나라에서 첫 번째로 있었던 본격적인 작곡 발표회는 1939년 동아일보 주최 「제1회 창작작품발표 대 음악제」였다.  이때에는 홍난파 작곡의 <관현악 조곡>과 <관현악부 독창조곡-나그네의 마음>을 비롯하여 박경호, 김재훈, 채동선, 김세형, 김메리, 이흥렬, 임동혈, 김성태의 곡이 연주되었고 두번째로 있었던 작곡발표회는 1946년의 「우리작품발표 음악회」로서 김성태 작곡의 <현악 4중주를 위한 소 조곡>을 비롯하여 김순애의 <바이올린 소나타>, 나운영의 <첼로 소나타>와 그밖에 홍난파, 박태준, 현제명, 김세형, 이흘렬, 임동혁의 성악곡이 연주되었다.
   그후 6.25사변 중 임시 수도인 부산에서 1952년 「한국 현대음악학회」(나운영 주재)가 창립되어 레코드를 통한 현대음악 계몽을 시작하였으며 정부 환도 이후 1957년 한국 현대음악학회가 「한국 현대음악협회」로 재 발족되는 동시에 국제 현대음악협회에 가입하여 동 협회의 한국지부를 겸하였고, 「창악회」(이성재 주재)가 탄생하였으며 세번째로 있었던 작곡발표회는 1959년의 「정부수립 10주년 경축 대 합동음악회」로서 김동진 작곡의 <교성곡 승리의 길>을 비롯하여 나운영의 <교향곡 제1번>, 김성태의 관현악곡 <경축 행진곡>이 연주되었고,  네번째로 있었던 작곡발표회는 1962년 제1회 서울 국제음악제의 「한국 작곡가의 밤」으로서 구두회 작곡의 교향시 <어둠을 깨치는 아침>과 김동진의 서곡 <양산가>와 나운영의 <교향곡 제2번>이 연주되었고,  다섯번째로 있었던 작곡발표회는 1965년 세계 문화 자유회의 한국본부 주최 「현대 음악발표회」로서 윤이상 작곡의 <플루트와 피아노를 위한 가락>을 비롯하여 김달성의 <9중주곡>, 이상근의 <첼로와 피아노를 위한 모자이크 조곡>, 나운영의 <관, 현, 타악기를 위한 시나위>가 연주되었고,  드디어 1960년부터 서울 음악제가 매년 정기적으로 열림으로써 기성과 중견과 신인들의 작품이 연주되고 있으며,  한편 1971년에 우리나라가 다시 「국제 현대음악협회」에 가입되어 작품을 제출하고 있는 중에 윤이상, 박준상, 김정길이 입상한바 있고 같은 해에 「아주 작곡가 연맹」이 결성되어 금년 9월에 「제2회 아주 작곡가 회의」에 우리나라가 참가하기에 이르렀다. 이와 같은 배경 속에서 우리나라의 현대음악은 무럭무럭 자라나고 있어 「서울 음악제」와 「창악회」와 한국 현대음악협회 주최의 「트리톤 작곡발표회」룰 통한 꾸준한 활동이 크게 기대되고 있다.
   작곡 기법면으로 관찰할 때에는 대체로 1940년부터 김순남, 이건우 등에 의해 무조적인 음악이 시도되었고,  1955년 소위 12음 기법에 의한 12음음악이 나운영에 의해 처음으로 시도되어 <12음 기법에 의한 피아노 3중주곡>과 <피아노 전주곡 중 수수께끼>란 곡이 발표되었으며,  1924년에 쉔베르그에 의해 창안된 12음 기법이 일본에는 1950년경에 상륙했고, 우리나라는 1955년에 상륙했다는 사실을 생각해 볼 때 우리가 일본에 비하면 도리어 비교적 이른감이 없지 않다. 왜냐하면 일본은 이미 1930년대부터 무조음악을 받아들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즉 우리가 무조음악을 받아들인 시기에 비하면12음음악의 상륙이 너무도 빨랐다고 말할 수 있다. 그리하여 오늘날 윤이상, 이상근, 정윤주, 나운영, 김달성, 이영자, 최인찬, 강석희, 백병동, 박준상, 박재열, 김용진, 나인용, 김정길, 이성재, 박중후, 윤양석, 이연국, 오숙자, 최동선 등등이 주로 현대적 기법에 의한 작품들을 계속 발표하고 있다.
   나는 '한국음악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라는 글에서 대략 다음과 같이 말했다.   '양악이 이 땅에 뿌리를 깊게 뻗은지 90년을 맞이한 오늘 소위 신음악-다시 말해서 한국양악을 나는 3기로 나누어 보고자 한다.
       제1기--- 1885~1945
       제2기--- 1945~1969
       제3기--- 1969~ 현재
   즉 제1기는 양악의 수입기, 해동기, 요람기요 제2기는 정착기요 제3기는 성장기라고 말해도 좋을 것이며 이를 다시 다른 각도에서 본다면 다음과 같이 말할 수도 있으리라.
       제1기 --- 양악의 섭취시기
       제2기 --- 양악의 토착화시기
       제3기 --- 국악의 현대화시기
   즉 제1기는 양악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인 시기요,  제2기는 국악에 대한 이해가 점차 깊어짐에 따라 민족음악 창조에 대한 자각을 가지고 우선 국악에서 민속적 내지 민족적 소재를 발굴, 발전시킴으로써 토착화를 위해 부심하던 시기요,  제3기는 작품이 아무리 한국적이라해도 현대성을 띠지 못하면 시대에 뒤떨어진 낡은 음악으로 전락해 버리고 마는 것이기에 양악에 있어서의 현대적 내지 전위적인 수법을 연구, 섭취함으로써 한국적 아이디어와 현대적 스타일이 결부된 작품을 쓰기 위해 더욱 전진하고 있는 시기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연세춘추 제 708호 참조)

   이제 '한국 현대음악의 전망과 세계음악속에서의 한국음악의 위치'란 제목을 놓고 생각해 볼 때 우리에게도 머지 않은 장래에 현대음악의 개화기가 오고야 말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왜냐하면 이미 양악의 정착기를 지나 성장기에 도달해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특히 주목할 것은 첫째로 「서울 음악제」의 작품수준이 해를 거듭할수록 향상되고 있는 점이고 둘째로 「창악회」에서 매년 2회에 걸쳐 발표되는 작품들이 실험과 모색을 거듭하고 있는 점이요 셋째는 동아콩쿨의 작곡부문도 거의 현대음악 일색으로 변모해가고 있는 점이요 넷째는 「아주 작곡가 연맹에 금년부터 작품을 출품하게 된 점이고 다섯째로는 한국현대음악협회 주최「KSCM작곡 콩쿨」이 금년부터 국제심사원에 의해 우수작품을 선정하게 된 점이요 여섯째로 국제 현대음악협회 한국지부에서 「세계음악제」에 출품을 매년 서두르고 있다 금년에도 박준상이 입선되었다는 기쁜 소식이 전해지고 있는 점과 일곱째로 금년부터 「한국문화예술 진흥원」에서 작곡가들에게 작품을 위촉했고 작곡료를 주는 등 창작지원과 공연지원을 하고 있어 이에 따라 오페라, 관현악곡, 실내악곡, 성악곡, 뮤지컬 등이 속속 생산되고 있는 사실을 생각해 볼 때 이런 작품이 우선 국내에서 초연되고 이 악보가 출판되어 외국으로 보내질 때 진정한 의미에 있어서의 국제음악문화의 교류가 이루어짐으로써 세계적으로 한국음악이 인정받을 날이 멀지 않다는 느낌이 든다. 이미 윤이상은 국제적으로 널리 알려진 작곡가가 되어 버렸으며 이밖에도 국내외에서 활동하는 작곡가들이 상당히 많은 사실로 보아 한국현대음악의 전망은 밝고도 밝으며 세계음악 속에서의 한국음악이 점차 주목을 끌고 있는 점에서 그 위치가 굳어져가고 있다고 말해도 조금도 과장된 표현이 아니라고 느껴진다.
   다만 우리의 현대음악이 외국을 뒤늦게 모방하거나 외국 2세적인 작품이 되거나 국적불명의 곡이 되거나 현대음악의 아류가 되지 않기 위해 특별한 주의가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뿐만 아니라 새로운 스타일만을 지나치게 추구하는 나머지 내용없는 곡, 예술적 가치가 없는 전위(前衛)음악 아닌 전위(全僞)음악으로 전락해 버리는 것을 경계해야겠다. 구미의 새 것을 재빠르게 받아들여서 외국으로 역수출해 버리는 일본을 본받지 말아야만 개화기가 속히 다가올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 바이다.

  <1975. 1. 1. 외대학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