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집 4집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악취미

나  운  영

   언제부터 사진이 시작되었는지 몰라도 사진기를 발명해 낸 사람은 분명히 마술사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거울에 비치는 모습은 순간적인데 그치지만 사진은 거의 100년전에 찍은 것이라도 그대로 보존되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얼굴은 고사하고 이순신 장군의 얼굴만 해도 가지각색이니 사진기가 좀 더 일찍 발명되었던들 그런 일은 없지 않았겠는가 ….

   나는 사진에 찍힐 때마다 느끼는 점이 세가지가 있다. 첫째로 너무 시간이 오래 걸리는 점이다 모든 기계문명이 발달했는데 어째서 다리가 달린 사진기만은 고색이 창연한 그대로이고 수속 절차가 많은지 - 검은 보자기를 뒤집어쓰고 한 참 기계를 매만지다가 이젠 찍나보다 하고 긴장해 있으면 그제서야 원판을 끼우니 시간 낭비가 꽤 심하다 좀더 빠르게 해치우는 방법은 없겠는지 ….
   둘째로 자연스러운 모습 그대로를 찍었으면 좋겠는데 '고개를 들어라', '고개를 수그려라', '옆을 보아라', '약간 웃어라', '코를 살짝 들고 이마를 내려라(?)' 등등 하도 까다로운 주문이 많다 보니 얼굴 뿐만 아니라 온몸이 굳어져 버려 나중에 사진을 찾고 보면 이게 내 얼굴인가 싶을 때가 있다 그저 찍고 싶은 대로 내 버려 둘 수는 없겠는지 …

   셋째는 사진을 찍을 때 아무 예고도 없이 찍으면 어느 찰나에 셔터를 누를지 몰라 긴장하다 보면 내 눈보다 더 큰 눈이 되기도 하고 혹은 성난 얼굴 모양으로 되기 쉽다 그래서 '하나, 둘, 셋'하고 찍어 달라고 부탁하면 '셋' 다음에 한참있다가 셔터를 눌러 버리니 참다 못해 또 눈을 깜빡하게 되어 멀쩡한 사람이 졸지에 소경이 되어 버리거나 - 또는 그 소경된 눈을 개안수술(?)한 탓으로 전혀 딴 사람이 되기도 한다 그래도 요즈음은 '펑'하고 터뜨리는 것은 없어져서 천만다행이지만 몇해 전만 해도 그 소리에 놀라 눈을 감아 버리는 경우가 많았던 일을 생각하면 우습기만 하다. 아예 내 마음대로 포즈를 취하고 셔터도 내가 누르도록 해 줬으면 가장 자연스러운 사진이 될 수 있지 않을까 ….

   나는 사진을 찍는 것보다는 찍히는 편을 더 좋아한다 그 까닭은 좋은 사진기를 가지고 있지 못하기도 하고 잘 찍을 줄 모르기도 하지만 사진을 찍다 보면 남만 찍어 주고 정작 나는 찍히지 못하는 것이 아무리 생각해도 억울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먼저 찍어주고 다음에 다른 사람보고 셔터를 눌러 달라고 부탁하면 결국 같은 사진을 두 번씩 찍는 결과가 되기 때문에 필름이 아까운 생각이 든다.
   물론 사진 찍는 것이 좋은 취미인 줄 나도 모르는 바 아니나 도가 지나면 00가 아니라 00이 되어 버리기 쉬운 법이다 왜냐하면 더 좋은 사진기, 더 비싼 것, 최신의 것을 사려 들게 마련이고 더구나 칼라 사진인 경우에는 비용도 많이 드는 등 경제적인 면에 부담이 가는 것도 사실이지만 한편 사진을 찍으려고 산천을 두루 다닐 시간 여우도 없기 때문에 그저 찍히는 것으로 만족하고 살아갈 수밖에 없다.

   그 대신 나는 사진을 액자에 넣고 벽에 거는 데에는 하나의 고집이 있다 즉 사진을 밑 종이에 붙일 때 상하 좌우를 살펴서 중앙에 붙이는 것이 아니라 여백을 어떻게 살려야만 사진이 더 예술적으로 보이게 될까 생각해 본다 그래서 어떤 사진은 밑 종이의 윗 부분을 남기고 또 어떤 사진은 옆 부분을 남기기도 하고 때로는 아예 사진을 삐뚤게 붙이기도 한다 이렇게 비정상적으로 붙인 사진을 똑바르게 벽에 걸어놓고 보면 볼수록 예술적 매력이 있어 보인다 그림처럼 사진도 구도를 생각하고 찍어야만 예술적인 사진이 되는 법인데 나는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밑 종이에 붙일 때까지도 구도를 생각하게 되니 더욱 예술적일 수밖에 없지 않은가 ….
   이보다 더 대담한 짓을 나는 가끔 감행한다. 즉 보통 사람들처럼 사진을 밑 종이의 중앙에 붙인 것을 액자만 삐뚤게 달아 놓고 보면 이것이 더욱 좋은 것만 같이 보이니 본래 내 눈이 비뚤어진 탓인지 내 마음이 삐뚤어진 탓인지 - 취미 쳐놓고는 악취미라고 비난을 받을지 모르나 사진에 따라서는 그것이 예술적이라기 보다 요술적(?) 효과가 나는 수도 있으니 어찌하랴---.
   이 밖에도 사진을 늘 같은 곳에만 걸어둬 버릴 것이 아니라 가끔 서로 위치를 바꿔서 달면 방의 분위기가 달라져서 새 집에 온 느낌이 드는 법이니 나의 이런 저런 악취미를 따를 사람은 없겠는지 …

 <월간 「사진회보」 1977.11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