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집 4집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아버지의 교훈

나  운  영

   자고로 자기 자랑하는 사람을 팔불출이라고 하는데 아버지의 교훈이란 제목으로 글을 쓰자니 자칫 구불출(九不出)이 되지나 않을까 염려된다.
   내 나이 여섯 살 때에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셨으니 어렴풋이 아버지의 얼굴이 떠오를 뿐 아버지에게서 무슨 교훈을 받았는지 뚜렷한 증거를 대라면 좀 당황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나는 세 가지 교훈을 받았다고 확신한다.

   첫째는 국악에 관심을 가지라는 교훈이다. 아버지 나원정은 동경제국대학을 나온 생물학자요, 교육자였으나 남달리 국악에 조예가 깊었다. 그래서 국악기라면 거문고, 아쟁, 가야금, 양금, 대금, 퉁소, 단소 등등 수 많은 악기를 사 모아 놓고 한 달에 두 번씩 친구들을 사랑방에 불러 정악 「영산회상」을 합주하시곤 했다. 그러니 말하자면  '아마츄어 국악인'이었던 모양인데, 내가 여섯 살 때에 처음으로 양금을 가르쳐 주셨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나는 어려서부터 남달리 국악에 관심을 갖게 되었으니 장래에 국악을 소재로 한 훌륭한 작곡을 하라는 교훈이라고 생각된다. 나의 작품 가운데 가곡 「접동새」, 「산」을 비롯하여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산조」, 「교향곡 제9번」 등 국악을 소재로 한 작품을 내게 한 까닭이 여기에 있다.
   둘째로 아버지는 당시 소문난 골동품 수집가여서 추사의 서화를 비롯하여 청자에 이르기까지 수 많은 골동품을 수집하셨는데 나 역시 아버지의 교훈을 받아 김인식의 「영산회상」, 이상준의 『조선속곡집』, 『창가집』 등 옛날 책은 물론 송만갑, 백낙준, 하규일 등의 국악 유성기판을 수집하여 마침내 음악박물관까지 차려 놓게 되었으니 말이다.
   셋째로 「새문안교회 85년사」를 보면 1917년 집사 명단에 김인식, 이상준, 홍난파와 함께 아버지의 이름이 실려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으니 이를 통해 볼 때 예수를 믿으라는 교훈을 남긴 셈이다. 오늘날 100여편의 찬송가와 성가 독창곡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피난처 있으니」, 「주기도」를 비롯하여 「부활절 칸타타」, 「교향곡 제10번(천지창조)」
등 교회음악을 작곡하는 한편 32년 동안 성가대를 지휘해 오던 서울 성남교회를 그만두고 금년 봄에 내 손으로 운경교회를 세우고 이 곳에서 '신작 성가 월례 봉헌예배'를 매월 정기적으로 드리게 되었으니 - 오늘의 나를 있게 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리면서 이 모두가 우리 아버지의 교훈에 따른 것임을 생각할 때 감개가 무량하다.
   결국 아버지께서는 일찍 돌아가셨으나 나에게 옛 것을 아끼고 하나님을 경외하라는 생활의 지혜를 남겨 주신 것이다.     

<월간 「건강의 벗」 1980. 12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