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집 4집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현대음악의 수입과 풍토조성

나  운  영

   우리나라 최초의 작곡 발표회는 1933년 10월 10일에 개최된 「현제명. 홍난파 작품 발표 연주회」일 것이다. 조선음악가협회 주최로 이화여자전문학교 강당에서 열린 이 날의 레퍼토리는 다음과 같다.

     제 1 부
       1. 여성 합창…경성보육 합창대
           (가) 봄노래(홍난파 작곡)
       2. 테너 독창…이유선(최성두 반주)
           (가) 옛강물 찾아와(홍난파 작곡)
           (나) 장안사(홍난파 작곡)
           (다) 금강에 살으리랏다(홍난파 작곡)
       3. 바이올린 독주…홍성유(김원복 반주)
           (가) 애수의 조선(홍난파 작곡)
           (나) 동양풍의 무곡(홍난파 작곡)
       4. 소프라노 독창…채선엽
           (가) 가고파(현제명 작곡)
       5. 테너 독창…현제명
           (가) 관덕정(홍난파 작곡)
           (나) 옛동산에 올라(홍난파 작곡)
           (다) 입담은 꽃봉오리(홍난파 작곡)
       6. 합창…연희전문 합창대(지휘:현제명, 반주:최성두)
           (가) 뱃노래(현제명 작곡)
     제 2 부
       1. 4중창…연희전문 4중창단
       2. 테너 독창…이유선
           (가) 이 마음(현제명 작곡)
           (나) 그집 앞(현제명 작곡)
           (다) 산에 올라(이은상 작사.홍난파 작곡)
       3. 바이올린 독주…홍성유(김원복 반주)
           (가) 로만스(홍난파 작곡)
           (나) d단조
       4. 소프라노 독창…채선엽(김영의 반주)
           (가) 봄 처녀(홍난파 작곡)
           (나) 그리움(홍난파 작곡)
           (다) 사랑(홍난파 작곡)
       5. 테너 독창…현제명
           (가) 새가 되어 배가 되어(현제명 작곡)
           (나) 소경되어지이다(현제명 작곡)
           (다) 진달래(현제명 작곡)
       6. 신민요 합창…경성보육 합창대
           (가) 방아 찧는 색시 노래(홍난파 작곡)
           (나) 여름(홍난파 작곡)

   그 후 8.15 해방 전 최대의 작곡 발표회는 1939년 6월 8∼9 양일에 개최된 「제1회 전조선 창작 발표 대음악제」 이다. 동아일보사 주최로 부민관 대강당에서 열린 이 연주회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제 1 일
        1. 김재훈 작곡
            합창:경성음악전문학원, 지휘:안기영, 반주:김경훈
            곡명:추억
        2. 박경호 작곡
            피아노 독주:이경희
            습작 원무곡 2제
        3. 김성태 작곡
            테너 독창:김창락, 반주:박현숙
            호면.바다.말
        4. 채동선 작곡
            바이올린 독주: 채동선, 반주: 이흥렬
            환상곡 d단조 작품 제 3 번
        5. 임동혁 작곡
            소프라노 독창: 임상희, 반주: 이경희
        6. 박태준 작곡
            바리톤 독창: 전형철, 반주: 윤태섭
            산울림. 호박타령. 아 가을인가
        7. 김세형 작곡
            바이올린 독주: 계정식, 반주: 그레이스 웃
            환상곡 작품 32번
        8. 김메리 작곡
            소프라노 독창: 유부용, 반주: 김메리
            너는 어데로. 발자취
        9. 홍난파 작곡
            관현악: 경성방송관현악단, 지휘: 홍난파
            즉흥곡. 소선전곡. 동양풍의 무곡
     제 2 일
        1. 박태준 작곡
            합창: 세전 합창단, 지휘: 임동혁, 반주: 임상희
            평화. 부활
        2. 김메리 작곡
            피아노 독주: 김메리
        3. 박경호 작곡
           소프라노 독창: 오경심, 반주: 박현숙
           사모곡. 영구차
        4. 김재훈 작곡
            바이올린 독주: 안병소, 반주: 김경훈
            비가. 프렐루디움 운트 알레그로
        5. 이흥렬 작곡
            소프라노 독창: 채선엽, 반주: 이흥렬
            바우고개. 봄이 오면. 자장가
        6. 홍난파 작곡
            테너 독창: 최창은, 반주: 경성방송관현악단, 지휘: 홍난파
            나그네의 마음(고향 생각. 옛동산에 올라. 입담은 꽃봉오리. 사랑. 관덕정. 그리움. 금강에 살으리랏다)
        7. 김세형 작곡
            피아노 독주: 박현숙
            주제급변주곡 작품 34번
        8. 안기영 작곡
            소프라노 독창: 이관옥, 반주: 김경훈
            작별. 꿈조차 속였세라. 오 나의 마음을. 마음의 등대. 부끄러움
        9. 임동혁 작곡
            관현악: 경성반송관현악단, 지휘: 임동혁
            소관현악을 위한 회유곡(서주. 행렬. 영탄조. 무도조. 광시곡) 

   1944년에 김성태 작곡 「교향적 카프리치오」와 김동진 작곡 「서곡 양산가」가 신경교향악단에 의해 초연되었으며(만주국 신경에서) 8·15 해방 이듬해인 1946년 6월 18일에는 「김순애 작곡 발표회」가 이화여자대학 주최로 경기고녀 강당에서 개최되었다. 또 같은 달 29∼30 양일에는 국제극장에서 조선음악가협회 주최로 「우리 작품 발표 음악회」가 있었다.

   1950년 3월 1일 「3·1 절 경축 예술 제전」이 개최되었다.(문총 주최, 시공관) 이 때에 윤용하 작곡의 교성곡 「조국의 영광」과 나운영 작곡 교향시 「3·1혁명」이 서울교향악단, 중앙합창단 연주와 작곡자의 지휘로 초연되었다. 1951년 10월 9일 제 2 회 김순애 작곡발표회 「우리 가곡의 밤」이 개최되었다.(경기여중고 주최, 남성여중 대강당) 이듬해인 1952년 12월 6일에는 이화여대 강당에서 문총 마산 지부 주최로 「이상근 작곡발표회」를 가졌다.
   6.25 후인 1952년 10월 1일 임시 수도인 부산에서 드디어 「한국 현대음악학회」 가 발족됐다.(회장 나운영, 총무 안병철) 이와 함께 월례 현대음악 감상회를 개최하여 맥다우얼. 드뷔시.스트라빈스키. 바르토크. 프랑스 6인조. 프로코피에프. 쇼스타코비치. 블로호. 하아버 등을 레코드를 통해 해설함으로써 현대음악 보급, 계몽에 앞장섰다. 또 같은 해 12월 27일 「나운영 실내악 작품 발표회」 가 개최되었다.(한국 현대음악학회 주최, 이화여대 강당)
   1955년 1월 25일에는 나운영 작곡 「수수께끼」(피아노를 위한 6 전주곡 중의 1곡) 가 초연되었는데 이 곡은 우리나라 최초의 12음기법에 의한 역사적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이 해 2월 26일에는 시공관에서 한국작곡가협회 주최 제1회 작품발표회가 개최되었으며 4월 12일은 「나운영 신작곡 발표회」 가 한국현대음악학회 주최로 배재학교 강당에서 있었다. 같은 해 9월 19일 「향성회 편 한국가곡집 제 1 집 출판 기념 음악회」 가 개최되었다.
   이듬해인 1956년 10월 1일 한국현대음악협회가 발전적으로 해체되어 「한국현대음악협회」로 새로운 발족을 했다.(회장 나운영, 총무 안병철, 위원 이상근, 최인찬, 신동민 외) 한 달 후인 11월 17일에는 「조념 작곡 발표회」가 호악회 주최로 카톨릭 문화관에서 개최되었다.
   해를 넘겨 1957년 6월 6일은 특기할 만한 날이다. 한국현대음악협회가 국제현대음악협회(ISCM)에 정식으로 가입되어 국제현대음악협회 한국지부로 인정받은 것이다. 9월 27일에는 시공관에서 「서울시립교향악단 주최 한국작곡가의 밤」이 개최되었으며 이 해 12월 11일부터 1959년 6월 24일까지 「수요 정기 현대음악 감상회」가 중앙공보관에서 개최되었다. 이 때에 베르크. 힌데미트. 아이브스. 바레즈. 메시앙. 졸리베. 시톡하우젠. 베리오. 크세나키스 .부조니. 카젤. 다비도프스키. 불레즈 등등이 레코드를 통해서 소개되었다.
   1958년 들어와서는 5월 12일에 「이상근 작곡 발표회」가 서울시립교향악단 주최로 시공관에서 개최되었다. 5월 25일에는 「창악회」가 창립되었는데 대표위원 이성재, 위원으로는 김달성. 최춘근. 정회갑. 홍연택. 이남수. 이치완 등이었다. 이 해 7월 17일에는 「제 2회 이영자 작곡 발표회」 가 한국현대음악협회 주최로 시공관에서 열렸다. 이 해 8월 14∼15에는 「정부 수립 10주년 경축 대 합동 음악회」가 세계일보 주최, 공보실 후원으로 대한극장에서 있었으며 12월 18일에는 「제 4 회 나운영 작곡 발표회」가 개최되었다.(한국기독장로회 본부 주최, 새문안교회)
   50년대를 마무리 짓는 1959년 5월 13일에는 창악회 주최 「제 3회 작곡 발표회」가 원각사에서 개최되었고, 5월 20일에는 「박재열 작곡 발표회」가 연세 동문회 주최로 원각사에서 있었으며 12월 7일은 「제 2 회 최인찬 작곡 발표회」가 개최되었다.(경남문화 사업협회 주최, 삼일당)
   4.19 학생 의거가 있었던 해인 1960년 10월 24일에 「백병동 작곡 발표회」가 서울음대 작곡연구회 주최로 서울음대 콘서어트 홀에서 열렸다.
   5.16 혁명이 일어난 이튿날인 1961년 5월 17일에는 「김동환 작곡 발표회」가 후반기악회, 연세음악학회 주최로 YWCA 강당에서 있었고 이듬해인 1962년 5월 14일에 「한국작곡가의 밤」이 개최되었다. (제 1 회 서울 국제음악제 주최, 국립극장) 7월 5일에는 「김달성 귀국 작곡 발표회」가 창악회 주최로 국립극장에서 열렸으며 11월 10일에는 「성낙헌 작곡 발표회」가 창악회 주최로 서울음대 콘서어트 홀에서 개최되기도 했다.
   해를 넘겨 1963년 10월 15일에 「제 2 회 백병동 작곡 발표회」가 서울음대 동창회 주최로 국립극장에서 열렸으며 1965년 3월 19일에 「안일웅 작곡 발표회」가 후반기악회 주최로 국립극장에서 있었다. 「1965 현대 음악 발표회」가 1965년 5월 19일에 세계문화 자유회의 한국 본부 주최로 서울음대 콘서어트 홀에서 개최되었다.
  1966년 그 어느 때보다 음악 행사가 많은 해였다. 우선 6월 17일「제3회 백병동 작품 연주회」가 네오 무지카 동인회 주최로 드라마 센터에서 막을 열었고 그 후 9월 15∼16에 「안톤 베베른 작품 전곡 감상회」가 한국현대음악협회 주최로 아폴로 감상실에서 있었다. 뒤를 이어 11월 8일 「제3회 박재열 작곡 발표회」가 연세대 동문회 주최로 국립극장에서, 12월 6일에는 「제1회 나운영 교향악 작품 발표회」가 한국현대음악협회 주최로 국립극장에서 개최되었다. 1966년을 마무리 짓는 마지막 음악회는 12월 9일 「조병옥 강석희 작곡전」이 장식했다.(현대 음악연구회 주최, 국립극장)
   1967년 7월 3일에 「나인용 작곡 발표회」가 무악학회 주최로 국립극장에서 열렸으며 10월 14일은 「안일웅 작곡 발표회」가 연세대 음대 동창회 주최로 YWCA에서 있었다. 10월 31일에 「1967 한국현대음악 발표회」가 세계문화자유회의 한국 본부 주최로 서울음대 콘서어트 홀에서 있었고 11월 17일에 」「이영자 작곡 발표회」가 이화여대 음대 주최로 국립극장에서 열렸다.
   해를 바꾸어 1968년 3월 19일에는 「이경희 작곡 발표회」가 이화여대 음대 동창회 주최로 국립극장에서 열린 것을 비롯해서 3월 24일에는 「제2회 나운영 교향악 작품 발표회」가 한국현대음악협회 주최로 국립극장에서 뒤를 이었다. 11월 9일에는 「유신 작곡 발표회」가 있었고 11월 22일은 「이성재 작곡 발표회」가 창악회 주최로 국립극장에서 개최되었다. 12월 26일은 「안일웅 작곡 발표회」가 연세대 음대 동창회 주최로 YWCA 강당에서 열림으로써 이 해를 마감했다.
   60년 대를 마무리 짓는 1969년 4월 8일에 「제2회 조복렬 작곡 발표회」가 계명대 음악과 주최로 YWCA 강당에서 열렸고 5월 13일∼6월 24일까지 「전위작곡가 작품 감상회」 가 한국현대음악협회 주최로 아폴로 감상실에서 있었다. 이 때에 존 케이지. 루카스. 포스. 군더. 슐러 등등이 처음으로 소개되었다. 9월 5일∼7일까지 3일 동안 「제1회 서울 국제 현대음악회」가 서울신문사 주최로 국립극장에서 개최되었다. 10월 27일∼11월 2일까지 「신음악 80주년 기념 제 1 회 서울음악제」가 한국음악협회 주최로 문화공보부 예총 후원으로 국립극장과 시민회관에서 열림으로써 60년대의 피날레를 장식했다.
   이상으로 초창기부터 60년대까지의 우리의 현대음악사를 자료 중심으로 훑어보았으나 혹시 누락된 것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에 대해서는 앞으로 출판하게 될 한국의 양악 150년사(가제)에서 보충하려 한다.
   60년대까지는 말하자면 현대음악의 수입기 내지 요람기라고 말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자칭 현대음악의 전도사로서 또는 개척자로서의 나의 과거를 더듬어 볼 때 감개가 무량하다.

<월간[객석] 1984. 11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