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집 4집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찬송가의 토착화

나  운  영

  1893년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찬송가가 발행된 이래 1949년 「합동 찬송가」가 나올 때까지 우리는-- 우리곡조가 들어 있지 않은--- 순전히 외국 찬송가만을 불러 왔다. 그러던 것이 드디어 1959년 「청년 찬송가」에 20편의 우리 작품이 편입되었고 이어 1967년에 발행된 「개편 찬송가」에는 27편이나 편입되었으니 참으로 역사적으로 볼 때 뜻 깊은 일이라 아니할 수 없다. 그러나 오늘날 이들 중에서 비교적 즐겨 불리어지는 찬송이란 불행히도 5, 6편에 지나지 않으니 그 까닭은 무엇일까?
   그 중요한 원인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작곡한 찬송가가 거의 서양 찬송가의 모방에 그치고 만 느낌을 줄 뿐 별로 우리의 생리에 맞지 않기 때문이며 또 한 선곡 자체에도 미스가 있었으니 대체로 습작 내지 졸작이란 비난을 면키 어려운 정도의 수준 이하의 작품이기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즉 리듬, 멜로디, 화성이 너무도 낡은 서양풍이어서 작사자와 작곡자의 이름을 모르고 노래하거나 듣는다면 누구나 서양 찬송가로 착각하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미 제1수상집 『주제와 변주』에 수록된 「배외사상과 배외사상」, 「한국교회음악의 진로」, 「방언과 방언」 그리고 제2수상집 『독백과 대화』에 수록된 「교회음악의 세속화」, 「교회음악의 세속화와 현대화」, 「민족음악 운동을 일으키자」 등을 통해서 한국 찬송가의 방향에 대해 자세히 언급한 일이 있으므로 이를 또 되풀이하고 싶지 않다.  그러므로 소위 원칙론을 구구하게 설명하는 대신 몇가지 실례를 드는 것으로써 나의 책임을 면하고자 한다.

   첫째곡은 '내 마음 작은 갈릴리' (석진영 작사 나운영 작곡)이다.
      
   이 곡은 5음음계로 작곡되었으며 대체로 민요풍이라 할 수 있다.

   둘째곡은 '이제 이곳에서' (김상돈 작사 나운영 작곡)이다.
      
   이곡은 단한번 'Fa"음이 나올 뿐 역시 5음음계로 작곡되었으며 <도드리 장단> 을 치면서 또는 생각하면서 불러야만 제 맛이 날 것이다

   셋째곡은 '크리스마스 칸타타' 중에서 '목자들의 노래' (박화목 작사 나운영 작곡)이다.
      

   이 곡은 대체로 계면조로 작곡되었으며 <타령 장단> 을 치면서 또는 생각하면서 불러야만 제 맛이 날 것이다.

   넷째곡은 '부활절 칸타타' 중에서 '골고다의 언덕길' (김병기 작사 나운영 작곡)의 끝 부분이다.
      
   이 곡은 단조로 작곡되긴 했으나 우리나라 판소리풍의 색채가 너무도 짙기 때문에 가장 우리의 생리에 잘 맞는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다섯째곡은 '시편 23편' (나운영 작곡)이다.
      

   이 곡은 단 한번 'Si♭'음이 나올 뿐 역시 5음음계로 작곡되었으며 매우 목가적이라 할수 있다.

   이상 지면 관계로 모두 멜로디만을 소개하고 극히 간단한 해설을 붙인 데 불과하나 악보를 세밀하게 분석해 본다면 이것만으로도 서양 찬송가와 본질적으로 다른 것을 느끼게 될 줄로 생각한다.
   찬송가가 보다 한국적이려면 적어도 아래와 같은 조건을 구비해야 될 것으로 나는 믿어 의심치 않는다.

   1. 6/8, 9/8, 12/8 계통의 박자를 가급적으로 많이 쓸 것.
   2 .왈츠 장단을 피하고 우리나라 장구 장단을 많이 활용할 것.
   3. 또는 등의 리듬을 많이 쓸 것.
   4. 가급적으로 5음음계적인 멜로디를 주로 쓸 것.
   5. 3도 화성만을 쓰지 말 것.

   끝으로 1967년 3월 7일 바오로 6세가 '카톨릭 성가 개정령'을 공포한 이래 차츰 우리나라에서도 교회음악이 세속화되어가는 경향이 뚜렷이 보이기 시작하였는데 어디까지나 교회음악의 현대화와 세속화는 다르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하며 아울러 현대화에 앞서 「토착화」가 시급하다는 것을 나는 강조하고 싶다.  다시 말해서 우리의 구미에 맞는 우리 생리에 맞는 찬송가를 만들어야겠다.  우리가 작곡한 찬송가가 외국 2세적인 곡이 되어버리거나 국적 불명의 곡이 되어서는 찬송가를 통한 국제교류란 바랄 수도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월간음악 1970. 11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