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집 5집 '토착화와 현대화'

고민하는 한국악단의 타개책
- 1955년 발표 -

나  운  영

   「대학 음악과 출신 피아니스트가 찬송가를 제대로 치지 못하는 까닭이 무엇인가?」
  「대학 주최의 중고등학생 음악콩쿠르에 작곡 응모자가 없는 것이 웬일인가?」
  「공보처에서 방송국을 통하여 왜색유행가를 보급시키는 까닭은 무엇인가?」
  「부르지 말라는 왜색유행가는 불리어지고 부르라는 국민가요는 안불리어지는 까닭은....?」
  「왜색유행가 레코드가 문교장관 특상을 받게 된 까닭은....?」
  「휴강 투성이의 국립서울대학교 음악대학을 문교당국이 방임하는 까닭은...?」
  「국민학교에 음악정교사를 두지 않는 까닭은....?」
  「한국음악가협회는 무엇을 하였는가?」
  「겨우 국악에 관심을 갖게 되었던 자의 발걸음을 다시 돌리게 만드는 자는 누구일까?」

   이 모든 고민의 원인이 다음의 두가지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 하나는 과거와 현재의 교육법이 나빴다는 것과 또 하나는 음악인이 음악으로 먹고 살 수 없는 것이다. 하기야 음악인 자신의 태만성과 교양부족도 중요한 원인의 하나가 될 것이나 그 보다도 근본적으로 그릇된 교육제도와 사회제도를 시정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나로서는 말하고 싶다.
   대학 음악과 출신 피아니스트가 찬송가를 제대로 치지 못하는 것은 체르니 교칙본의 죄일 것이다. 즉 우리나라에서는 피아노를 공부할려먼 바이엘-하농-체르니 30번-40번-50번 등을 순서적으로 공부해왔기 때문에 소위 <알버티베이스식 피규어>의 악곡은 칠 수 있으나 4부주법이 잘 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소나티네나 소나타는 잘 쳐도 찬송가는 못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피아노 교수 제씨는 이 결함을 없이할 수 있는 좋은 교칙본을 물색하거나 그렇지 못하면 체르니와 함께 찬송가를 피아노 교칙본으로 사용하는 것이 상책일 것이다. 찬송가를 치는 사람은 본격적인 피아노곡을 칠 수 있어도, 베토벤 소나타를 치는 사람이 찬송가를 못치는 것은 분명히 과거와 현재의 교칙본과 그리고 지도자에 책임이 있는 것이 아닐까?
   대학 주최의 중고등학생 음악콩쿠르에 작곡응모자가 없는 것은 창작교육을 너무도 등한시한데에 기인된다. 음악교육이란 노래를 가르치는 것 뿐만 아니다. 가창지도·이론지도·감상지도를 통하여 창작에까지 이끄는데에 있다. 그러므로 5대기본인 시창·화성학·악식론·음악사·피아노를 종합적으로 지도하여 연주는 물론이고 한걸음 더 나가 작곡을 할 수 있도록 해야할 것이다. 그렇게 하려면 초·중·고 음악교사의 책임이 더욱 무거워지나 이것이 해결되지 않는 한 우리나라의 민족음악의 장래는 막막할 뿐이다.
   공보처에서 방송국을 통하여 왜색유행가를 보급시키는 것은 당사자의 무지 또는 무관심에서 오는 것일까? 이것은 확실히 국책에 어긋난 국책이 아닌가?
   요즈음 많이 관심을 갖게된 국민개창운동이란 왜색과 재즈풍을 일소한 건전한 국민가요를 개창하자는 것이니 공보처에서는 왜색유행가의 개창운동을 시정해 주어야 할 것이다.

  부르라는 국민가요는 안불리어지고 부르지 말라는 왜색유행가가 더 잘 불리어지는 것은 국민가요가 너무도 서양고전 취향이고 민속적 색채가 희미한 까닭이다. 원래 왜색유행가는 일제시대부터우리의 골수에 맺혀 있고 또 한편 동양적(?)이며 낭만적(?)인 까닭이 아닐까 생각된다. 그러므로 이 점은 순수음악인과 경음악인과 국악인이 다같이 연구하여 우리의 생리에 맞고 흙냄새가 나는 명랑한 음악을 만들어 내야할 것이다.
   왜색유행가 레코드가 문교장관 특상을 획득할 수 있는 영광을 얻게된 것도 국책에 순응하는 처사였을까? 물론 레코드의 품질이 우수한 까닭이라고 생각되나 그 레코드의 내용이 문제가 아닌가? 이것은 분명히 무지가 저지른 과오가 아니었던가? 당국자는 레코드 검열에 있어서 가사와 곡조의 해독성·퇴폐성을 중시하여야 할 것이다.
  휴강 투성이의 국립서울대학교 음악대학을 좀 더 충실하게 만들어야 되겠다는 여론을 당국자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학생들이 잘못 배우는 것 보다는 차라리 안 배우는 것이 나을지는 모르나 그렇다면 구태여 대학에 다닐 필요가 없지 않은가? 별로 잘 배우지도 못한 신인음악가들이 배출되어 각 직장을 채우고 있는 한 우리 악단은 병들고 말 것이다. 좀 더 권위 있는 교수를 망라해야할 것이며 전공과목 보다도 기초교육에 치중해 주는 것이 장래를 위하여 유익한 방법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초등학교에 음악정교사를 두어야 할 때가 왔다. 8·15 해방후 풍금 한 대도 없는 사범학교가 난립했으며 또한 음악에 대한 소양이 없을뿐더러 취미까지 없는 교사들에게 일률적으로 음악지도를 강요하는 것은 교사의 괴로움보다 아동들의 괴로움이 백배가 더 할 것이다. 이것은 교육이 아니고 범죄이다. 학교로서는 같은 경비를 가지고라도 매교에 2명의 정교사를 두게 된다면 훨씬 이상적인 교육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음악가협회는 무엇을 하였는가? 파당성(派黨性)으로 말미암아 별로 사업을 하지 못했으며 또한 이 속에서는 일을 할 수 없어 이탈하여 각 분야에 걸쳐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작곡가협회, 교육음악협회, 뮤직 펜클럽, 연주가협회 등에 대하여 적대시할 수 있을 것인가?
   겨우 국악에 관심을 갖게 되었던 자의 발걸음을 다시 돌리게 만드는 자는 국악인 자신이 아니었던가? 그 교수법을 좀 더 연구하여 흥미있고 평이하게 지도해야 할 것이 아닌가? 국악을 아악부터 가르쳐야 한다는 법은 없을 것이다. 나로서는 장고장단과 무용에서부터 혹은 민요, 창악에서부터 시작하여 점차 학구적으로 지도하는 것이 현책이 아닐까 생각된다. 국악도 먼저 생활화 시켜야 발달될 것이므로 무엇보다도 가장 시급한 것은 국악감상교육일 것이다.
   이상의 고민을 타개함에 있어 물론 각 개인의 자각과 노력이 절대 필요하나 이에는 음악사회단체의 적극적인 협조가 있어야 할 것은 재언을 요치 않는 일이며 그보다도 더 긴급한 것은 국가의 문화정책이 바로 세워져야 될 것을 재삼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
  「과거와 현재의 교육법이 나빴다는 것과 음악인이 음악으로 먹고 살 수 없다는 것」
이 문제는 음악인 뿐만 아니라 국가 민족이 공동책임을 져야만 해결될 일이며 이것만이 현하 악단의 고민을 타개하는데 있어서의 유일의 방책일 것이다.

< 1955. 1. 신태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