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집 5집 '토착화와 현대화'

한국 양악 100년사 (1)


나  운  영


   1984년은 천주교가 2백주년을 맞은 해였고, 개신교도 1백주년을 맞아 각각 뜻깊은 행사를 가졌었다.  천주교나 개신교가 우리 나라에 들어 왔을 때에 양악(그레고리안 성가또는 찬송가)이 함께 들어 왔다고 추정한다면 「한국 양악(洋樂) 2백년사」라고 제목을 고쳐야 하지 않을까 하는생각이 든다.
   논문 「한국 천주교회의 성가와 성가집」(차인현)에 따르면 우리 나라에 그레고리안 성가가 처음으로 전파된 것은 1876년이고 그레고리안 성가를 처음 가르쳤던 사실은 1887년 서울 용산 예수성심학교의 교과 과정중 예전 그레고리안 성가가 들어 있는 것으로 확인된다고 밝혔다.
   한편 개신교에서는 1892년 「찬미가」가 발행되기 전까지는 중국말로 된 찬송가를 불렀었고 1886년에 창립된 배재학당이 바로 다음 해부터 음악 수업을 시작하여 찬송가를 부르기 시작했다고 하니 정확하게 계산한다면「양악 1백8년사」라고 해야 옳을 듯도 하나 편의상 통념대로 1백년사로 해 두기로 한다.

   주)천주교의 최초의 성가집인 「죠션어 셩가」(68곡)는 1924년에 나왔으니 비록 개신교의 「찬미가」 (27곡)가 악보없는 무곡(無曲) 찬송가라 하더라도 32년이나 뒤졌다는 사실을 생각한다면 1백년사로 해 두는데 있어서 일단 수긍이 갈 줄로 믿는다.
    양악 1백년사를 쓰기 시작하기 전에 또 하나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인물 중심으로 엮어 나가는데 있어서 김인식(金仁提)부터 시작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백우용(白禹鏞)부터 시작하느냐의 문제이다.
   오늘날 김인식을 필두로 이상준(李商俊) -김형준(金亨俊) -김영환(金永煥) - 홍난파(洪蘭坡) - 현제명(玄濟明) - 계정식 (桂貞植)순으로 엮어 나가는 것이 하나의 상식처럼 되어 있으나 여기에 문제가 있다.

   ① Franz Eckert (1852-1916)  ②백우용(1880~1950)  ③ 정사인(1881~1958)  ④ (1884~1948)  ⑤김형준(1884~ ?)  ⑥김인식 (1885~1962)  ⑦ 박윤근(1891~ )  ⑧김인환(1891~1947)  ⑨김영환(1892~1977)  ⑩ 홍난파(1898~1941)  ⑪ 박경호(1899~1979)  ⑫박태준(1900~1986 )  ⑬안기영(1900~1980)  ⑭김재훈(1900~1951)  ⑮ 김문보(1900~ ?)  16) 채동선(1901~1953)  17) 현제명(1902~1960)  18) 윤극영(1903~1988) 19) 계정식 (1904~ 1975)
   위와 같이 F.Eckert, 백우용, 정사인, 박윤근, 김인환, 박경호, 박태준, 안기영, 김재훈, 김문보, 채동선, 윤극영, 계정식 등은 너무도 소외된 느낌을주기 때문이다.
   물론 개신교의 찬송가를 중심으로 양악 1백년사를 생각한다면 김인식, 이상준, 김형준을 의당 내세워야겠지만 선후배 관계로 보나, 그들이 다루었던 연주곡목으로 보나, 업적으로 보나 지나친 편견을 갖는다는 것은 옳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된다.
   따라서 좀 새로운 관점에 입각해서 필자 나름대로의 양악 1백년사를 엮어 보기로 한다.

1) Franz Eckert (1852~1916)
   엑케르트는 1852년 4월 5일 독일 실레지아 주(州)의 재판관의 아들로 태어나 드레스텐 음악학교를 졸업하고 육군 군악대에 들어 가서 병역을 마치고 해군 군악대 대장으로 근무하다가 1879년에 일본 해군군악대의 교사로 취임했으며 1900년 귀국하여 프로이센 왕실 악장의 칭호를 받았으나 우리나라 정부의 초청으로 1901년 2월 19일 서울에 도착하여 군악대를 창설하고 그 해의 9월 7일 고종 탄신일에 덕수궁 중화전에서 첫 연주회를 성공적으로 시작하여 1916년 8월 6일 회현동에서 별세하여 양화진에 묻힐때까지 군악대를 통해 양악을 보급시키는데 있어서 큰 공을 세우는 한편 백우용, 정사인 등 우수한 후계자를 양성했다.
   따라서 찬송가나 성악곡보다 월등히 수준 높은 본격적인 양악을 우리나라에 심어 준 점에 있어서 누구보다도 먼저 소개하지 않을 수 없다.
   그는 오보에(0boe)의 명수였을 뿐만 아니라 작곡에도 능했다고 하나「대한제국 애국가」는 수준작으로 평가하긴 힘든다.



1902년 파고다공원 팔각정에서 시민위안 음악회를 마치고
(중앙에 엑케르트와 지휘자 백우용이 보인다)

 
 

 
 
 
2) 백우용(1880~1950)
   백우용은 1880년 6월 1일생으로서 1901년 1월 10일 한성관립 덕어(德語=독일어) 학교를 졸업하고 엑케르트의 통역관으로 근무하던 중 엑케르트의 감화를 받아 음악을 전공할 것을 결심하고 같은 해 9월 10일 무관학교에 입학하여 1년간 훈련을 받은 후, 1902년 8월 9일육군 보병 참위(參慰)에 임명되었고 1904년 5월 16일 「 3등 군악장」이 되어 우리 나라 최초의 군악대장으로서 지휘자가 되었다.
   같은 해 9월 23일 「 2등 군악장」,1907년 3월 26일 「1등 군악장」이 되어 군악 중대장에 임명되었으며 군악대가 해산된 후 1928년 4월에는 이왕직 아악부 촉탁으로서 국악채보를 전담하기도 했고 1950년 6월에 별세했다.
   그런데 그가 태어난 해에 관해서는 '81년 설'과  '83년 설'이 있고, 또 타계한 해에 관해서도 '30년 설'과 '35년 설'이 있으니 제대로 정리가 되어야 겠다.

   그는 엑케르트의 수제자로서 클라리넷(Eb Clarinet) 의 연주자요, 지휘자요, 작곡가, 편곡가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그의 작곡집인 「20세기 청년여자 창가」는 1922년 경성 광문서시 발행으로서 42곡이 수록되어 있는데 대단히 희귀한 자료이므로 목차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정경휘 작사)

   제 1장 서광
      1.새 거울    2.새벽들
   제 2장 비애
      1 인생의 생활   2.생의 애(哀)  3.신부의 셔름  4.나의 셔름   5.수영(水影)의 황혼
   제 3장 경계 (警戒)
      1.신구의 충돌 비극의 혼인  2.정조   3.열절(烈節)  4.부부의 진애 (眞愛)  5.우리의 직분   6.권고가  7.권학가   8.공부의 바다  9.급급개량(急急改良)
   제 4장 근고(謹告)
      1.구습의 버려라 2.인내성  3.고향 형제의계   4.주부의 책임  5.상가승무노인곡(喪家僧舞老人哭)
   제 5장 희망
      1.신년가   2.소생   3.낙화가   4.타향고객(孤容)   5.나의 소원
   제 6장 전진
      1.봄이 옴  2.나서라  3.신(新) 여자의계   4.의무  5.자립   6.소년소녀
   제 7 장 의절(義節)
      1.낙화암가   2.촉석루가  3.연광정경개가(景槪歌)  4.능모가(陸母歌)   5.서모가(徐母歌)  6.나란(羅蘭) 부인가  7.란딱크 (1)   8.란딱크 (2)
   제 8장 성공
      1.졸업가   2.답사가



<1985. 12월호 사보 「삼익악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