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집 5집 '토착화와 현대화'

한국 양악 100년사 (3)

나  운  영

   새문안 85년사(1973년 4월20일 발행)의 집사 일람표를 보면,
   이상준(李尙俊)은 1912, 1914, 1915, 1917, 1918년 5년간 집사를 역임했다.
   김형준 (金亨俊)은 1913, 1915~1917, 1923~1932, 1937~1944  22년간 집사를 역임했고,
   김인식 (金仁湜)은 1914~1917년 4년간 집사를 역임했다.
   그리고 특히 1917년에는 이상준, 김인식, 김형준, 홍영후(홍난파)의 이름이 있음을 볼때 우리나라에 있어서의 양약계의 선각자요, 선구자가 모두 새문안교회의 집사였으니,우리나라의 양악사는 곧 교회음악사를 뜻한다고 해도 결코 지나친 말이 아니라는 것이 이로써 증명된다고 할 수 있다.

김형준 (金亨俊,1884~ ? )
   김형준은 1884년 12월 10일생 (황해도 안악) 으로서 숭실중학교를 졸업한후 진남포와 안악에서 교편생활을 하다가 1913년 서울에 올라와 협성신학, 피어선 성경학원, 경신학교, 정신여학교, 중앙고보, 경기공고 등에서 후진을 양성하다가 1950년 6.25사변 중 이북으로 납치된 채 오늘날까지 그의 생사를 알 수 없다.
   그는 우리나라 최초의 예술가곡인 홍난파 작곡의 「봉선화」(봉숭아)의 작사자로서 뿐만 아니라 예술가곡 「무덤에서」와 「저 구름의 탓」의 작사자겸 작곡자로서, 또는 「蝶과 蝶」(구노의 세레나데), 「성모마리아」 (슈베르트의 아베 마리아), 「뱃노래」 (러시아 민요,볼가의 뱃노래)를 비롯하여 「개와 고양이」,「언제 만나 볼거나」,「한강의  노래」,「평강의 왕」등의 작가(作歌) 또는역가(譯歌)로도 널리 알려져 있으니 작곡과 작시에 매우 능했던 사실을 알수 있다.
   <주> 「무덤에서」와「저구름의 탓」은 1929년 8월 5일 백장미사 발행의 「세계걸작 가곡집-백장미 제2집 』(이철 편)에 수록되어 있다.
   한편 그는 이상준, 김인식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국악에 많은 관심을 가져 이를 5선보로 채보했는데 이상준이 속곡(俗曲)을, 김인식이 영산회상(양금보)을 채보한데 비해 그는 시조, 가사, 가곡 등 정악(正樂) 중에서 성악곡을 주로 채보한 것을 송월동의 저택을방문했을 때에 직접 보았으나 오늘날까지 보존되지 못한것이 안타깝게 생각된다.
   그는 코넷의 명수였을 뿐만 아니라 명테너였고, 정사인과 함께 관악지도자로서도 음악계와 교육계에 많은 공을 세웠으므로 1932년과 1947년에 이상준, 김인식과 함께 우리나라의 양악계의 3대 공로자로서 표창을 받은 바 있기도 하다.
   <주> 사족을 단다면 그는 우리나라 피아노계의 양대산맥 중의 한 분인 김원복 교수의 엄친이시다.

김인식 (金仁湜,1885~1962)
   김인식은 1885년 9 월19일생(평양부 강서)으로서 1904년 숭실중학을 졸업하고 1905년 평양 서문밖 보통학교에서 연합 운동회 때에 부르기 위해「학도가」를 작사, 작곡하였다.
   1907년 숭실대학 3년을 수료한 다음 미국 유학을 꿈꾸고 우선 서울에 올라 왔으나 음악교육자로서 사명을 통감한 나머지 유학을 단념하고 1908년에 중앙기독청년회관, 기호학교, 진명여학교, 오성학교, 경신학교, 배재학교에서 교편생활을 시작했는데 그 중에서도 배재에서는 1940년까지 근무했으며, 1911년에 조선 정악전습소의 서양악부 교사에 취임하여 이상준, 홍난파를 길러냈고 1912년에 보급서관 발행「보통창가집」을 1914년에 「조선구악-영산회상 (양금보)을 출판했다.
   <주> 학도가는 우리나라 최초의 창가 작곡이라고 말할수 있는데 서양찬송가의 모방에서 벗어난 곡으로서 Re#이 한번 나올 뿐 모두 5음음계로 되어 있고 특히 종지음이 Re인 것이 주목할만하여 매우 한국적인 점에서 높히 평가할수 있다.
   그는 학도가, 표모가, 부모의 은덕, 국기가, 전진가를 비롯하여 소년 남자가, 격양가,강, 해, 숫닭 두마리, 제비, 총각 메뚜기, 당나귀, 바다. 산, 장치 까투리, 삽살개, 눈, 별세계, 비, 바람, 송백, 달, 조롱에서 우는 꾀꼬리, 재미있는 날(학교 가는 날) ,월계꽃, 촛불, 할아버지, 애국의 정신 등의 작사,작곡은 물론이고 꾀꼴새 (아름답고 맑은 꾀꼬리 소리‥‥) , 짠아(Thomas 작곡, Call T -ohn) , 시골 찬양대, 치하하세 (업드려 경배합세다) , 할렐루야(헨델 작곡 메시아 중에서)를 비롯하여 8.15해방 후까지 널리 사용되었던 합동 찬송가중 1백여편의 가사를 번역하였으니 이상준, 김형준과 함께 그도 작곡, 작사에 매우 능했던 것을 알 수 있다.
   <주> 당시의 가사번역은 흔히 일본말 번역가사를 우리 말로 다시 옮겼으나 그는 일어를 몰랐으므로 영어 원어 가사를 직접 번역한 것이 분명하다.
   한편 그는 1908년에 우리나라 최초의 「경성찬양대」 (남성합창)를 조직했고 그 후에 종교 교회에서 혼성합창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기도 했으니 백우용, 정사인, 김형준이 관악(管樂)운동에 주력한데 비해 그는 합창운동에 심혈을 기울이므로써 교회음악 발전에도 큰 업적을 남긴 점을 높히 평가하고 싶다.
   그에게는 많은 에피소드가 있는데 그중에서 몇 가지만을 소개한다면 첫째로 그는 우리나라 최초의 바이올린교사로서 조선정악전습소 서양악과에서 홍난파에게 바이올린을 장2도 낮게 조율해서 가르쳤다고 하며, 둘째로 합창지휘를 할 때에는 왼손을 호주머니에 넣은 채로 오른손만으로 지휘를했고, 셋째로 「애국가」의 작사자가 안창호나 윤치호가 아니라 자신이라고 증언하므로서 하나의 문제점을 던져 놓았는데 그가 작사한 것을 진명여학교에서 가르쳤으며 윤치호가 교장으로 있던 개성 송도고보에 강사로 출강했을 때에도 가르쳤다고 하는 이야기가 있기도 하다.
   끝으로 개인이 편찬한 우리나라 최초의 창가집인 보급서관 발행 그의 「보통 창가집 (全)」 의 목차를 소개한다.
   1.小川    2.가마귀    3.明月    4.나뷔    5.입은 하나요    6.부모의 은덕(1)    7.부모의은덕 (2)    8.師의 恩    9.소제    10.星    11.歸雁    12.시계    13.太平洋行    14.일요일    15.등산    16. 망향   17.석별    18.고별    19.惜陰    20.권학(1)   21.권학(2)    22.추국(秋菊)    23. 걸넘버쓰    24. 고학    25. 학우    26. 앞으로    27.춘    28.수학여행    29.우승기    30.세계지리가    31.졸업식가
  <주> 백우용, 장사인, 이상준, 김형준은 작곡, 작사, 역가. 작가에 있어서 자신의 이름을 밝혔으나 그는 자신의 작품인 「6 부모의 은덕(1)」에 있어서 자신의 이름을 밝히지 않고 있으니 이 또한 겸손지덕으로 해석하는 것이 좋을듯하다.
   그의 작품은 그의 장손인 음악가 김웅길 (金雄吉·추강음악학원 원장)에 의해 오늘날도 보존되고 있다.


<1986. 4월호 사보 삼익악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