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집 5집 '토착화와 현대화'

그레고리안 성가와 범패의 만남

나  운  영

   천주교 서울대교구 강동 가톨릭 문화원과 서울종교음악연구소가 공동 주최한 「그레고리안 성가의 밤」은 여러 가지 의미에서 충격적이었다. 12명으로 구성된 무반주 남성합창은 마치 천사의 음성을 듣는 것 같은 신비감마저 느끼게 했으니 말이다.
  로마교황청 성음악대학합창단의 역사적인 한국공연은 「단원이 적어도 50명 이상은 되리라고」예상했던 사람들에게 다소 허탈감을 안겨주었을 수도 있다. 더욱이 반주도 없고 화음도 없고 대위법적인것 조차 없는 순수한 제창이었으니 전혀 흥미없는 음악으로 들렸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 귀한 연주를 우리나라에서 들을 수 있었다는 것이 아무리 생각해도 하나의 기적같이 느껴질 수 밖에 없었던 것은 비단 나 뿐만이 아니었으리라 생각된다.
   그레고리안 성가는 화성이 발견되기 이전의 음악이다. 따라서 화성이 없고 리듬이 복잡한 것이 특색이며, 멜로디 자체에 변화가 많지 않아 그야말로 영가(詠歌) 스타일에 속한다. 남에게 들려주거나 즐기기 위한 음악이 아니라 하느님께 바치는 기도노래, 즉 전례(典禮) 음악인 것이다. 다시말해 「처치인 뮤직(Church in music)」이 아니고 어디까지나 순수한 의미의 「처치 뮤직(Church Music)」임을 알아야한다.

  오늘날 현대음악은 점점 병들어가고 있다. 아니 현대음악은 막다른 골목에서 돌출구를 찾고 있다. 뿐만 아니라 오늘날의 종교음악은 날로 세속화되어 가고 있다. 이에 따라 종교음악과 세속음악은 명확하게 구별조차 할 수 없게 되었다. 스트라빈스키는 1927년에 「바하로 돌아가자」라고 외쳤지만 나는 이번 공연을 듣고 「현대음악은 그레고리안 성가로 일단 되돌아가야 한다」고 외치고 싶다. 이 방법만이 현대음악이 회생(回生)할 수 있는 길이라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이번 공연에 대해 연주평을 할 의도가 없다. 연주평을 하기 전에 나 자신이 좀더 겸허해져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레고리안 성가는 음악의 고향이요, 서양종교음악의 뿌리 그 자체임을 새삼스럽게도 재인식하게 되었으니 이것만으로도 족하다.

  이날 공연 도중 범패(梵唄)의 찬조출연은 매우 이채로웠다. 왜냐하면 범패야말로 동양종교음악의 뿌리이기 때문이다. 그레고리안 성가와 범패의 만남은 우리에게 새로운 문제를 던져주었다고 할 수 있다. 적어도 「선토착화 후현대화」를 부르짖고 있는 나에게 있어서는 더욱 그러했다.  즉 서양종교음악의 근원과 동양종교음악의 근원을 찾으려면 이 두 음악을 연구해야하기 때문이다.
   다만 이왕 범패를 들려줄 바에는 우리의 인간문화재인 박송암 스님을 초청했더라면 더욱 좋았을 것이라는 아쉬움을 남겼다.

  그레고리안 성가나 범패는 전승-보전하는 데에만 의의가 있는 것이 아니다. 이것을 발전시켜서 현대성-국제성을 띤 종교음악을 재창조하는데에 더 큰 의의가 있다. 이런 점에서 이번 공연은 참으로 뜻있는 일로서 오래오래 우리들의 기억에 살아 남을 것으로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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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 3. 31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