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집 5집 '토착화와 현대화'

음악의 토착화,현대화 그리고 국악성가

나  운  영

   나는 지금으로부터 40여년 전에 음악의 토착화와 현대화를 부르짖었었다.
   6 · 25사변 전인 50년 1월에 예술가곡「접동새」(김소월 시)를 판소리 풍으로 작곡한 것이 토착화 및 현대화의 첫시도였었고,  52년 6월에 작곡한 「여호와여 구원하옵소서」(시편12편), 12월에 작곡한 「피난처 있으니(시편46편),  53년 5월에 작곡한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시편23편)와 「여호와여 누가 주의 장막에 머무르며」(시편15편),  6월에 작곡한 「주의 성도들아」(시편30편)등을 통해서 주로 교회음악 창작에 있어서의 새로운 방향제시를 했었는데 일반 교인들로부터는 매우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지만 이에 반하여 음악을 전공한 교회음악인(작곡가 · 지휘자)에게는 어처구니 없는 비난을 받았었다.
   그때 그들의 주장은 첫째로 교회음악이 한국적이기 때문에 경건하지 못하다. 둘째로 현대적이어서 은혜가 없다. 셋째로 교회음악은 서양풍으로 작곡해야만 경건하고 은혜스럽다. 그러므로 토착화와 현대화는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어디까지나 표면적인 궤변이었을 뿐이고 솔직히 말해서 그들도 내심으로는 한국적인 동시에 현대적으로 작곡하고 싶긴 하나 작곡기법(技法)의 미숙으로 말미암아 도저히 새로운 스타일의 작곡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도리어 비난을 퍼부었던 것이다. 다시 말해서 그 당시만 하더라도 소위 작곡을 정식으로 전공한 사람이 몇 명 안되는 상태에서 그나마도 서양·근대·현대음악을 외면하고 고전파 음악의 초보단계에 안주(安注)하므로써 서양의 고전화성만을 주로 사용하여 서양음악을 모방하는데 급급한 형편이었으니 현대화에 대해서 이해가 부족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고, 그보다도 더 큰 문제는 국악(우리 나라의 정악 · 민속악)을 초 ·중 ·고등학교에서 전혀 배우지 못한 탓으로 국악에 대한 상식조차 없는 형편이었으니 토착화에 대해서 아예 외면해 버린 것은 더욱 더 당연한 일이었다.

   1956년 4월에 나는 「부활절 칸타타」(김병기 작시)를 작곡했고, 12월에는 「크리스마스 칸타타」(박화목 작시)를 작곡했는데  특히 「부활절 칸타타」중 제4곡「골고다의 언덕길」은 판소리 풍으로 작곡했고, 「크리스마스 칸타타」중 제10곡「말구유의 예수」는 시조 풍으로 작곡하기도 했으며, 장구장단(타령 · 굿거리 ·세마치 등)을 활용하여 현대화성을 구사(驅使)하므로써 보다 본격적인 <토착화및 현대화 작업>을 펼쳐 나갔던 것인데 그 당시로서는 비난의 대상이 되었다기 보다는 웃음거리가 되었다고 말하는 것이 더 적절하다고 생각될 정도였다.
   여기서 「과연 토착화란 무엇인가? 그리고 현대화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간단히 설명해 두고자 한다.
   토착화란 우리나라의 고유음악에서 뿌리를 찾자는 것이다. 즉 동양음악은 서양음악과전혀 다를 뿐만 아니라 동양음악 중에서도 중국음악과 한국음악이 다르고 더욱이 한국음악과 일본음악이 다르기 때문에 먼저 우리 국악에서 민족적 소재를 발굴 · 발전시켜서 가락을 작곡하고, 이에 장구(북) 장단을 곁들이면 서양음악은 물론 중국이나 일본음악과 다른-우리의 생리에 잘 맞는 음악이 된다. 그러나 장단과 가락이 아무리 한국적이라하더라도 여기에 서양 고전화성(주로 3도화성을 뜻함)을 붙이면 마치 갓 쓰고 양복 입은 격이 되어버리기 때문에 화성자체를 현대화해야 한다.

    나는 특히 「한국적 선율의 화성화에 관한 시론(時論)」(61년)과 「한국적 선율의 화성화에 관한 고찰」(82년)의 논문에 이어 드디어 『현대화성론』(82년11월)을 출판했는데 이 책의 제10강은 「한국화성론」으로 되어 있어 한국적인 가락에 가장 잘 어울리는 현대적 화성처리에 대해서 확고한 이론을 정립해 놓았을 뿐만 아니라 79년 9월부터 시작한 <신작성가 월례 발표회>를 통해서 이에 관한 작업을 계속해 오던 중 작년 11월에 드디어 1,000곡을 작곡했고 12월에 『한국찬송가 100곡선-제3집』을 출판하기에 이르렀는데 이제는 나의 <토착화 및 현대화 작업>에 호응하는 사람이 날로날로 늘어가고 있는 것을 매우 기쁘게 생각하고 있다.
   그런데 나의 <토착화 및 현대화 작업>과는 별도로 「국악성가」를 통한 선교운동이 대두되고 있는데 대하여 나는 원칙적으로는 이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나 여기에는 해 결되지 않은 근본문제가 있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국악성가를 작곡해서 보급시킨다는 것은 지극히 바람직한 일이다. 그러나 폐쇄적인 생각에 사로 잡혀서는 안될 것이다.
   첫째로 국악성가는 국악기만을 사용해야 한다는 생각은 잘못이다. 다시 말해서 서양악기인 피아노나 오르간을 비롯한 현 관 ·타악기를 사용해서는 안된다는 생각 자체가 잘못 되었다는 말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한다면, 우리나라 국악기는 서양의 12평균율과 조율이 틀리다. 그렇기 때문에 국악기와 서양악기와의 합주는 안되는 일이지만 독창이나 중창, 합창은 12평균율로 연주하고 이의 반주는 조율이 전혀 맞지 않는 국악기만으로 연주한다는 것이 될 말인가?
   그보다도 우리 국악기는 대부분이 중국에서 전해온 것이고 이것이 다시 일본으로 건너간 것인데 중국과 일본은 물론이고 북한에서도 모두 조율을 서양12평균율로 바꾸었는데 우리나라만 이 재래의 조율을 고집하고 있는 상황이다. 다시 말해서 동양악기이건 서양악기이건 원래는 12평균율이 아니었는데 12평균율을 채택하지 않으면 조바꿈(轉調)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바하(J. S. Bach)시대에 12평균율이 채택되었고 이에 따라 『48평균율 피아노곡집』이 탄생하게 된 것이니 우리나라에서도 국악기의 조율을 하루속히 12평균율로 바꿔야 한다. 그리고 미분음부호(符號)를 사용해서 재래의 조율의 멋을 살리면 되는 것이다. 따라서 국악성가에 있어서 12평균율로 조율을 바꾸는 것이 무엇보다도 시급한 문제이다.
   둘째로 우리나라의 국악성가는 본질적으로 화성이 없이 모두 같은 가락을 함께 연주한다. 음악사를 더듬어 본다면 원시음악은 리듬 뿐이었고 그 다음에 가락이 생겨 오랫동안 리듬과 가락만으로 음악이 이루어졌었는데 뒤늦게 화성이 발견되어 비로서 완전한 음악이 탄생하게 된 것이니, 음악의 3요소 중에 화성이 없으면 원시음악과 다름없는 것이 되어 버린다. 따라서 화성이 빠져서는 안되는 법인데 대체로 우리나라 사람들은 말하기를 '국악에는 화성이 없다'고 한다. 즉, 화성이 없는 것이 우리나라 국악의특징(?)이라고 말하기도 하는데 이것은 참으로 잘못된 생각이다.
   화성이 없는 것이 아니라 우리 가락에 잘 어울리는 화성을 발견하지 못한 것 뿐이니 화성을 붙여야만 원시 음악을 모면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극히 일부의 사람들은 12평균율이 아닌 국악기로 서양 고전화성을 그대로 연주하도록 작곡 또는 편곡을 하고 있는데 이럴바에는 차라리 화성을 빼버리는 편이 오히려 자연스럽다고 말할 수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화성처리를 해야 될 것인가? 가락에 잘 어울리는 화성을 붙여야 하는데 그러려면 가락 자체에서 화성을 발견하면 되는 것이다.

    나는 논문 「한국전통 민속가곡에 의한편 · 작곡에 관한 연구」 (82년)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 일이 있다.
「먼저 가락을 채보하고 다음에 가락에 내포되어 있는 화성을 발견하여 피아노 반주를 붙여야 한다. 왜냐하면 오늘날까지 우리가 한국적 가락을 화성화하는 데 있어서 장식음을 포함한 가락 자체에 내포되어 있는 화성을 발견하려 들지 않고 흔히 3도화성이나 4도화성을 기계적으로 붙이는 데에만 급급했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가락과 화성이 잘 맞지않는 느낌을 주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따라서 나는 장식음이 부가된 매우 복잡한 가락을-마치 바하의 무반주 바이올린 소나타(파르티타)처럼-감상하다가 홀연히 이 화성법의 힌트를 얻게 된 것이다. (중략) 다시 말해서 가락 자체에서 화성을 발견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

   한국적 가락을 화성화하는 데는 이밖에도 여러가지 방법이 있을 수 있다. 즉,화성적으로 처리하지 않고 대위법적으로 처리하는 방법도 있고, 3화음에 있어서 3음을 생략하거나 3화음에 6도나 2도음정을 덧붙여 부가화음을 만들어서 사용하거나 3도화성과 4도화성(5도화성)을 절충해서 사용하거나 드론(Drone)식으로 처리하는 방법 등도 생각할 수 있다. 무릇 화성이란 화음 자체가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고 그 화음을 어떤 방법으로 사용하느냐가 문제이다. 예를들면 나의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는 3화음을 기능적으로 처리하지 않고 드뷔시식인 병행법으로 처리했으며 특히 이 곡의 가락은 바(F)장조인데 반주는 내림나(Bb)장조로 되어 있으니 말하자면 복조(複調)의 작곡기법을 구사한 것이다.
   셋째로 국악기를 12평균율로 바꿔서 서양악기와 합주하면 조율문제는 일단 해결이 되나 음색과 음질이 서로 어울리지 않아 귀에 거슬리게 들린다. 마치 일본사람들의 화양합주(和洋合奏)를 연상케 하기 때문이다.  뿐만아니라 국악기 중에서도 우리나라 고유악기인 가야금과 거문고는-줄을 눌러서 가락을 만드는-농현(弄絃)에 묘미가 있는데 이것은 바이올린이나 첼로로는 절대로 흉내조차 낼 수가 없으니 국악기와 서양악기의 합주란 별로 가치가 없는 것이라고 말해도 좋을 것으로 생각한다.
   넷째로 토착화된 창작곡을 국악기 만으로 연주(반주)하는 것은 바람직하나 서양찬송가를 국악기 만으로 또는 국악기와 서양악기로 합주한다는 것은 가소로운 일이라 아니 할 수 없다. 혹자는 우리나라 애국가(동해물과 백두산이‥‥)를 국악기로 연주해야 마땅하다고 주장했다는데 이것이야말로 희극 아닌 희극이 되고 말것이다. 애국가는 독일적인 분위기가 풍기는 서양음악인데 이것을 국악기로 연주함이 될 말인가?
   다섯째로 국악성가는 창작적이어야 한다. 즉 재래의 민요와 거의 같은 것이어서는 너무 가치가 없다. 즉 아무도 상식적인 가락, 천편일률적인 가락, 자연발생적인 가락이어서는 안된다. 소위 '어설픈 국악조'에서 탈피해야만 한다. 왜냐하면 어설픈 국악조는 기성곡의 모작(모방)내지 표절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새로운 맛이 전혀 없는 재래식 가락은 존재가치가 없다.
   이상과 같이 국악성가의 맹점을 지적하면서 시행착오 또는 시대착오의 우(愚)를 범하지 않기를 거듭 강조하는 바이다.
   끝으로 국악성가에 대해서 나는 절대로 부정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밝혀 두련다. 즉 국악성가가 위에서 지적한 우를 범하지 않고 올바르게 작곡 · 연주 · 보급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토착화는 음악의 토착화를 의미하는 것이지 결코 악기의 토착화를 의미하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또한 현대화는 화성을 붙인다고 해서 현대화가 되는것이 아니다. 3화음을 기능적으로 처리하는 수법은 현대화가 아니라 고전화요, 가락과 화성이 어울리지 않는 점에서 볼 때 차라리 화성이 없는 편이 더 자연스럽다고 말할 수 있다. <선 토착화 후 현대화>(先土着化 後現代化)는 나의지론이다. 다시 말해서 <선 현대화 후 토착화>가 되어서는 안된다는 점을 나는 역설한다. 우리음악의 뿌리를 찾고 캐고 발전시켜서 우리들의 생리에 맞는-우리의 멋과 맛이 물씬 풍기는 가락과 장단에 잘 어울리는 옷을 입히자는 것이다.
홍난파 선생이 말했듯이 선율(가락)은 나체요, 화성은 의상이다.
   우리들은 흑인영가(Negro Spiritual)를 좋아한다. 왜냐하면 그 가락이 동양적이요 보다 5음음계적이기 때문이다. 물론 5음음계적이어야만 한국적인 것은 아니지만 가락의 줄거리가 5음음계적인것이 우리의 생리에 잘 맞는 것만은 사실이다. 아무리 파(Fa)와 시(Si)를 비롯해서 올림표(#)나 내림표(b)를 자주 사용한다 하더라도 한국적인 색채를 얼마든지 띨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우리의 생리에 잘 맞는 가락인데도 흑인영가는 3도화성(Tertian Harmony)으로 처리되었기 때문에 서양냄새가 풍긴다는 사실을 우리는 명심해야 한다. 따라서아무리 우리가 한국적인 가락을 작곡했다고 하더라도 화성 자체를 현대화하지 않는다면 혹인영가와 흡사하여 결과적으로 '갓쓰고 양복입은 격'의 우를 또다시 범하게 마련이다.
   지금부터라도 우리는 국악을 열심히 듣고 국악의 멋과 맛이 무엇인지를 알며 민요풍이나 시조풍이나 판소리중의 가락에 가장 잘 부합되는 현대적 화성처리를 한 진정한 의미에 있어서의 국악성가가 탄생하기를 기대하는 바이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어야만 세계적인 것이 될 수 있다는 펑범한 진리를 늘 되새기면서 어설픈 국악조에서 하루속히 탈피할 것을 다짐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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