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집 5집 '토착화와 현대화'

'88년을 교회음악의 도약의 해로

- 70년전으로 되돌아가자 -

나  운  영

   남: 한봉호, 나원정, 이상준, 김인식, 박희병, 홍석후, 김경환, 오긍선, 김형준, 한길호, 장지영, 백선규, 유전, 홍영후
   여: 시히명, 장은경, 김에스더, 이노이스, 김진애, 권준애

   위의 20인은 새문안교회의 1917년도 집사명단이다. 이것을 다시 검토해 보면 김인식 · 이상준 · 김형준 · 홍영후의 이름이 특히 돋보인다.
   김인식·이상준·김형준은 우리나라 양약 수입기의 3대 공로자이고, 홍영후는 홍난파의 본명으로서 양악의 대선구자이다. 그런데 김인식(1885~1962)은 『영산회상 양금보』를, 이상준(1884~194 )은 『조선속곡집』을 출판했으며, 김형준(1884~ ? )은 국악중의 <가곡>의 출판을 계획하던 중 6 · 25 때에 납치되었으니 그 당시 소위 양악계의 3거인이 국악에도 조예가 깊었던 사실에 대해 우리는 주목해야 한다. 아울러 홍난파(1898~1941)는 『조선정악보  3편』을 1917년에 출판했다는 기록이 남아있으니 결국 이 네분은 국악에도 일가견을 가진 양악인이었던 것이 분명하다.
   이처럼 새삼 위의 명단을 들추는 데에는 또 하나의 이유가 있다. 즉 우리나라 최고의 음악지도자가 모두 한 교회의 집사였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서 이 네분이 교회를 지성껏 받들었기 때문에 교회음악이 발전했고 또한 교회가 크게 부흥한 것이다.
   그런데 오늘의 현실은 어떠한가? 교회성가대는 사회 · 학교의 합창단 보다 날로날로 수준이 뒤져만 가고 있고, 교회 안에서는 음악 대가를 별로 볼 수 조차 없다. 왜냐하면 대가들은 이미 교회를 졸업(?)해 버린지 오래이기 때문이다.
  '88년 새봄을 맞이하여 우리 교회음악계는 크게 각성해야 한다. 그리하여 1917년도의 자랑스런 선배들의 그 맥을 다시 이어나가야 겠다.

1. 우리 교회는 국악을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
2 우리 교회는 양악 일변도에서 하루 속히 탈피해야 한다.
3. <선 토착화·후 현대화>로 우리 교회음악을 창조하자.
4. 교회 음악은 음악전문가에게 맡겨져야 한다.
5. 교회음악의 발전없이 교회의 성장은 기대할 수 없다.

   이 해를 교회음악 도약의 해로 정하고 교회음악 부흥의 제 2기를 향해 힘찬 출발을 다짐하는 우리 모두가 되자.


<1988. 봄호 계간 교회음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