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집 1집 '주제와 변주'
 

도가 통한 연주
 ―웨스트민스터 합창단의 공연을 중심으로―

나  운  영

   교향악 분야에 있어서는 그동안 NBC와 로스앤젤스의 내한으로 많은 자극을 받았으나,  합창음악 분야에 있어서는 아직까지 세계적인 합창단의 실연(實演)에 접할 기회가 없어 적막감이 있든 이 때에 한국교회음악협회에서 세계최고의 혼성합창단을 초청하여 준데 대하여는 한국 교회음악계는 물론 일반음악계를 위하여도 지극히 다행한 일이었다. 나는 주야(晝夜)에 걸친 「웨스트민스터 합창단」의 연주를 듣고 솔직하게 느낀 바를 적어 보기로 한다.
   첫째로는 발성의 균일성이다.  그들은 항상 전단원이 같은 발성(음색과 바이브레이션 등)으로 노래하여 음색의 하모니가 잘되었다.  따라서 피아니시모에 있어서는 파이프 오르간의 스웰 소리 같았고, 포르티시모에 있어서는 파이프 오르간의 그레이트와 페달 소리를 듣는 느낌이었다.  흔히 서로 성질(聲質)이나 발성법이 틀리는 사람들이 모여 합창하게 되는 우리나라 합창단의 실정에 비추어 볼 때 무엇보다도 이것이 합창연주에 있어서의 선행조건임을 새삼스럽게 느꼈다.
   둘째로는 음색의 변화성이다. 그들은 곡에 따라 음색을 바꿔서 연주하였다.  그러므로 특히 흑인영가나 인디안 노래를 부를 때에는 전연 다른 발성으로 노래를 불러 큰 효과를 거두었다.  그뿐만 아니라 같은 곡에 있어서도 그 음색의 변화는 실로 자유자재였다.  피아노는 약하게,  포르테는 강하게 부르는 것으로만 알고 있는 듯한 우리네들에게 피아노는 어둡게,  포르테는 밝게 불러 음색 자체를 바꾸는 것이 얼마나 큰 효과를 발생하는가를 또한 체험하게 되었다.
   셋째로는 음량의 조절법이다.  그들은 50명에 지나지 않는 편성을 가지고 피아니시모에서는 흡사 4중창의 효과를 냈고,  포르티시모에서는 백 명 이상의 합창의 효과를 충분히 발휘했다.
   넷째로는 암보(暗譜)로 연주하였다는 사실이다.  제2부 순서 중에 모짜르트의 작품만을 제외하고 약 20곡을 전단원이 완전히 기억하고 일순간이라도 놓치지 않고 지휘자의 팔, 손가락, 얼굴표정, 등에 이르기까지 주시하며 연주했다는 것은 적어도 우리네로서는 상식 밖의 일이 아니었던가 한다.  이와같이 암보로 연주하는 것이 합창연주에 있어서의 또 하나의 선행조건임을 느끼게 되었다.
  다섯째로는 윌리암슨 박사의 악곡해석법과 지휘법이 매우 건전하였다는 점이다.  곡의 스타일과 종류에 따라 적절한 표현을 했으며 조금도 과장이나 허식이 없어 신뢰하고 들을 수 있는 관록있는 연주를 들려 주었다.  특히 지휘법에 있어서 포인트가 확실했으며 더욱이 손가락의 움직임과 얼굴표정 등으로 복잡미묘한 악상을 단원들에게 세밀하게, 친절하게 전달하는 기술 등은 마땅히 본받아야 할 일이다.
  여섯째로는 프로 편성의 성공이다.  프로편성에 있어서 느껴진 것은 유머러스한 곡과 흑인영가를 적당히 삽입한 점이다.  흔히 교회음악 연주회라고 하면 너무 심각한 것이나, 딱딱한 곡만을 선택하여 흥미를 느끼기가 어려운 것인데 이 합창단의 레퍼토리에는 「기도하는 음악」, 「흥분케 하는 음악」, 「즐기게 하는 음악」뿐만 아니라 「보여주기 위한 음악」까지 들어 있어 매우 흥미진진하여 청중의 마음을 완전히 사로잡고 말았다.

 「웨스트민스터 합창단」이 아카페라곡을 주로 하면서도 조금도 무미하거나 지루한 감을 주지 않은 까닭은 위에 말한 바와 같이 발성의 균일성, 음색의 변화성, 음량의 조절법, 암보연주, 윌리암슨 박사의 건전한 연주법, 프로 편성의 성공 등에 있는 것이다.

 < 1956. 11. 한국일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