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집 1집 '주제와 변주'
 

제1회 서울 국제음악회 총평

나  운  영

1. 자바레타와 나바라
   자바레타는 「하프의 혼」,「하프의 시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여덟 손가락 밖에는 사용하지 못하며 또한 일곱개의 페달을 짚음으로써 파생음을 낼 수 있는 이러한 불편한 악기를 자바레타는 완전히 사로 잡아 버렸을 뿐만 아니라 온 청중의 마음을 또한 사로잡아 버렸던 것이다.
   그가 연주한 프로 가운데 가장 좋았던 것은 샤비리, 살세도, 알베니스 등의 연주였다.  특히 살세도의 <밤의 노래>는 어디까지나 하프를 위한 음악이어서 우리는 이 곡을 통하여 아르페지오, 트릴, 글리산도, 하모닉스 등  특수주법에 의한 신기를 목격할 수 있었던 것을 천행으로 생각한다.

   나바라는 분명히 거장이었다. 그의 보잉(運弓法)의 기교는 말할 것도 없고,  특히 피치카토에 있어서의 비브라토는 매우 매력적이었다.  다만 음정에 있어서 완벽에 가까운 연주를 들을 수 없었던 것이 애석하기 한이 없다.
   그가 연주한 프로 가운데 드뷔시와 파가니니의 작품은 매우 훌륭했다.  특히 브람스에 비하여 드뷔시의 연주가 좋았던 것은 생리적인 현상이 아닐까도 생각된다.

2. 푸루고니와 오드노포소프
   먼저 비행기의 연착으로 인하여 한번도 교향악단과 연습 못하고도 감연히 무대에 나선 푸루고니의 무서운 책임감에 경의를 표하는 바이나 그의 5일밤 연주는 그의 빛나는 경력을 무색케 해 줄 뿐이었다.  우리나라에서 누구나 건드리는 <고별>, <열정>, <황제> 등을 연주한다기에 악보까지 펴 놓고 이 대가에게 간접이나마 레슨을 받아 보려는―어디까지나 학구적인 태도로 임했던 젊은 음악학도들에게 큰 실망을 준 것이 단순히 그의 여독 때문이었을까 ?
   너무도 음색이 나쁘고, 포르테와 피아노의 구별이 없고, 트릴조차 잘 안되었으니 뜻 밖이다.

3. 피델리오 공연
   오페라  <피델리오>가 상연됐다는 것은 우리나라 음악사상 길이 남을 만한 일이다.  그를릿드 지휘, 휘슈 연출, 독일인 가수 세 사람의 협찬을 얻어 상연된 이 오페라는 그 기획부터가 좋았고 결과적으로 볼 때 성공을 거두었다고 볼 수 있다.  한국말과 독일어로 연주되어 동문서답격인 어색한 맛은 있었으나 한 달 동안에 이만큼 형태를 갖출 수 있다는 것은 믿음직한 일이다.
   피델리오는 전쟁교향곡과 함께 베토벤의 제2기에 속하는 위대한(?) 실패작이다.  그는 이 작품에 있어서 한 아리아를 18회나 스케치했으며 개작에 개작을 거듭했건만 모짜르트의 <마적>(1791년 작)과는 비교할 수 없는―템포가 느리고, 극적변화가 적고, 감미로운 아리아가 없어 마치 관현악곡에 가사를 붙인 듯한 느낌을 주며 또한 별 동작도 없이 뻣뻣이 선 채로 연주되므로  오라토리오를 방불케 했다.
   이번 공연에 있어서 이인영, 김자경, 이우근, 오현명 제씨, KBS교향악단, 서울음대합창단 여러분의 노고와 특히 프리츠 울, 크리스텔 콜츠, 요셉 메테르니히의 열연에 감사를 드리는 바이다.  앞으로도 오페라만은 외국인의 협찬을 얻어 상연하는 것이 좋을 것이며 다만 작품선정에 있어서 신중을 기해야 될 것을 새삼스럽게 느꼈다.


< 1962. 5. 한국일보 >
4. 휘셔와 오드노포소프
   S.P. 레코드를 통해 우리나라에서도 널리 알려져 있는 세계적인 바리톤 게르하르트 휘셔의 실연을 서울서 들을 수 있었다는 것은 매우 감격스러운 일이었다.  이 노대가(老大家)는―화려한 이태리 오페라를 즐기는 나머지 어둡고 심각한 독일예술가곡의 진미를 잘 모르는 우리네들에게 정통적인 창법을 가르쳐 주었다.  그러나 우리는 그의 독창회에서  60세가 넘은 「늙은 슈베르트」를 발견했으며,  한편 역시 성악가는 60이 넘으면 무리하다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이날 반주자는 방주(傍奏)―때로는 방주(妨奏)를 하였다.  좋은 반주로 다시 한번 들어 보고 싶어졌다.
   리카르도 오드노포소프의  「3 B 협주곡의 밤」은 절찬리에 진행되었다.  그의 능숙한 연주에 도취되어 눈을 감고 들을 때 이것이 레코드가 아닌가 착각을 일으킬 정도였다. 그 러나 6일의 연주에 비해선 음정에 미스가 많았다.  그리고 특히 귀에 거슬리게 한 것은 베토벤 협주곡에 있어서의 카덴짜였다.  많은 카덴짜 가운데 왜 그것을 택했는가가 납득이 안간다.  물론 카덴짜가 주로 기교를 보여 주기 위한 것이라고는 하나 너무도 음악적이 아니어서 원작을 손상시키고 말았기 때문이다.  끝으로 특히 협주곡 지휘에 있어서 정평이 있는 임원식씨는 이번에도 좋은 협연을 보여 주었다.  오드노포소프의 이름은 자바레타, 휘셔, 나바라와 함께 우리나라  팬 가운데 길이 남을 것이다.
5. 한국작곡가의 밤과 교향악의 밤
   이번 서울국제음악제에 있어서 가장 의의 깊은 음악회였어야 할 「한국작곡가의 밤」이  800석도 채우지 못한 채 또 단 세 번의 초견연습으로 결행됐다는 것은 매우 서글픈 이야기이다.  추첨에 의한 순위에 따라 세 작품이 연주되었다. <양산가>는 「양산도의 주제에 의한 협주곡」 또는 「양산도 환상곡」과 같은 느낌을 주었으며 , <교향곡 제2>번(1961년)은 「항쟁」, 「만가」, 「재건」의 3악장으로 된 것이며 , < 어둠을 깨치는 아침>은 애국가,  아리랑(단조로 바뀌었음), 진도아리랑, 밀양아리랑, 봉선화의 선율에 의한 「광시곡」과 같은 느낌을 주었다.
   앞으로는 우리 작품을 연주함에 있어서 외국  작품보다 더욱 성의와 사랑으로 연습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를 충분히 주어야 할 것을 통감한다.

   「교향악의 밤」은 베토벤의 <교향곡 제9번> 중 제3, 제4악장과 안익태선생의  <한국환상곡>이 안익태선생의 지휘하에 연주되었다.  제9교향곡은 2일에 비하여 맥빠진 조잡한 연주로 끝냈으나  <한국환상곡>이 중단됨이 없이 끝난 것을 천행으로 생각한다.
   다만 양대(兩大) 교향악단의 합동연주가 역효과를 발생시켰다는 점과 교향악단, 군악대, 성인합창단, 어린이합창단의 합동연주가 「지상 최대의 쇼」를 방불케 했을 뿐―진정한 의미에서의 음악적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는 점을 절실히 느꼈다. 이런 여건으로 말미암아 안익태선생의 진가가 별로 발휘되지 못한 것이 한없이 안타깝다.


 < 1962. 5. 한국일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