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집 1집 '주제와 변주'
 

 계유년 악단의 전망
― 레퍼토리의 엄선 ―

나  운  영

   새해의 악단을 전망하기 전에 임인(壬寅)년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몇몇 음악회에 대하여 논평을 가하지 않을 수 없다.
   첫째로 국립오페라단의 <돈죠반니 >공연은 문호를 개방하여 김옥자, 호진옥, 민경자를 등장시킨 점과 올 케스트의 연주, 연기 그리고   관현악 반주가 비교적 좋았던 점에 반하여 몇 가지 문제를 던져주었다.  즉 레시타티보(敍唱)를 대화로써 대치 사용했던 것은 단순히 연습시일 관계란 이유만으로 묵인될 수 없는 일이다.  우리나라의 오페라 사상 이와 같은 일은 처음이니 결과적으로는 대중을 속인 것 밖에는 되지 않는다.  그리고 도대체 하고 많은 오페라 중에 왜 하필 색한(色漢)을 주인공으로 하는 이 레파토리를 택하였는가 ?  혹자는 말하기를 우리나라 사람만으로 독일가극을 상연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했지만 기실 이것은 이태리어로 작곡된 것이니만큼 독일가극이 아닌 것이다. 뿐만 아니라 아리아(詠唱)에 있어서 리듬이 너무도 복잡한 탓으로(말이 빨라서) 실제적으로는 무슨 뜻인지 알아 듣기가 힘들었으며 마치 모짜르트의 관현악곡에 가사를 붙인 것 같은 느낌까지 주는 형편이었으니 우리들의 생리에는 잘 맞지 않는다고 볼 수도 있는 것이다.  그 밖에 무대장치에 있어서도 너무 빈약하여 마치 기본만 깔아 놓은 것 같은 느낌을 주었다.
   둘째로 베를린 실내 오케스트라의 내한공연은 뉴욕 리틀오케스트라와 로마 합창단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우리나라의 실내교향악 운동에 큰 교훈을 던져 주었다고 말할 수 있다.  즉 실내악 내지 실내교향악 운동 없이 교향악운동이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을 생각해 볼 때―비정상적인 걸음을 걷고 있는 우리나라 교향악운동에 그 정도(正道)를 가르쳐 준 것만으로도 의의가 컸었다.  즉 안익태선생의 방한 연주 이래 이미 정상화된 감이 없지 않은 양대 교향악단의 합동연주―여기에 군악대, 일반합창단, 어린이합창단까지 동원시켜 '지상최대의 쇼'를 보여 주는 이러한 경향이 얼마나 비음악적인―행사중심의 것이었던가를 회상할수록 베를린 실내 오케스트라의 연주에서 그 의의를 더욱 느끼게 되었다.  물론 그들이 연주한 모차르트의 <교향악 제40번>이 제 1판이었긴 하지만 그것은 목관, 금관, 타악기의 편성만이 다른 것뿐이고 현악의 인원수에는 별로 변동이 없는 법이니 역시 모짜르트의 작품은 비교적 적은 멤버로 연주해야만 그 진가가 나타나게 되는 것임을 알게 된 것이다. (이것은 예를 들어 모짜르트의 <아이네 클라이네 나하트 무지크>를  현악5중주로 감상하는 것과 현악합주로 감상하는 것이 다르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납득이 될 줄로 안다).
   이 밖에도 하이든의 교향곡 <옥스포드>의 파리판과  헨델의 <수상 음악>의 원곡판을 통해서 그들의 본연의 모습을 깨달을 수 있었다는 것은 매우 즐거운 일이었다.  이 연주회를 통하여 작품의 시대적양식에 따라 그것에 알맞는 편성의 연주를 해야 한다는 점과 특히 소관현악 내지 실내교향곡에 새로운 분야가 남아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게 되었다고도 말할 수 있다. 이런 점에 비추어 볼 때 우리나라에서도 「한국 챔버 심포니」가 창립되어 지난 12월 3일에 첫 공연을 갖게 된 것을 다행으로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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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에는 새해의 악단을 전망해 보기로 하자.
   첫째로 과연 「제1회 서울국제음악제」가 개최될 것인가 ?  개최된다면 어느 단체, 어느 연주가가 초청될 것인가 ?  이 문제에 대하여 일언코자 하는 것은 이것이 음악의 국제적인 교류― 즉 다시 말해서 서양음악을 일방적으로 받아 들이기만 하는데 그치지 말고 우리작품을 연주, 발표, 소개하는데 중점을 두어야만 한다는 점과, 좀 더 우수한 연주가를 초청하여 교육적인 효과가 있기를 바라며, 특히 레파토리는 고전, 낭만에 국한하지 말고 근대, 현대음악을 많이 연주해 줄 것을 요망한다.  참고 삼아 제 1회의 경우를 보면 「한국작곡가의 밤」이 가장 소홀히 취급되어 국내적으로나 국제적으로나 좋지 못한 인상을 주었고, 우리나라의 기악 독주가에게는 전연 연주할 기회조차 주지 않았고, 「교향악의 밤」은 양대(兩大)교향악단의 강제적 합동연주로 인한 부작용으로 말미암아 베토벤의 <제9교향곡>이 3, 4악장 밖에 연주되지 못하였을 뿐만 아니라  <한국 환상곡>은 연주가 중단되는 추태를 연출한 일까지 있었으니 제 2회 때에는 이 모든 점을 참작하여 전철을 밟지 않도록 해야 될 것이다.
   둘째로 우리작품의 양적 및 질적 향상을 도모하기 위하여 신작이 발표 연주될 때에는 국가에서 그 작곡자와 연주자(개인 또는 단체)에게 응분의 수당을 지불해 줄 것이 요망된다.  도시 우리나라 연주가들은  외국작품이든 우리작품이든  초연하려 드는 자가 극히 희소하다.  즉 다시 말해서 외국작품이라면 의례히 모짜르트, 베토벤의 교향곡, 협주곡, 실내악곡, 독주곡이나, 슈베르트의 가곡, 이태리.독일 오페라의 아리아, 이태리 칸소네 등을 재연하고,  우리나라 작품이라면 고향생각, 봉선화, 바우고개, 가고파, 동심초 등을 상습적으로 연주할 뿐 레퍼토리의 폭을 넓힌다거나 더욱이 우리나라에서 아직도 연주되지 않은 외국작품(舊作)이나 국내 외를 막론하고 신작(新作)을 초연하려 들지 않고 있으니 이러고서야 어찌 올바른 발전이 있을 수 있을 것인가 ?  
   그러므로 우선 교향악악단, 실내악단, 등의 정기공연 때만이라도 반드시 한 곡 이상의 우리나라  초연의 외국작품과 또한 한 곡 이상의 우리 신작의 세계초연의 프로를 넣는 운동이 자발적으로 전개되기를 바라고 싶다.  더욱이 방송은 국제성을 띤 것이므로 정책적으로라도 우리작품만을 연주하도록 한다든지―어떤 강력한 정책 없이는 극동에서의 후진성조차도 만회할 길이 없을 것으로 생각된다.  요즈음 해리슨, 호바네스 등 외국작가들이 우리 국악에 비상한 관심을 갖고 소위 「노다지」를 캐가기 시작하고 있는 이때에―우리가 한낱 민족음악수립이니 민족음악창조니 하는 구호만을 외친다고 되는 일이겠는가 ?  작품이 완성되기가 무섭게 즉시 초연될 수 있는 우리나라가 되지 않고서는 민족음악창조는 아예 바라지도 않는 것이 좋을 것이다.

   셋째로 국민개창운동이 좀더 올바르게 전개되기를 요망한다.  지금까지는 최고회의 공보실, 공보부, 재건국민 운동본부, 서울 중앙방송국 등에서 개별적으로―산발적으로 국민가요를 제정 보급시키고 있었으나 이것은 여러가지 폐단이 있으므로 앞으로는 이 운동을 일원화하여 국민가요, 신작민요, 동요를 전국의 방송망을 통하여 조직적으로 보급시킴으로써 직장, 학원, 가정에서는 물론 가두(街頭)에서까지라도 애창될 수 있도록 해야 정신무장이 될 뿐만 아니라 명랑한 사회를 이룩할 수 있을 것이 아닌가 ?  
   끝으로 이 개창운동에 전음악인이 솔선 참가하여 빛나는 성과를 거둘 수 있는 새해가 되기를 기원하는 바이다.

         < 1963. 新世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