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집 1집 '주제와 변주'
 

헨델과 리스트

나  운  영

   여러분은 음악영화 「악성 헨델」을 보신 일이 있습니까 ? 그가 영국에서 이태리식 가극을 작곡, 상연하여 다른 작곡가들의 질투와 방해로 고생했던 일은 너무도 유명한 이야기입니다. 그는 이들과 작품을 통해서 싸워 나가는 가운데 서너번이나  결투로 죽을 뻔했었고 파산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중풍에 걸려 죽다 살아난 뒤로부터 하나님의 계시였는지 세속적인 가극을 단념하고 오라토리오 <메시아>를  쓰기로 결심했던 것입니다.
   크리스마스가 돌아올 때 마다 세계각국 방방곡곡에서 불리어지는 역사상 최고의 종교음악의 하나인 오라토리오 <메시아>는 그가 56세때 단 24일간에 작곡한 곡입니다. 이 곡에 대한 가지가지의 에피소드 가운데 다음의 사실을 소개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는 이 곡의 출판을 금하고 이 곡의 연주에 의하여 생기는 수입 전부를 자선사업에 기부했습니다. 그리하여 1750년부터 10년간에 이 곡으로 해서 양로원에 바쳐진 금액은 실로 6595파운드나 되었다고 합니다. 그뿐만 아니라 74세를 일기로 죽을 때 1000파운드를 가난한 음악가들을 구제하는데 써 달라고 유언까지 했다고 합니다. 그 얼마나 아름다운 일입니까 !  자기자신도 경제적으로 곤란을 겪으면서 불쌍한 사람들을 위해서 아낌 없이 바친 그 마음―아마도 헨델을 내놓고는 이와 같은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물론 <메시아>도 위대하지만 인간 헨델의 미덕을 더 높이 찬양하고 싶습니다.

   여기에 또 하나의 아름다운 에피소드가 있으니 그 주인공은 리스트입니다. 리스트는 그 당시 뿐만 아니라 오늘날에 있어서도 그를 따를 만한 사람이 없을 것이라고 까지 믿어지는 위대한 피아니스트입니다.  또 작곡가였던 그는 나면서부터 질책을 모르는 천재였습니다. 누구의 성공이든지 마음으로부터 기뻐하는 사람―이 보다 더 고귀한 존재가 또 어디 있겠습니까 ?
   폴란드의 이름없던 청년 피아니스트인 쇼팽이 어떻게 해서 파리악단에 데뷰할 수 있었는가에 대하여는 오래 전에 나왔던 음악영화 「이별곡」을 보신 분은 잘 아실 것입니다. 또 그 당시 전 유럽의 악단을 상대로 싸우던 슈만을 격려, 후원한 사람도 리스트요, 또 조국 불란서에서는 몰라 주었던 베를리오즈의 환상적 교향곡을 독일에서 연주소개한 이도 그였으며, 불운했던 바그너를 정신적으로나 물질적으로 원조를 아끼지 않았고 그의 새로운 음악 즉 「악극」을 절대 지지했던 이도 그였습니다.

   사실상 남이 잘 되는 것을 진심으로 기뻐한다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입니다. 이 세상에는 자기의 선배나 친구는 물론이고 후배의 앞길을 막으려는 일을 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 특히 신인은 앞에서 선전해 주고 뒤에서 밀어 주는 사람 없이는 출세하기 힘든 법입니다. 또한 시대를 초월한 작품에 대해서는 그것을 지지해 주는 선각자가 있어야 합니다. 참으로 리스트 없이는 그 당시에 베를리오즈와 바그너의 예술은 전연 문제가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후배를 사랑하고 파묻힌 천재를 내세워 주며 적극적으로 도와 주는 그의 이러한 인격은 모든 사람의 존경을 독점하고도 남음이 있을 것입니다.
   그도 또한 헨델과 같이 언제나 많은 돈을 자선사업에 기부했으며 특히 26세이후로 죽을 때까지 자기자신을 위해서 피아노 독주회를 가진 일은 한번도 없었다고 합니다. 남을 위하여 일생을 바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리스트야 말로 또한 음악사상에 둘도 없는 아름다운 에피소드의 주인공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 1962. 9. 새교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