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집 1집 '주제와 변주'
 

음악과 인생

나  운  영

   음악을 즐기는 것은 인간의 본능입니다. 더욱이 좋은 음악을 듣고 싶어 하는 것도 인간의 본능이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고전음악과 현대음악
     순수음악과 경음악
     국악과 양악

 혹은
     성악곡과 기악곡
     관현악곡과 실내악곡, 독주곡
     독창곡과 합창곡
     행진곡과 무곡(舞曲)

   이렇게 많은 종류의 음악 가운데 이것을 골고루 즐기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입니다. 사실상 우리는 이 중에서 어떤 것이든 하나만을 즐기는 사람을 흔히 볼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꼭두새벽부터 자정이 넘도록 바이올린 곡의 레코드만을 틀어 놓아서 이웃사람의 신경을 건드리기도 하고 또 어떤 사람은 그저 자나깨나 경음악만 틀어 놓아서 이웃을 괴롭히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런 것은 자기의 취미에 따라 그 한가지 음악만을 사랑하는 나머지 그 밖의 모든 것을 싫어하는 것이므로 진정한 의미에서는 음악애호가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이제 음악과 인생이란 제목을 가지고 생각해 볼 때 문득 머리에 떠오르는 것은 음식에 관한 것입니다. 육신의 건강을 위하여 우리는 음식을 먹습니다. 그것과 마찬가지로 우리는 영혼의 건강을 위해서 또한 음악을 듣습니다. 그리고 보면 음악은 마치 음식과도 같습니다. 우리가 만고(萬古:아주 오랜 세월 동안)  매일 빵과 버터만을 먹게 되면 하얀 입쌀밥과 김치가 먹고 싶어지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가 가령 양악만 듣게 되면 자연히 국악이 듣고 싶어지는 것이 당연한 일입니다. 또 우리가 만고 하루 세끼 국밥만 먹게 되면 때로는 국수도 먹고 싶어지는 것과 같이 하루종일―아침이나, 낮이나, 밤이나 성악곡 만을 듣게 되면 기악곡이 듣고 싶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음악과 생활」, 아니 「음악의 생활화」에 있어서 먼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때에 따라 각각 다른 종류의 음악을 들어 보자는 것입니다.
   즉 이른 아침에는 요란스러운 음악이나 너무 복잡한 음악보다는 맑은 여성합창곡이나 부드러운 남성합창곡을 들어 보시는 것이 좋을 것이며,  아침출근시간이나 등교시간에는 무겁고 내성적인 실내악곡이나 템포가 느린 시조나 평조회상을 듣는 것보다는 씩씩한 행진곡, 명랑한 성악곡을 들어 보시는 것이 좋을 것이며,  대낮에는 정적인 가야금 산조나 현악 4중주곡 같은 것을 듣는 것보다는 건전한 경음악이나 가극 또는 취타같은 것을 들어 보시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또한 깊은 밤에는 너무 요란한 교향곡이나 취주악곡 또는 경음악, 창극을 듣는 것보다는 명상적인 현악 4중주곡, 하몬드 올갠음악, 시조, 가사, 가곡 같은 것을 들어 보시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이와 같이 시간에 따라 우리의 생활감정과 잘 맞는 음악을 들어 보시면 지금까지 음악에 대해서 관심조차 없으셨던 분이라도 차츰차츰 음악으로 생활하실 수 있게 될 것이며 더우기―경음악이면 경음악, 국악이면 국악―이와 같이 음악을 편애하시던 분도 차차로 모든 종류의 음악을 골고루 즐기실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저열한 음악, 우발적인 음악, 정신위생상 해로운 음악을 ―모르고 즐겨 들으시던 분까지도 차츰차츰 더 고상한 음악, 건전한 음악, 정신위생상 이로운 음악을 좋아하시게 될 것입니다.
   외국사람들은 길을 걸어 갈 때에 두 사람이 가면 이중창을 세 사람이 가면 삼중창을 무의식적으로 하면서 가는 것을 종종 보게 됩니다만 이것도 음악의 생활화의 한 예이며 제주도 해녀들이 노래를 부르며 바다에서 일하는 것도 역시 음악의 생활화의 좋은 예라고 할 수 있으며 저녁밥을 먹고 온 집아 식구가 한 자리에 모여 같이 노래자랑을 하여 단란한 시간을 보내거나 라디오로 음악을 들으며 깨고 음악을 들으며 잠드는―음악을 통해서 하루하루를 행복스럽게 살아 가는 이 생활이 우리에게는 필요한 것입니다.
   요즈음  오디오와 레코드를 구비한 음악감상실이 경향각지에 나날이 그 수가 늘어 가고 있는 것은 무엇보다도 반가운 일입니다. 그러나 그중 서너곳을 다녀 볼 때 마다 나는 이상한 생각에 사로잡히고 맙니다. 왜냐하면 그렇게도 진귀한 레코드가 광범위하게 많이 수집되어 있는데도 불구하고 언제 가 보아도 듣게 되는 것은 베토벤의 <운명>이요,  슈베르트의 <미완성>,  차이코프스키의 <비창>,  드보르작의 <신세계>들 뿐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영웅>, <전원>, <주피터>, <군대>등  표제가 붙은 교향곡이나 <황제>, <월광곡>등  주로 표제가 붙은 곡만을 듣기 원하는 것을 볼 때 자연히 나는 그 까닭을 궁리해 보게 되는 것입니다.
   물론 <운명>이나 <비창>을 감상하는 것 그 자체가 나쁘다는 것은 아닙니다.  가장 감수성이 예민한 청년, 언제나 새로움을 동경하고 추구해야 할 인테리들이 <운명>이나 <비창>만을 듣고 만족할 수 있을 것인가가 자못 의심스러운 노릇입니다. 더욱이 음악감상실 같은 곳에서 바르토크나 쉔베르그의 곡은 고사하고라도 간혹 국악레코드를 주문하는 사람을―정신이상자로 취급해서인지 비웃으며 모두들 자리를 털고 퇴장해 버리는 그 해괴한 거동을 목격할 때마다 나는 그네들을 위하여 현대음악과 특히 국악의 계몽운동이 하루 바삐 좀 더 본격적으로 전개되어야 할 것을 통감하게 되는 동시에 자칭 음악전도사(?)로서의 또 하나의 사명을 자각하게 됩니다.

   여러분! 음악을 편애하지 마십시요!
   새로움을 추구하십시요!
   그리고 민족의 노래를 찾으십시요!

   음악과 더불어 사는 것, 음악의 생활화―이것이야말로 오늘날 우리에게 절실히 요구되는 영혼의 양식입니다. 우리는 이와 같이 아침, 낮, 저녁, 밤에 각각 그때그때에 적합한 음악을 골고루 들으면서 고해와 같은 인생을 음악고과 더불어 즐겁게 살아 나가십시다.

 < 1958. 7. 교육문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