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집 1집 '주제와 변주'
 

 고언(苦言) 3제(三題)

나  운  영

음악(音樂)과 음락(音樂)
   음악에는 두 가지가 있다. 심각한 내용을 가진 것은 '음악(音樂)'이고,  별로 깊은 내용이 없고 그저 가볍거나 달콤한 것은 '음락'이다. 그러므로 나는 저 바그너가 창시한―오페라의 발전체(發展體)인―악극은 '악극(樂劇)'이요 우리나라에서 유행되는 소위 악극은 '낙극'이라고 부른다.  왜냐하면 이것은 즐거운 극은 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야말로 음악극은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경음악도 나는 '음락'으로 생각한다. 그렇다고 해서 나는 경음악을 덮어 놓고 저속한 것으로 생각하거나 전적으로 배격하는 어리석은 자는 아니다. 어떻게 사람이 밤낮으로 심각한 음악만 들을 수 있을까 ? 아무리 맛있는 음식이라도 언제나 같은 것만 안기면 싫증이 나는 격으로 음악에 있어서도 때로는 경쾌한 룸바나 맘보를 듣는 것도 좋을 것이다. 반대로 아무리 경음악이니 째즈에 미친 사람이라도 줄곧 그것만 들으면 첫째로 정신이 피로해서라도 안정된 음악이 요구될 때가 있을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나는 경음악을 장려는 않을지언정 무조건 반대하지는 않는다. 아닌게 아니라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는 경음악이란 말이 악용 또는 오용되어 왔다. 경음악이 즉 악(惡)음악 또는 비(非)음악은 아니다. 나는 다음과 같이 정의를 내려 보련다.
「정적이고 심오한 내용을 지닌 음악은 '음악'이요,  동적이며 경박한 음악은 '음락'이다」
「리듬(장단)만을 중요시하는 음악, 행진곡, 미뉴엣, 스케르쪼, 월츠, 탱고, 룸바, 폭스트롯 등 무용음악은 모두 경음악이요 '음락'이다.

음악(音樂)과 음악(音惡)
   역시 음악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음악(音樂)이요  또 하나는 음악(音惡)이다. 즉 나쁜 음악도 음악(音惡)이요, 음악이 되다 못 된 것도 음악(音惡)이다. 우리나라의 소위 악극(樂劇) 가운데서도 음악(音惡)에 속하는 것이 상당히 많은 것은 물론이다. 듣는 사람의 마음을 타락케 하는 음악은  음악(音樂)도 아니요 음락도 아니요 그야말로 음악(音惡)일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레코드판이 헐어서 한군데를 줄곧 되풀이하거나 축음기의 태엽이 풀려서 비행기가 내려오듯이 되는 것 등도 말할 수 없는 음악(音惡)이다. 우리는 무의식중에서라도 음악(音惡)은 만들어 놓지 말아야 할 것이 아닐까 ?
모던 뮤직과 못된 뮤직
  현대음악을 흔히 모던뮤직이라 하는데 좀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모던뮤직은 근대음악이요 , 컨템퍼러리 뮤직이 현대음악일 것이나 이것은 고사하고라도 항간에는 고전음악이 아닌 것을 모던뮤직으로 생각하거나 괴상한 음악은 모두 모던뮤직이라고 하는 사람이 상당히 많음을 볼 때 고소를 금할 수 없다.  못된뮤직이 모던뮤직도 아니요 모던뮤직이 못된뮤직도 아니다. 하기야 축음기 태엽 풀린 음악이 모던뮤직에 있어서의 무조음악이나 미분음음악과 비슷할지는 모르나 이것은 모던뮤직이 아니라 못된뮤직 또는 그야말로 음악(音惡)일 것이 아닌가 ?  회화에 있어서 데상을 못하는 사람이 현대화를 그릴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고전음악이나 낭만음악의 작곡이론을 모르니까 현대음악을 쓴다는 사람이 우리나라에도 있을까 ? 현대음악이 일정한 이론적 체계가 없고 각자의 감각대로 작곡된다고 해서 정말 전혀 이론적근거가 없이 작곡되는 것일까?  절대로 그런 것이 아니다. 그림에 있어서 자기작품을 설명할 수 없다고도 하지만 그 작가가 아무 미학적인 이데아 없이 제작하는 것은 아닌 것과 같은 논리다. 현대작가의 수법이라든가 시스템이 각각 다르다 할지라도 공통된 그 무엇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할 것이다. 정신병자가 만든 것이 모던뮤직이 아니고 아카데믹한 기초가 없는 사람이 만든 서투른 솜씨에서 되다 못된 음악이 모던뮤직은 아니다. 나는 여기서 특히 순수음악인에게 주고 싶은 것은 「소위 경음악이나 음악애호가, 음악문외한이 더 현대음악에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또한 더 즐기고 있다」라는 말이다. 역사는 흐른다. 시대사조를 무시해서는 안된다. 우리는 현대음악의 동향을 주시해야 할 것이며 더욱 현대음악과 사이비 현대음악 그리고 모던뮤직과 못된뮤직을 구별해야 할 것이 아닌가 ?

 < 1954. 2. 문화춘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