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집 1집 '주제와 변주'
 

음악 이전과 기법 이전
―연주계와 작곡계와 결부시켜―

나  운  영

   음악 이전(音樂 以前)이라 말이 있다.  제 아무리 연주기법이 좋다 하더라도 해석이 좋지 못하면 그것은 음악 이전이라 할 수밖에 없는 것이며 또는 아무리 작곡이론을 많이 습득했고 그 기법을 구사했다고 하더라도 그 내용이 공허유치(空虛幼稚)하다면 역시 음악 이전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기법 이전(技法 以前)이란 말이 있다. 제 아무리 곡의 해석이 좋다 하더라도 연주기술이 미숙하다면 그것은 기법 이전이라 할 수밖에 없는 것이며 또한 아무리 곡의 내용이 충실, 고상하다 하더라도 작곡기법이 졸렬하다면 역시 기법 이전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세계적 바이올리니스트 하이펫츠,엘만 등을 길러낸 아우어 교수는 일찍이 말하기를 「예술은 테크닉이 끝난데서부터 시작된다」고 했다. 즉 음악은 연주기술이 완전히 습득된데서부터 시작된다. 작곡기법이 완전히 습득된데서부터 시작된다. 이것은 우리네들에게는 마치 사형선고문과 같다. 일생을 두고 매일 7, 8시간씩 피아노나 바이올린 공부를 해도 그 많은 에튜드와 명곡에 완벽에 가까울 정도의 테크닉을 습득할 수 없는 것과 또한 화성학, 대위법, 악식론, 관현악법, 작곡법 등 작곡학의 전과정을 이수하고 자나깨나 습작에 습작을 계속해도 만족할 만한 작품이 되지 않는 것을 생각할 때 실로 이 이상의 추상과 같은 논고가 또 어디 있으랴?
   음악 이전과 기법 이전―이 두 말은 생각만 하여도 우리네들에게는 무서운 말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이 두 말은 우리나라 연주계나 작곡계에 해당되는 말임을 자타가 공인할 수밖에 없는 것일 것이다. 그러나 나는 여기서 음악 이전이란 말을 연주계와 결부시켜 보고 또한 가법 이전이란 말을 작곡계와 결부시켜 보려 한다.

   우리나라의 연주계는 6. 25사변 이후로 놀라울 만큼 향상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들 중에는 아직도 음악적인 연주를 하지 못하고 있는 자가 많다. 왜냐하면 그들은 테크닉에만 치중하는 나머지 자신이 연주하는 곡의 화성, 악식 정도도 모르고 연주하는 관계로 악보 뒤에 숨어있는 악곡의 내용, 작곡자의 기분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여 결과적으로는 본의 아닌 음악 이전의 연주에 그치고 말게 되는 것이다.
   다음으로 우리나라의 작곡계도 근래에는 많은 신진작곡가들이 배출되어 작품을 발표하고 있다. 그러나 역시 그들 중에는 아직도 기법이 미숙한 자가 많다. 왜냐하면 그들은 테마와 타이틀 같은 데에만 큰 관심을 갖고 있으므로 기법상으로는 마치 미국의 민요작곡가인 포스터와 같이 주3화음,속3화음,하속3화음의 3어법만을 사용하고 또한 짤막한 가요형식의 곡을 쓰고도 만족(?)하려 드는 관계로 모처럼 좋은 테마를 가지고도 예술적인 대작품을 쓰지 못하여 결과적으로는 기법 이전의 작품에 그치고 말게 되는 것이다.

   음악 이전과 기법 이전―이것이야말로 연주계와 작곡계가 반드시 극복해야 할 중대한 과제임을 나는 강조하는 바이다.

< 1959. 1. 영남일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