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집 1집 '주제와 변주'
 

음악과 교양

나  운  영

   음악은 마치 공기와도 같습니다. 우리가 공기를 마시지 않으면 살 수 없는 것 처럼 음악을 듣지 않고는 살 수 없는 것입니다.
   공기에 맑은 공기와 더러운 공기가 있는 것 처럼 음악에도 좋은 음악과 좋지 못한 음악, 고상한 음악과 저속한 음악, 건전한 음악과 퇴폐적인 음악, 정신위생상 이로운 음악과 해로운 음악이 있습니다.

   그러면 무엇을 가지고 음악에 교양이 있다고 하는 것입니까? 반드시 베토벤의 교향곡을 이해해야만 교양이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베토벤의 교향곡이 전부 몇 편인지 또는 그가 몇 살에 죽었는지 등을 알아야만 교양이 있다고 하는 것도 아닙니다. 먼저 근본적으로 좋은 음악과 나쁜 음악을 분별할 줄 아는 것이 교양입니다. 즉 불완전한 음악이나, 연주가 서투른 음악, 유치한 음악을 되도록 피하고 가까이 하지 않으려면 음악에 대한 교양이 필요합니다.
   다음으로는 현대음악을 이해해야만 교양이 있는 것도 아니고 재즈를 멸시해야만 교양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고전음악이든, 경음악이든, 국악이든, 양악이든 간에 그 중 하나만을 편애하지 말고 각각 그 음악의 특색을 인식하여 필요에 따라 모두 즐길 수 있어야만 교양이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저는 오늘날 지성인들 가운데 아직도―국산 일본색 유행가 커녕―일제시대의 그들의 유행가를 떳떳이 소리 높혀 노래하는 것을 목격할 때마다 의아한 감을 금치 못합니다. 이것은 아마도 자기의 전문 분야에 대한 지식과, 음악에 대한 교양이 병행되지 못한 까닭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음악을 들을 줄 알거나, 악기를 다룰 줄 알거나, 간단한 노래를 작곡할 줄 알거나―이 세가지 중 어느 한 가지만이라도 교양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먼저 말씀드린 대로 음악은 공기와 같은 것이므로 인간이 사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악기를 다룰 줄 알거나 노래를 작곡할 줄 모른다 하더라도 적어도 시시각각으로 도처에서 들려 오는 음악을 들고 즐길 줄은 알아야 할 것이 아니겠습니까?
   음악이란 반드시 음악회나 감상실에 가서 고요히 눈 감고 심각한 표정을 하고 들어야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거리에서, 다방에서 들려 오는 음악소리를 들으면서 순간순간 인생을 즐기는 것―즉 음악의 생활화가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추운 겨울에 냉면 먹는 격으로 슬플 때에 슬픈 음악을, 기쁠 때에 기쁜 음악을 듣는 것도 좋을 것이며 반대로 무더운 여름에 아이스크림 먹는 격으로 슬플 때에 기쁜 음악을, 기쁠 때에 슬픈 음악을 듣는 것도 많은 위로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만이 교양이 아닙니다. 요즈음 음악회가 있을 때마다 신문지상에 음악회의 평이 나옵니다만 그 중 어떤 경우에는 甲은 절찬을 했는데 乙은 몹시도 내려 친 기사를 종종 보게 됩니다만 이를 제삼자로서 볼 때 이에 대한 바를 판단을 내려 그릇된 평에 현혹되지 않는 것도 교양입니다.

   음악에 대한 교양을 갖추지 못하신 분은 마치 사막을 걷는 인생과도 같습니다. 이 대지에 가득찬 음악―그 중에서도 좋은 음악, 건전한 음악을 많이 들으시고 그날 그날을 명랑하게 살아 나가십시다. 옳지 못한 생각이 떠오를 때 음악을 들어 보십시요. 마음이 안정되지 않을 때, 영혼과 육신이 병들었을 때 음악을 들어 보십시요. 이리하여 음악에 대한 교양을 가진 분이 나날이 늘어 가면 우리의 민족 음악문화도 자연 향상될 것이고 따라서 이 땅에 가득찬 좋지 못한 음악, 저속한 음악, 퇴폐적인 음악, 정신위생상 해로운 음악도 자연 도태될 것입니다.

  < 1957. 계우 33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