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집 1집 '주제와 변주'
 

한국영화음악에 대한 관견(管見)
 ―작곡가의 입장에서―

나  운  영

   「국산영화에 서양음악의 레코드를 사용한다는 것은 영화인의―음악에 대한―무지를 폭로하는 일이다」
   도대체 기성곡을 새 영화에 적합시키려 드는 것부터가 망상이 아닌가? 설혹 부분적으로 레코드를 사용할 수 있다 하더라도 그 다음 장면에 나올 음악과의 연결을 어떻게 지을 수 있는가?  이곡 저곡에서 필요한 부분만을 추려서 그 연결도 고려하지 않고 교체시킨다는 것은 음악의 흐름을 전연 모르는 사람들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음악은 그저 소리만 나면 된다」는 따위의 생각을 버려야 할 것이다. 영화를 살리는 것이 음악일 것이거늘 어찌하여 음악을 2차적, 3차적으로 취할 수 있는가?
   만고에 부득이한 사정으로 레코드로 대용을 한다 하더라도 좀 더 광범위하게 레코드를 수집하거나 음악의 스타일을 고려하여 같은 스타일의 음악으로 선택한다든가 또는 같은 색채의 음악으로 통일시켜야 될 것이 아닌가?  국산영화 가운데에는 화면이나 스토리가 전연 다른 영화에 있어서 꼭 같은 곡의 음악이 흘러 나오는 기적이 적지 않음을 볼 수 있으니 이것은 레코드판이 그것밖에 없어서 그리 된 것인지 그렇지 않으면 음악담당자가 그 음악밖에 모르는 까닭인지 또는 무성의에서 오는 결과인지 이해하기 곤란하다.
   기성곡을 연결시킨다는 것은  새로 작곡하는 것보다 몇 배나 더 힘든 일이라고 나는 확신한다. 다만 공간만 생기지 않고 소리만―여기에선 절대로 음악이란 말이 적합치 않다―계속되면 연결이 된 것으로 믿으려는 것은 매우 행복(?)스러운 생각이다. 그러나 이것은 음악담당자, 다시 말하면 레코드 선택자만의 행복에 그치는 일이요 만인에게 불행을 강요하는 처사가 되어 버리는 것이다. 우리가 한 작가의 작품을 편작(編作)한다 하더라도 그 연결이 자연스럽게 되지 않아 고민할 때가 한 두번이 아니니 하물며 국적과 시대가 다르고 작품양식과 색채가 다른 작가의 음악을 강제로 연결시키려는 것은 폭군적 행위에나 비할까?

  그러므로 이 땅에서도 하루 속히 영화음악에 레코드를 대용하는 그릇된 전통(?)이 없어지고 화면에 적합하도록 작곡하는 새로운 전통이 수립되어야 할 것을 나는 역설한다. 영화음악에 있어서의 관현악편성은 대체로 9인조(바이올린과 쌕스폰, 또는 클라리넷 각 2인, 트럼펫, 트럼본, 첼로, 피아노, 타악기 각 1명)로도 가능하다. 그러므로 최소한도의 경비를 가지고도 생음악인 동시에 신작음악을 최대한도로 사용할 수 있는 것이다. 영화인은 하루 속히 우리 작곡가들과 제휴하여 100% 국산인 영화를 만들어야 할 것이다. 국산영화가 외국작곡의 레코드로 대용되는 것은 영화자체와 영화인, 영화계 전체의 수치라고 나는 단언한다. 우리 음악인(작곡가와 연주가)은 영화인들이 각성할 날을 고대할 뿐이다.
   끝으로 화면에 부합되도록 생음악을 작곡하여 영화를 제작하는 데 있어서 절대로 국산 일본색음악―특히 일본고유의 민속음계인 음음계(陰音階)  다시 말하면 <미, 파, 라, 시, 도, 미>로 된 미야꼬부시(都節)나―우리 생리에 맞지도 않는 과도한 이국적 째즈음악 같은 것을 배격하고 어디까지나  민속적인(우리나라) 동시에 현대적인 건전하고도 명랑한 음악을 작곡하도록 작곡가에게 요망할 수 있는 시기가 도래하기를 아울러 기원하는 바이다. 불란서 영화가 세계적인 작곡가인 오네거, 미요, 오릭, 이베르 등 자기나라 일류 작곡가들에게 작곡이 의뢰되어 이로 말미암아 불란서 영화의 수준을 가일층 높이고 있음을 상기하자.

 < 1955. 11. 중앙일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