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집 1집 '주제와 변주'
 

단종애사(斷種哀史)

나  운  영

   이곳 석굴암에 와 보니 과연 신라의 문화를 세계에 자랑할 만도 하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특히 「아사달」이 역학(力學)을 이용하여 둘레를 싼 점이라든가 광선을 이용하여 대불(大佛)의 얼굴을 비치도록 했다는 점 등등을 전해 들을 때 나는 도리어 그 놀라움에 비할 수 없는 적막감을 느끼게 됩니다. 신라의 문화를 자랑만 해 무엇하겠습니까? 조상의 위업이 계승되지 못한 채 있으니 이는 분명히 「죽은 문화」일 뿐―이러고서야 어찌 문화민족이라고 자랑만 할 수 있겠습니까?
   음악에 있어서도 그러합니다. 왕산악, 우륵, 옥보고, 백결 선생이 많은 작품을 남겼다는 문헌만은 남아 있으나 곡은 알 길조차 없으니 이는 하나의 신화밖에는 되지 않습니다. 소위 「청기와 장사」 모양으로 옛날 사람들은 제자를 기르지 않았으니 단종애사라  아니 할 수 없습니다.
   과거 문교부 주최 제 7, 8회 전국음악경연대회에 바이올린과 첼로부문에는 참가자가 단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심사원은 ○○명인데 참가자가 없었으니 개점휴업이란 이런 것을 두고 하는 말이나 아닐는지요? 아무리 콩쿨의 권위가 땅에 떨어진들, 지정곡 선정에 무리가 있었던들, 연령 제한 때문인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입니다. 옛날 사람들은 아예 제자를 기를 생각조차 하지 않았거나 제자를 가르칠 정신적, 시간적 여유가 없었는지 모를 일이로되 요즈음에는 대학 재학 중인 학생들까지 버젓이 개인교수를 하고 있을 만큼 교육열(?)이 왕성한 모양인데도 우수한 신인이 나오지 못하는 형편이니 이 또한 단종애사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 1960. 11. 경주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