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집 1집 '주제와 변주'
 

나의 인생관

나  운  영

 『아이야 그렇게 미워하질 마십시요.
      그렇게 마구 때리질 마십시요.
      낙엽이 솔솔 내리는 긴 숲길을 아무런 미움이 없이 나도 같이 갑시다.
      어쩌다가 멋 모르고 태어난 당나귀 나 한 마리
      살고 싶은 죄 밖엔 없습니다.
      이렇게 저렇게 살고 있는 죄 밖엔 없습니다.
      외로움이 죄라면 하는 수 없는 죄인이올씨다.
      낙엽이 솔솔 내리는 저문 길을 보십시요. 나도 함께 소리 없이 끼어 갑시다.』
                                                                                                < 조 병 화 지음 >

            *            *          *
   나는 낙천주의자도 아니요, 비관론자, 허무주의자도 아닙니다. 나는 항상 자업자득이란 말을 씁니다. 내가 잘 사는 것도 자업자득이요, 못 사는 것도 자업자득입니다. 나는 아무도 부러워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아무도 원망하고 싶지 않습니다. 모든 것은 내 탓이요, 남의 탓이 아니라고 믿는 때문입니다.
   흔히 우리네들은 누구누구 때문에 못 산다고 합니다만 이것은 큰 잘못입니다. 모든 책임을 남에게만 돌리는 것은 안 될 말입니다. 모든 원인은 나 자신에게 있는 것입니다. 나라가 부패해 가는 것도 그 책임은 누구보다도 먼저 나 자신에게 있다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되어지는 모든 일이―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자업자득이라고 굳게 믿고 있으며 따라서 별로 기뻐하거나 슬퍼하지 않습니다.

            *              *            *   
   「나의 길을 가련다」란 말은 나의 생활신조입니다. 우리네들은 남의 간섭하기를 좋아합니다. 뿐만 아니라 남이 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좋게 보여 그것을 따르려 하므로 그런데서 시기와 질투, 모략, 중상이 생기는 줄 압니다. 그러나 나는 사명감에 불타는 사나이인 까닭에 묵묵히 나의 길을 걸어 갈 뿐입니다. 남과 경쟁하려는 생각조차 별로 없습니다. 남들이 하는 일과 나 자신이 할 일이 엄연히 다르다는 것을 자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남들이 모두 달리는 그 길을 달리고 싶지 않습니다. 남들이 안 하는 일을 하고 싶습니다. 즉 남들과는 다른 또 하나의 길을 조심스럽게 달릴 따름입니다.
   민족적 아이디어와 현대적 스타일을 결부시킴으로써 현대적 한국음악을 창조하는 일과 서양음악의 작곡이론을 한국적으로 섭취하여 민족음악이론의 작곡학적 체계를 확립하는 일―이것만이 나의 갈 길이라고 확신합니다.

             *              *             *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란 말이 있습니다만 나는 이 말을 바꿔 생각하기를 즐깁니다.
   「예술은 짧고 인생은 길다」―이 말에 나는 한없이 자극을 받습니다. 「썩어 백년 살아 무엇하리」란 말이 있다시피 하는 일 없이 오래 살면 무엇하겠습니까? 나는 몇 해 전에 핀란드의 대작곡가 시벨리우스를 가리켜 감히 「예술은 짧고 인생은 길다」란 말을 토한 일이 있습니다. 즉 나라에서 연금을 주고 별장까지 주었건만 그는 30년 동안 작품 하나 쓰지 못하고 있다가 그만 자연사(自然死)가 되어 버린 것을 생각해 볼 때 현재 내 나이에 비해 해 놓은 일이 적은 것을 스스로 부끄럽게 생각합니다.
   이 해도 벌써 다 기울기 시작했습니다. 별로 한일 없이 또 한 해를 보낸다는 것을 생각하면 「예술은 짧고 인생은 길다」란 말이 나에게만 해당되는 듯 싶습니다.
 「자업자득」, 「나의 길을 가련다」, 「예술은 짧고 인생은 길다」 . . . 이제부터라도 인생의 존재 의미, 목적, 가치를 바로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 1962. 11. 사상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