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집 1집 '주제와 변주'
 

잠언(箴言) 아닌 잠언(箴言)

나  운  영

   1. 「먼저 무엇을 표현할 것인가」를―다음에 「그것을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를 생각하라.
   2.  매너리즘을 경계하라.
        작품마다 스타일과 테크닉을 바꾸어 보라.
   3. 독창성은 새로운 선율, 화성, 리듬 자체보다도 그 새로운 사용방법에서 발휘되는 것이다.
   4. 「영감(靈感)」은 쓰는 동안에 떠오르는 법이다. 노력하지 않고 영감이 떠오르기만을 기다리는 자는 어리석은 자이다.
   5. 아무리 짧은 곡일지라도 완성시키는 습관을 기르라.
       끝마치는 것도 하나의 기술임을 알라. 제작 중에 있는 작품에 대하여 애착을 가지라. 도중에서 파기하는 것은 자살행위다.
   6. 작품을 완성한 후에는 반드시 그것의 연주를 들어 볼 기회를 만들라.
       작품은 실제로 들어 보아야만 공허한 곳, 불필요한 부분, 연결이 어색한 점 등을 발견하게 된다. 그러므로 먼저 들어 본 후에 최소한도로 수정을 가하라.
   7. 습작과 창작에는 엄연히 경계선이 있는 것이다.
       개성이 드러난 것부터가 창작이다. 따라서 작품번호가 느는 것에만 관심을 갖지 말라. 습작과 창작을 구별할 수 있는 이성을 가지라.
   8. 습작을 최소한도로 수정, 개작하는 양심을 가지라.
       왜냐하면 전면적으로 수정 개작할 바에는 차라리 그 정력과 정열을 신작에 기울이는 것이 현명한 일인 까닭에 . . .
   9. 선율과 반주는 잘 어울려야만 할 것이다.
      만약에 선율과 반주가 어울리지 않는다면 그것은 방주(妨奏) 즉 협조적 방해가 되고 말 것이다.
 10. 표제음악적 작곡기법을 습득하기에 노력하라.
      영화를 통해 어떤 장면에 어떤 음악이 적합한가를 연구해 보라. 발레음악, 표제음악, 교향시, 오페라 등을 많이 들으라. 그리하면 표제음악의 작곡기법을 발견할 수 있으리라.
 11. 일단 구상이 끝난 후에 붓을 들되 멜로디만을 끝까지 써놓으라.
      전곡에 대한 구상 없이 시작한 작품은 방향을 잃은 선박과도 같다. 이것은 제작 도중에 파기하는 악습을 가진 자에게 주는 말이기도 하다.
 12. 작곡자는 청중의 심리를 완전히 파악해야 한다.
      너무 잦은 반복은 지루한 감을 주고 클라이막스의 과잉은 피로를 준다. 따라서 클라이막스의 전후에는 정신적인 휴식이 필요하다. 베토벤의 제5교향곡의 제4악장 직전을 들어보라.
 13. 이론공부와 창작을 병행시키라.
      공부하면서 쓰라. 쓰면서 공부하라. 양면작전을 수행하는 것만이 성공의 비결이다.
 14. 선율과 화성은 잘 어울려야만 할 것이다.
      선율은 나체(裸體)요 화성은 의상이라 할 수 있는 까닭에 . . . 민요에 정3화음을 붙이는 것은 기술이전에 속한다.
 15. 악곡의 종류, 성질, 형식 등에 알맞은 주제를 택하라.
      또한 될 수 있는 대로 악기에 적합한 곡을 쓰라.
 16. 작품은 인격의 표현이요, 사상, 감정의 표현이다.
      무엇보다도 윤리, 도덕에 어그러지는 행동을 삼가라. 좋은 작품을 쓰려면 먼저 참된 인간이 되어야 한다. 따라서 「유치」와 「저속」은 작가의 양심이다.
 17. 작곡에 있어서 수직적공간과 수평적공간을 메우는 일을 잊지 말라.
 18. 민족성과 시대성을 떠난 것은 좋은 작품이라 할 수 없다.
 19. 항상 틀(모형)에서 벗어나기를 힘쓰라.
      틀에 박힌 작품은 예술적이기가 어려운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틀에 맞출 수 있는 사람만을 대상으로 한 말이다.
 20. 자기자신에 충실하라.
      현대음악을 가장(假裝)하지 말라. 유행을 맹종하지 말라. 자기도 모르는 것을 쓰지 말라. 이것은 자기기만이요, 허위요, 협잡이다. 12음 기법이란 전통적인 수법에 의한 작품을 쓰지 못하는 사람을 구제하기 위한 것은 아니다.
 21. 형식을 아는 사람만이 그 형식을 파괴할 수 있다.
      환상곡이나 광시곡, 기상곡 등은 소나타형식을 모르는 사람들을 위하여 만들어진 편리한 형식이 아니다. 무엇보다도 먼저 소나타형식을 정복하라.
 22. 좀 더 의욕적인 작품을 쓰기에 노력하라.
      평범한 작품은 실용적인 것 이외에는 존재가치가 없다.
 23. 지루한 감을 주는 작품은 실패한 작품이다.
      그것은 변화가 적은 탓이요, 반복이 많은 탓이다. 그러므로 끝까지 쓴 뒤에 아낌없이 삭제해 버려야 한다.
 24. 아카데믹한 수법은 독창력을 제지시킨다.
      그렇다고 해서 아카데믹한 수련을 쌓을 필요가 없다는 말은 결코 아니다. 아카데믹한 수법을 마스터한 사람만이 그것을 초월할 수 있는 까닭에 . . .
 25.형식과 내용이 일치된 작품만이 완전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새로운 내용을 낡은 형식에 담는 것이나, 낡은 내용을 새로운 형식에 담는 것은 부자연스럽다. 이런 의미에 있어서 신고전주의 음악은 현대음악을 창조하기 위한 과도기적인 음악에 불과한 것이다.  새로운 내용을 새로운 형식에 담은 것이 구체음악, 전자음악일 것이다.
 26. 화음에 있어서 주로 3어휘(語彙)―주3화음, 속3화음, 하속3화음―로 된 음악은 마치 3원색만으로 된 원시적 회화(畵畵)와도 같다.
 27. 의작(擬作)을 통해서 악성들의 독자적인 기법을 체험하라.
      이것만이 여러가지 스타일과 테크닉으로 작곡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다만 희작(戱作)이 될까 조심하라.
 28. 전통적인 음악, 아카데믹한 수법에 근거를 두지 않은 새로운 수법은 「이유없는 반항」이 되기 쉽다.
 29. 숙달한 테크닉은 아이디어의 결핍을 어느 정도까지는 캄프라치 시킬 수 있을 것이다.  
       라벨의 경우가 그러하다.
 30. 일본색과 낡은 서양색에서 탈피하라.
      우리 민요를 수집,채보, 연구함으로써 민족적 요소를 발견, 발전시키라. 「민족적 아이디어」,「현대적 스타일」― 이 과업을 완수하기 위하여 끊임없이 모색을 거듭해야 할 것이다.

< 1960. 5. 음악문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