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집 2 '독백과 대화'
 

한국음악의 지방성과 국제성


나  운  영


   민속음악과 민족음악은 다르다.  나는 일찌기 「방언(方言)과 방언(邦言)」이란 글을 통해서 「민속음악은 향토음악을 말하는 것이고 민족음악은 세계성을 띤 예술음악을 말한다. 즉 민속음악은 방언(方言)과 같은 것이고 민족음악은 방언(邦言)과 같은 것이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이제 음악의 지방성에 대하여 생각해 볼 때 지방성이란 민속음악을 두고 하는 말이요, 국제성이란 민족음악을 두고 하는 말이라 할 수 있다.
   흔히 한국음악이라고 하면 민속음악으로서의 국악과 학교교육으로서의 양악을 생각하기 쉬우나 양악이란 엄격한 의미에서 한국음악이라 말할 수 없고 오직 국악과 양악의 형식적인 절충에서 그치지 않은―서양 악기를 주로 사용하여 민족적 아이디어를 현대적 스타일로 표출한 민족음악만을 나는 문제삼고 싶다.


문화교류시대에 있어서의 우리의 자세    
   두말할 것도 없이 현대는 문화교류의 시대이다. 그러므로 특수성, 지방성을 경쟁하기 보다 일반성, 세계성을 지향해야 하며 우리 문화에 도움이 된다면 얼마든지 외국 것을 받아들여야 할 일이다.  그러나 우리는 외국 것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기만 하지 않았던가?  다시 말해서 무엇을, 왜,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것인가에 대하여 비판을 갖지 못하고 무조건 외국 것이면 받아들였기 때문에 우리는 식중독에 걸리고 말았다.  한편 우리는 우리 것을 만들어 내지도 못했고―좀 더 솔직하게 말해서 우리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있기 때문에 우리 것을 외국에 내어 놓지도 못하고 있었지 않았나?  아무리 현대가 일반성, 세계성을 지향하는 시대라 해도 특수성, 지방성만은 무시, 경시할 수 없는 일이 아닌가?  근래에는 우리 연주가들이 외국에서 연주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그러나 그들이 과연 우리 작품을 한 곡이라도 연주하였던가?  그들이 외국에 가서 외국사람의 작품만을 연주하였으니 어찌 이것이 문화교류라 할 수 있겠는가?  내 나라의 작품을 소개함으로써 문화교류가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수년 전부터 국제음악제를 비롯하여 외국의 저명한 연주가들의 내한 연주를 들을 수 있게 되었는데 우리는 받아들이기만 했고 우리 것을 내보내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니 언제나 일방통행을 면할 수 있을 것인가?

지방성의 발굴을 위하여
   우리나라는 극동에 있어서의 교량적인 구실을 해 왔다.  즉 중국의 아악, 당악이 우리나라를 거쳐서 일본으로 건너갔으나 우리나라는 교량적인 구실만을 해 온 것은 아니라고 나는 믿는다.  우리는 중국 것을 재창조했다.  중국 것을 받아들인 다음 그것에 우리의 창의성을 가미하여 마침내 우리 것을 만들어 버렸다.  그러므로 중국음악과 일본음악은 흡사한 점이 뚜렷하다.  이것이 곧 지방성이다.  우리나라의 가곡,창극,가야금 산조, 남도 시나위, 농악, 민요 등은 그 정적인 면에서나 동적인 면에 있어서나 고유의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  그러므로 작곡가들은 민속음악의 「맛」과 「멋」을 잘 살려야 할 것이다.
   나는 위에서 「우리는 외국문화를 수입하기만 했고 우리 것을 수출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뿐이 아니다. 우 리는 과거에 외국 사람들에게 우리의 노다지를 빼앗겼고 또한 현재도 빼앗기고 있다.  즉 그들은 국민적인 것에서 출발하여 이제는 이국적인 것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여 우리의 것을 발굴, 반출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문화교류에 앞서 지방성을 발굴하는 데 힘을 써야 할 것이다.


음악학도의 기본 자세
   학생들이 음악을 공부하는데 있어서 그 근본 목적부터가 잘못된 점이 많으니 첫째로 양악을 연구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는 자가 절대다수인 데는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바하, 베토벤을 연구하는 것만이 우리나라 음악학도의 할 일인가?  우리 작품을 올바르게 연주할 수 있기 위하여 양악의 작곡법 또는 연주법을 배워야 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둘째로 양악으로서는 도저히 외국 사람을 따를 수 없기 때문에 결국은 우리는 우리 음악을 공부할 수밖에 없다고 체념하는 자가 또한 많이 있는 듯한데 이는 낙오자의 변에 불과하다.  동양음악보다 훨씬 과학적으로 발달한 서양음악의 작곡법이나 연주법을 모르고는 우리 작품도 온전히 작곡 연주할 수 없다.  그러므로 어디까지나 우리는 민족음악을 창조하는데 목적을 두고 우리 민속음악과 양악을 배워야 할 것이다.  아마도 우리나라 사람처럼 우리 민속음악에 대하여 무식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본시 그들이 양악을 배우는 것만을 목적으로 삼았던 것이기에 민속음악은 물론 민족음악에 대하여 관심조차 없다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한편 요즈음 앞으로는 우리 작품만을 연주하겠다고 선전하는 자가 있는 모양이나 이들 중에는 위에서 말한 낙오자들이 끼여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런 자들의 활동을 우리는 주시해야 할 것이다.  우리 작품을 연주한다는 것 그 자체에 의의가 있는 것이 아니라 외국작품보다 더 잘 연주해야만 의의가 있지 않을까?
 
우리나라 음악교육에 맹점(盲點)이 있다    
   우리나라에는 음악대학이 많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나라의 음악대학이라고 감히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것은 모두 외국의 음악대학의 출장소 구실을 하는 데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즉 독일, 이태리, 불란서 등 양악만을 가르치고 있고 우리 음악으로는 겨우 국악개론, 국악감상, 국악사 등을 형식적으로 가르칠 뿐이고 전공실기에 있어서는 우리 작품은 거의 도외시되어 있다.
   하기야 기악분야 전반에 걸쳐 우리 작품이 골고루 있는 것은 못되나 어디까지나 우리 작품을 연주하는데 필수과정으로서 언제든지 아니 언젠가는 우리 작품을 올바르게 연주할 수 있도록 가르쳐야 할 것이 아닌가?  그러므로 우리의, 우리에 의한, 우리를 위한 음악대학이 되려면 민속음악을 좀 더 적극적으로 가르쳐야 하며 이것을 배움으로써 음악학도의 머리 속에 민족음악 창조에 대한 올바른 정신이 뿌리 깊게 박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우리 음악을 못 배우면 외국에 가서 외국사람에게 배워야 할 것인가? 마땅히 우리나라의 모든 음악대학은 민속음악과 민족음악을 철저히 가르쳐야 할 것이다.


외국문화의 수입방법에 대하여    
   요즈음 학생들 중에는 일본글을 배우는 자가 많은 모양인데 그 목적이 일본책을 읽기 위함이라고 한다.  즉 영어, 독일어, 불어 등 원서 구하기도 힘이 들지만 그것을 읽는 것보다는 아무래도 일본책을 읽는 것이 쉽다는 뜻에서 일본글 공부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낀 때문이 아닌가 한다.  그런데 나는 이에 대하여 경고하고 싶다.  즉 일본 고유의 문화를 섭취하기 위해서는 일본책을 읽어야 할 것이나 서양문화를 섭취하기 위해서는 일본 사람들의 책에 의존하는 것은 금물이다.  왜냐하면 서양문화를 일본사람들이 자기들의 사고방식이나 취미에 맞게 섭취한 것을 우리가 다시 받아들인다면 우리는 언제까지나 일본사람에게 뒤떨어질 수밖에 없지 않은가?  서양문화는 영, 독, 불 등 원서를 통해서 직수입해야 할 것이다.
   따라서 설사 우리가 일본책을 구한다 하더라도 이것을 어디까지나 비판적으로 읽어 외국문화를 받아들이는데 있어서 그릇됨이 없도록 해야 할 것이다.  우리의 4.50대 중에서 「일본식 서양문화」나 「미국식 서구문화」를 배워 온 사람이 많지나 않을까? 따라서 이제부터라도 우리는 우리 민족음악을 창조하는 데 필요한 것만을 외국에서 직수입하여야 할 것을 잠시라도 잊어서는 안된다.
   끝으로 지방성을 무시해서는 세계성, 국제성을 띤 음악을 창조할 수 없다.  그러므로 소위 국악도나 양악도나 모두가 민속음악과 민족음악에 뜻을 두고 공부해야 할 것이며 국악도는 양악을, 또한 양악도는 국악을 연구함으로써 우리의 공동목표인 「민족적 아이디어와 현대적 스타일이 결부된」 민족음악 창조를 위하여 합심 진력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한국음악의 지방성과 국제성을 바로 인식해야만 우리 음악의 방향을 또한 바로잡을 수 있을 것이다.



 < 1967. 4. 10 연세춘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