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집 2 '독백과 대화'
 

음악과 민족성

나  운  영

서언(序言)
   음악은 만국 공통어라고 한다.
   만약에 참말로 음악이 만국 공통어라고 한다면 얼른 생각할 때 음악과 민족성이란 제목 자체가 이상한 느낌을 준다고 말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과연 음악이란 만국 공통어일까?  이제 만국 공통어란 말과 민족성이란 말을 놓고 생각해 볼 때,  공통어란 말에 대해 좀 더 깊이 검토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한다.  왜냐하면 이것은 어느 나라 사람이든지 알아 들을 수 있다는 뜻이지 어느 나라 음악이든지 모두 같다는 뜻은 결코 아니기 때문이다.  한 나라, 한 시대 사람의 작품이라 하더라도 모두 틀리는 법인데 어떻게 해서 다른 나라, 다른 시대 사람의 작품이 같을 수 있는가?  그러므로 음악과 민족성이란 언젠가는 한번 다루어져야 할 큰 문제임을 새삼 느끼게 된다.


민족성이란 무엇인가?
   민족성이란 그 민족이 가지고 있는 특유한 성격이라고 말할 수 있다.  가령 게르만 민족은 윤리적이고 라틴 민족은 이지적이라고 한다.  따라서 역사와 문화를 함께 가지고 있는 인간의 집단이 민족이라면 어떤 민족이든지 반드시 특유한 공통적인 성격이 있을 것이다.  우리는 민족성을 개조해야 한다는 말을 가끔 듣게 된다.  즉 너무 게으르다든가, 사대주의적이라든가, 단결 합심을 못한다든가, 청기와 장수 같다든가 하는 말들은 모두 우리의 민족성을 솔직하게 표현한 말이라고 할 수 있다.

음악에 있어서의 민족성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게르만 민족은 반음계적 선율을 즐기고,  라틴 민족은 전음계적 선율을 즐긴다든가,  혹은 게르만 민족은 대위법적 음악을 즐기고,  라틴 민족은 화성적 음악을 즐긴다든가 하는 말들은 음악에 있어서의 민족성을 말해 주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랴?  가령 동양 3국에 있어서 중국음악은 느리고 대륙적이며,  일본음악은 가볍고 남방적인 데 비하여 우리 음악은 변화가 많고 예술적이라고 할 때 우리나라가 문화에 있어서 하나의 교량적 구실을 하는 데 그치지 않고 중국의 아악, 당악을 받아들여 이것을 소화시키고 이에 민족적 공통성을 가미하여 마침내 동화시켜 백제의 정읍사(井邑詞), 고려조의 가곡(歌曲), 이조의 여민락(與民樂), 영산회상(靈山會上) 등 우리의 향악을 창조한 것은 더 말할 것도 없고,  특히 민중과 함께 자라온 12가사(歌詞), 가야금 산조, 시나위, 농악, 판소리, 민요, 잡가 등 우리의 속악을 창조한 것을 생각할 때 이러한 음악을 자세히 들어보면 들어볼수록 여기에서 우리 민족성을 직감할 수 있는 것이다.

국악의 정의
   국악에 있어서의 민족성을 논하기 전에 먼저 국악에 대한 정의를 내려 둘 필요가 있다.
   (1) 아악(雅樂)―중국 주(周)시대와 그 이전의 음악으로서 우리나라에는 고려 예종 때에 전해 들어 왔다.(매년 성균관에서 연주되는 문묘악(文廟樂) 등).
         당악(唐樂)―당(唐),송(宋) 이후의 음악으로서 중국의 속악의 통칭이다.(보허자(步虛子), 낙양춘(洛陽春) 등).
         향악(鄕樂)―궁중 또는 상류사회에서 연주된 우리나라 고유의 음악이다.(백제의 정읍사(井邑詞),고려조의 가곡(歌曲), 이조의 여민락(與民樂), 영산회상(靈山會上) 등).
         속악(俗樂)―민중과 함께 자라온 우리나라 고유의 음악이다.(가사(歌詞), 시조(時調),가야금  산조, 시나위, 농악, 판소리, 민요, 잡가 등).
  (2) 아악(雅樂)―협의의 아악과 당악을 합친 광의의 아악.
       향악(鄕樂)―협의의 향악과 속악을 합친 광의의 향악.
  (3) 정악(正樂)―아악, 당악, 향악을 합친 것.
       속악(俗樂)

   위에 있어서 (2)는 중국음악과 우리나라 음악으로 나눈 것이고 , (3)은 예술적인 음악과 통속적인 음악으로 나눈 것이다.
   그런데 엄격하게 따진다면 아악과 당악은 국악이라 말할 수 없고 향악은 우리나라 음악이긴 하나 아악, 당악이 동화된 것이므로 결국 속악만이 진정한 의미에 있어서의 우리나라 음악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은 나의 견해는 절대로 배외사상(排外思想)에서 나온 것이 아니고 민족적 요소의 비중에 근거를 두고 하는 말이다.
   다만 아무리 아악과 당악이 외래음악이라 하더라도 이것이 그대로 우리나라에서 보존되고 있으므로 이것을 범국악(汎國樂)으로서 다룬다는 것이 결코 배외사상(拜外思想)이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 아닌가?  따라서 아악, 당악, 향악은 보존 계승하는 데 뜻이 있고 속악은 그 대중화에 큰 뜻이 있음은 물론이고 한 걸음 더 나아가 국악 자체의 현대화 및 민족음악 창조를 위해서는 국악에 있어서의 민족성의 발굴에 대해서 논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국악에 있어서의 민족성의 발굴에 대하여
   나는 국악에 있어서의 민족성을 여러 가지 점에서 논하려 한다.
   첫째로 「악기 조율(調律)」에서 찾아낼 수 있다.  즉 악학궤범에 의하면 악성 박연 선생이 세종대왕의 명을 받들어 악기를 정비하되 중국 것과 달리 우리 민족 감정에 맞도록 조율을 바꿨다는 기록이 있다.  즉 이때에 바꾼 것이 오늘날까지 전해 내려오고 있는데 그 음의 절대고도(絶對高度)에 대해서는 박흥수 교수에 의해 과학적으로 증명된 바 있거니와 이 조율은 중국 것이나 일본 것과 다른 우리나라 독특한 것이어서 이 조율에 따라 제작된 우리 악기로 연주되는 모든 음악에서 민족성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것은 당연한 노릇이다.
   둘째로 「장고 장단」에서 찾아낼 수 있다. 가령 가야금 산조를 가지고 생각해 볼 때 이 곡은 진양조, 중모리, 엇모리, 자진모리, 휘모리, 단모리 등 매우 느린 속도에서 시작하여 매우 빠른 속도에 이르는 장단이 있는데,  이것은 중국에도 일본에도 세계 어느 나라에도 없는 우리나라 고유의 리듬으로서 산조 뿐만 아니라 판소리, 시나위 등도 모두 이 장단에 의해서 연주되고 있다.  따라서 이 장단으로 연주되는 모든 음악에서 민족성이 뚜렷하게 드러나는 것이다.  다만 우리는 이 장단을 멜로디와 떼어놓고 생각해서는 안 될 것이다.  즉 어떤 멜로디에 어떤 장단이 결합되었는가를 연구해야만 멜로디에 잘 어울리는 장단을 찾아볼 수 있다.
   셋째로 우리의 「고전무용」에서 찾아낼 수 있다.  즉 춤과 음악은 떼어 놓고 생각할 수 없다.  우리의 춤은 우리 음악의 영향을 받은 것이기 때문이다.  중국춤과 일본춤에 비하여 우리 춤이 독특하다는 것은 세상이 다 아는 일이 아닌가?  특히 우리 춤의 멋은 바로 우리 음악에서 온 것임을 알아야 한다.  춘향전, 처용무, 가면무, 검무, 승무 등등에 있어서의 음악을 깊이 연구한다면 여기에서 또한 민족성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넷째로 「시나위」에서 찾아낼 수 있다.  우리 음악에는 화성이 없다고 말할 수 있다.  물론 합주에 있어서 완전8도, 완전5도, 완전4도 같은 것이 간혹 나타나기는 하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우연적인 것이요 이런 데서 본질적인 화성이 있다고 말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러나 「시나위」를 들어 보면 서양의 Combo 또는 Free Jazz 모양으로 음악적으로 통하는 연주자들이 즉흥연주를 할 때에 발생되는 화성이 있는데 매우 흥미가 있어 크게 주목할 만하다.  나는 이것을 Linear Counterpoint(선적(線的) 대위법)이라고 부르고 싶을 정도로 이것을 중요시하고 있으므로 이것을 좀 더 깊이 연구하면 이것을 통해서 한국적 화성이 발견될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하기야 화성 문제에 대해서 일부 국악인들은 화성이 없는 것 자체가 국악의 특색이라고 말하고 있으나 이것은 궤변에 지나지 않는다.
   어느 나라 음악이든지 옛날 음악에는 화성이 없다.  그러므로 화성이 없다는 것이 특징이 될 수는 없는 일이고 오히려 이것이야말로 원시적 음악임을 드러내는 것밖에는 안 된다.  또한 일부 양악인은 서양 고전화성을 그대로 사용하면 된다고 하나 이것은 더욱 안될 말이다.
   동양적 내지 한국적 멜로디에 소위 3화음을 붙이면 마치 「갓 쓰고 양복 입은 격」이 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국적인 화성을 발견해서 사용하는 것이 이상적이나 이것은 각양 각색으로 모색이 진행되고 있으므로 이 화성이 발견될 때까지는 잠정적으로나마 서양 근대.현대 화성을 응용 활용할 수도 있는 일이다.  그렇다고 해서 나는 3화음을 절대로 써서는 안 된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즉 3도화성과 4도 또는 5도화성을 혼용한다든가 혹은 단순 소박한 멜로디에 과중한 화성적 처리를 하는 것보다는 대위법적으로 처리하는 것이 더욱 효과적일 때도 있다는 것을 말해 두고 싶다.
   이상으로 나는 「악기 조율」, 「장고 장단」, 「고전 무용」,「시나위」 등을 예를 들어 보았으나 이 밖에도 연구에 연구를 거듭하면 더 많은 것을 발굴해 낼 수 있을 줄로 생각된다.


민족음악의 창조를 위하여
   민족음악을 창조함에 있어서 세 가지 방안이 있을 것이다.
   첫째는 국악기만으로 작곡하는 경우이다.  즉 국악기만을 사용하여 작곡하되 악기 조율도 재래식을 따르기로 하는 것이니 전조(轉調)가 불가능하므로 단조로움을 면할 수 없을 것이고 화성 자체도 평균율이 아니니 문제가 될 것이다. 그런데 요즈음 국악인 중에서 신국악(新國樂)이라 하여 작곡한 것을 들어 보면 화성을 붙였는데 그 화성이 3화음적이어서 괴상하게 들리는 것이 있는가 하면 어떤 것은 화성이 없어 재래의 국악의 모조품 내지 유사품으로 그친 느낌이 있는 것도 있으니 이런 식으로 작곡한다면 아무 의의가 없지 않은가?
   둘째로 양악기에 국악기를 섞어서 작곡하는 경우이다.  즉 서양 오케스트라에 국악기를 섞어서 연주하도록 작곡하는 것을 말하는데 나 자신도 <교향곡 제1번>에서 새납(태평소, 날라리)과 장구를 사용해 보았고,  <교향곡 제3번>에서는 장구만을 사용해 보기도 했으나 음질이 서양 악기와 잘 조화되지 못하기 때문에 매우 부자연스런 느낌을 가졌다.  그러므로 이러한 방식은 자칫하면 韓.洋 합주와 같은 느낌을 주는 데 그칠 뿐 별로 효과가 없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셋째로 서양 악기만으로 작곡하는 경우이다.  즉 서양 악기만을 사용하되 이것으로 한국적 정서를 나타낼 수 있으면 되는 것이 아닌가?  나 자신도 <교향곡 제4번>부터 <교향곡 제8번>까지는 일체 국악기를 사용하지 않았으나 양악기만으로 한국적인 색채를 나타내기 위하여 노력하였다.  예를 들어 현악기에 있어서 Pizzicato(탄주(彈奏))로 가야금이나 거문고의 멋을 흉내내 보았고 타악기를 여러 개 사용함으로써 장구의 효과를 나타내 보기도 했고, 목관악기에 있어서 처음에는 비브라토를 붙이지 않고 길게 뽑았다가 서서히 비브라토를 붙여서 피리의 효과를 나타내 보기도 했다.
   이렇게 서양 악기만으로 작곡했을 때 이것이야말로 세계성을 띤 우리 민족음악으로서의 자격을 갖게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 아닌가?  나는 이상 세가지 방안 가운데서 셋째가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국악기를 사용하면 국제교류에 있어서 큰 지장을 주기 때문이다.

결론
   불란서 사람은 베에토벤이나 바하를 제대로 연주하지 못하고 또한 독일 사람은 드뷔시를 제대로 연주하지 못한다. 다시 말해서 독일 Lied는 세계의 어느 나라 사람보다도 독일 사람이 불러야만 제 맛이 난다.  세기적인 피아니스트 A.루빈스타인의 연주를 듣고 느낀 것은 그가 연주한 베에토벤이나 드뷔시보다도 쇼팽이 가장 좋았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말일까?  이것이야말로 음악과 민족성과 직접 관련이 있는 사실이라 아니할 수 없다.  마찬가지로 우리 작품은 우리나라 사람이 연주해야만 제 맛이 날 수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그러므로 무엇보다도 우리 작곡가는 한국적인 동시에 현대적인 작품을 써야 할 것이며 우리 연주가는 우리 작품을 연주함으로써 음악을 통한 국제 문화교류를 위하여 힘써야 할 것이다.  국제 문화교류 시대에 있어서 민족성이니 민족음악이니 하는 것 자체가  전(前)시대적인 사고라고 말하는 외국인이 있을지 모르나 그들은 이미 자기네들의 민족음악을 창조했기 때문에 그러한 말을 할 수 있을 것이므로 우리와는 처지가 다르다.  우리는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먼저 음악에 있어서의 우리의 민족성을 발굴함으로써 민족음악을 창조해야만 할 것이 아닌가?
   우리나라에서도 바르토크, 코다이, 블로호, 시벨리우스, 마르티누와 같은 신민족주의 작곡가가 하루 속히 배출되기를 바란다.


< 1969. 4. 음악연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