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집 2 '독백과 대화'
 

 문기악이지기정(聞其樂而知其政)

나  운  영

   그 나라의 음악을 들으면 그 나라의 정치를 알 수 있다.  명랑하고 씩씩한 노래가 불려질 때 나라의 정치가 올바로 되어가는 것을 짐작할 수 있으며, 어둡고 슬픈 노래가 불려질 때 나라의 정치가 점점 썩어 들어가는 것을 직감할 수 있다. 이렇게 생각하면 노래야말로 한국의 '얼'을 되찾는데 있어서 다른 어떤 예술보다도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나는 우리나라의 가요를 4가지로 분류해서 논하련다.
   첫째는 예술가곡으로서 1920년에 홍난파선생에 의해 <봉선화>가 작곡된 이래 <사우(思友)>, <산들바람>, <바우 고개>, <가고파>, <한 송이 흰 백합화>, <달밤> 등등이 불려지고 있는데 이것은 순수(純粹)음악인에 의해 작곡되었으며,
   둘째는 대중가요로 1930년을 전후하여 <황성 옛터>, <타향 살이>가 작곡된 이래 <목포의 눈물>, <신라의 달밤>, <이별의 부산 정거장>, <노란샤스의 사나이>, <동백 아가씨> 등등이 유행가란 이름으로 불려지고 있는데 이것은 경(輕)음악인에 의해 작곡되었으며,
   셋째는 국민가요로서 6.25사변 직전에 <애국의 노래>, <대한의 노래>가 작곡된 이래 <승리의 노래>, <낙동강>, <통일 행진곡>, <재건의 노래> 등등이 불려지고 있는데 이것은 주로 순수음악인에 의해 작곡되었으며,
   넷째는 「신 민요」로서 대중가요와 마찬가지로 1930년을 전후하여 <노들 강변>이 작곡된 이래 <대한팔경>, <봄노래>, <봄이 왔네>, <앞 강물 흘러흘러>, <원포귀범(遠浦歸帆)> 등등이 불려지고 있는데 이것은 역시 경음악인에 의해 작곡되었다.

    이제 이 4종류의 가요에 대해서 간단한 비판을 가한다면 첫째로 예술가곡은 대체로 서양조(西洋調)로 작곡되어 있기 때문에 학교 교육을 받은 교양인들에게는 환영을 받을 수 있으나 일반대중에게는 그다지 널리 애창되지 못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곡이 계속 생산되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며,  둘째로 대중가요는 왜색조(倭色調)로 작곡되어 있기 때문에 일본 유행가에 향수를 느끼고 있는 일반대중의 절대적 환영을 받고 있음은 물론이고 요즈음은 교양인(?)들에게까지도 애창되고 있는 한편 곡이 대량 생산되므로 아무리 질적(質的)으로 저속함을 면할 수 없다 하더라도 양적(量的)으로는 일반대중의 욕구를 충족시키고도 오히려 남음이 있는 형편이며, 셋째로 국민가요는 대체로 「관(官)」에 의해 생산 보급되고 있으나 주고 서양 창가조(唱歌調)로 되어 있어 딱딱하고 매력이 없으므로 건전하기는 하나 타의(他意)에 의해 불려지고 있는 형편이며, 넷째로 신(新)민요는 예술가곡을 즐기는 자에게나 대중가요, 국민가요를 즐기는 자에게나 모두 호감을 사고 있지만 너무도 그 수가 적어 별로 논의의 대상조차 되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그런데 여기서 내가 문제 삼고자 하는 것은 대중가요이다. 왜냐하면 오늘날의 대중가요를 분석해 보면 그 8할이 왜색(倭色)이기 때문이다.
    즉 우리나라에서 작곡되는 대중가요 중 그 대부분이 일본 고유음계(音階)인 미야꼬부시(都節)로 작곡되고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좀 더 자세히 말한다면 이 음계을 사용하면―가령 서양 사람이 작곡한다 하더라도 일본 냄새가 짙게 풍기기 마련인 데다가 이 음계 자체가 퇴폐적, 염세적, 망국적 감정을 강렬하게 불러 일으키니 우리가 이 음계로 작곡해서야 될 말인가? 다시 말해서 미야꼬부시로 작곡된 곡은 잠깐 듣기만 해도 일본의 샤미셍(三味線)이나 샤꾸하찌(尺八)를 연상케 하는데 해방 22년이 된 오늘날 이런 노래를 일제 때보다도 더 자주 들을 수 있으니 참으로 일제시대로 되돌아간 느낌이 든다.

    하기야 대중가요에 있어서 그 왜색을 논할 때 비단 미야꼬부시로 된 멜로디만이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 창법(唱法), 편곡(編曲), 무드 등도 크게 문제를 삼아야 한다.
    특히 창법에 있어서 대표적인 일본가수의 창법을 그대로 모방하여 비음악적인 바이브레이션을 붙이거나 유치한 장식음을 삽입하여 부름으로써―가사에 대해 주위를 하지 않고 들었을 때에는 분명히 일본 노래를 일본 가수가 부르는 것으로 착각을 하게 되니 이것은 민족적 수치라 아니할 수 없다.
    따라서 우리는 왜색조를 떠나 좀 더 명랑하고 건전한 노래를 만들어 불러야겠다. 이런 점에서 나는 국민가요보다는 신민요가 더 적당하다고 생각한다. 즉 예술가곡처럼 고상하지는 못하더라도 우리의 국악의 '멋'과 '맛'이 풍기는 쉬운 노래를 만들어 부르자는 것이다.

    요즈음 부여의 박물관이 일본의 도리이(鳥居)식으로 되었다 하여 물의의 초점이 되고 있으나 음악에 있어서는 이미 자유당 시대부터 줄곧 왜색가요가 범람하기 시작하여 <동백 아가씨>에서 그 극(極)을 이루었고 더욱이 5.16후에는 TV나 라디오를 통하여 신작 왜색가요는 물론 흘러간 노래, 추억의 노래가 방송됨으로써 왜색가요의 일대 붐을 일으키고 말았으니 그 공로에 대한 표창은 누구에게서 받아야 할 것일까?
    해방 22년을 맞이하는 오늘날 특히 한일국교가 정상화된 이 마당에서 우리는 마땅히 우리의 민족혼을 되찾아야겠다.
「일본 노래는 물론 왜색이 짙은 대중가요는 듣지도 말자!」
「왜색가요를 방송으로만 금지시킬 것이 아니라 그러한 레코드를 만들지 못하도록 하자!」
「민족의식을 흐리게 하는 왜색가요, 우리를 염세,타락,망국의 구렁텅이로 떨어뜨리는 왜색가요, 아편(阿片)과도 같은 왜색가요를 이 땅에서 몰아내자!」

    왜색가요가 이 이상 더 일반대중 속에―아니 학교, 가정까지 깊이 침투된다면 민족과 조국의 장래가 심히 우려된다. 정부의 올바른 음악정책 수립이 시급하다.

< 1967. 9.8. 매일경제신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