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집 2 '독백과 대화'
 

책 난 봉

나  운  영

   지금으로부터 27년 전 나는 푸른 뜻을 품고 일본 유학의 길을 떠났었다. 그때는 바로 우리 손기정 선수가 베를린 올림픽 대회에서 유니폼에 달린 일장기(日章旗)를 손으로 가린 채 마라톤에 일착으로 골인했던 직후였다. 나는 이에 너무나 큰 자극을 받았던 것이다. 즉  비록 나라는 망했으나 민족은 살아 있다. 따라서 우리도 저 유태인처럼 개개인이 훌륭한 사람이 되어 우리 민족의 이름을 세계 만방에 떨칠 수 있어야 되겠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던 것이다.
   나는 작곡을 전공하였다. 그러나 나는 음악학교 강의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어 여러 선생님에게 개인지도를 받았다. 그러던 중 한 분에게서 충격적인 충고를 받았다. 즉 「어째서 서양음악을 모방하려만 드느냐?  너희의 음악, 너희 나라의 민족음악을 만들어 내라」는 말씀이었다. 나는 이 말에서 하나의 계시를 받았다. 즉 이때부터 세계성을 띤 한국적 현대음악을 창조해야겠다는 굳은 결심을 가지게 된 것이다. 민족성과 시대성을 떠난 음악은 진정한 의미에서 예술이 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 나는 국악에 대해서 남달리 큰 관심을 가지는 한편, 서양 현대음악을 힘써 듣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리고 요즈음에도 구하기 힘든 베베른 작곡의 <현악 3중주곡>, 스트라빈스키 작곡의 <봄의 제전>, <불새>, <페트루슈카>, <바이올린 협주곡> 등등 희귀한 악보를 열심히 사 모았다. 그러기 위해서 헌 책방을 샅샅이 찾아다니던 것이 지금도 습관이 돼 버렸다. 아마도 나도 남들보다는 비교적 희귀한 책과 악보를 많이 가지고 있는 듯한데 이 중에는 20대 전후에 모았던 것이 더러 있으며 이렇게 해서 모은 책과 악보는 내 평생에 둘도 없는 벗이라기보다는 내가 가장 가깝게 언제든지 모실 수 있는 스승이 되기도 할 뿐만 아니라 대를 물려 줄 가보라 할 수 있다.
「남아입지출향관(男兒立志出鄕關)   학야불성사불환(學若不成死不還)」
    이 시는 내가 중앙고보 시절에 배운 것으로서 일본 유학 시절에는 물론 지금까지도 잊혀지지 않는다. 서울 태생인 나는 처음에 이 시를 배울 때에는 별로 실감이 나지 않았다. 그러나 타향 아닌 타국에 가서 갖은 고생과 설움을 맛볼 때마다 이 시가 머리에 떠오르곤 했다. 특히 나라 없는 백성으로서 일본 사람들에게 멸시와 천대를 받을 때, 나라의 배경이 없어 국제적 진출의 길이 막혀 고민할 때 이 시가 생각나 다시 한번 분발할 수 있는 직접적인 계기를 만들어 주었던 것이다. 아직도 내가 이 시를 기억하고 있는 것을 보면 두(頭)는 나빠도 뇌(腦)는 과히 나쁘지 않은 모양이다. 나는 1942년 9월에 음악학교를 졸업하고 계속해서 연구과에 머물러 있던 중 소위 학도병으로 끌려 가게 될 운명을 예측하고 책과 악보를 꾸려 가지고 고국으로 돌아와 일본에서 공부했던 것을 다시 정리하는 한편 구미 각국에서 출판되는 신간서적을 부지런히 사 모아 연구하여 마침내 작곡학의 체계를 세워 이것을 가지고 작곡과 강의와 저술을 계속하고 있으니 이렇게 생각하면 마라톤 왕 손기정 선수의 세계 제패와 책 사 모으기와 한시(漢詩)가 20세 전후의 나를 올바른 길로 인도해 준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줄 안다.

< 1967. 11. 3. 高大신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