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집 2 '독백과 대화'
 

내가 좋아하는 음악

나  운  영

   내가 추천하고 싶은 작곡가를 한 사람만 고르라면 나는 서슴지 않고 스트라빈스키라고 말한다.  그는 <불새>,<페트루슈카>,<봄의 제전>,<병사의 이야기>,<화투놀이> 등 수 많은 발레음악을 작곡하였는데 그 중에서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곡은 역시 발레음악으로 작곡된 <결혼>이란 작품이다.
   이제 내가 이 곡을 좋아하게 된 동기를 말한다면―일제 말엽인 1944년 나는 우연히  「눈과 귀에 의한 콜롬비아 음악사 제5부(현대음악편)」의 레코드와 해설책을 구했는데 이중에는 후기 낭만파 음악의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인상파 음악의 드뷔시, 무조음악의 쉔베르그, 다조(多調)음악의 미요, 신고전주의 음악의 힌데미트, 악기법 상에 있어서의 극단주의음악의 바레스, 미분음음악의 하바 등과 함께 스트라빈스키의 <결혼>의 한 부분이 들어 있었다.

    나는 이 곡을 들었을 때 단번에 매혹되고 말았다. 러시아 민요조의 멜로디를 현대화한 이 작품에서 나는 하나의 계시를 받았다. 즉 나도 우리나라의 민요, 창극, 농악, 등속을 현대화하여 한국적인 현대음악을 창조해야겠다는―하나의 뚜렷한 목표를 세우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S.P. 10인치 한 면에 들어 있는 이것만을 들어서는 이 곡의 진가를 알 도리가 없기 때문에 그때부터 이 곡의 전곡을 들어 보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다.
    그러던 중 8.15 해방 후 찾아간 곳이 지금도 유명한 명곡감상실「르네상스」였다. 나는 여기서 바르토크의 <현악 4중주곡  제1번>, 베르그의 <서정 소곡>과 함께 스트라빈스키의 <결혼> 전곡을 처음으로 들을 수 있었다. 그때의 감격은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세월이 흘러 6.25사변으로 말미암아 부산으로 피난을 간 뒤에도 이 곡이 듣고 싶어 한번은 대구까지 가서 역시 「르네상스」에서 이 곡을 미칠 듯이 듣고 돌아온 일이 있다. 다시 세월이 흐르고 흘러 서울 수복 후 나는 백조사의 주인 문영식 옹에게 이 곡의 레코드를 구해 달라고 애원했던 것이다. 그러던 중 약 10년이 지난 뒤에 기적적으로 이 레코드를 구하게 되었으니 나의 소원을 풀어 주신 분은 물론 文옹이었던 것이다.
   내가 아끼는 이 레코드는 물론 S.P. 이지만 L.P.로는 K.Y.
(주:기독교방송국)와 음악감상실 「아폴로」에만 있을 따름이니 매우 귀한 판임엔 틀림없다. 나는 K.Y.에서 녹음해 온 테이프를 가끔 듣기도 하고, 기회만 있으면 「아폴로」에 가서 이 곡의 스코어를 더듬어 가며 열심히 듣고 혼자서 감탄하며 돌아오곤 한다. 나는 남보다 비교적 희귀한 책과 레코드를 부지런히 사 모으고 있는 편이지만 이 <결혼>의 레코드와 스코어를 가지고 있는 것을 항상 자랑스럽게 생각하며 이 곡을 들을 때마다 옛 생각을 더듬게 된다.

< 1967. 9. 女像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