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집 2 '독백과 대화'
 

착하고 게으른 종

나  운  영

   「여름방학은 나에게 있어서는 해산(?)을 하는 기간이다. 몇 해 전 나는 <교향곡 제1번>을 불과 15일 동안에 끝마친 일이 있다. 그때에 나는 캠핑도 못가고 방에 들어앉아 거의 해수욕복 차림을 하고 작곡에 전심했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온 집안에 엄중한 음향관제를 실시해 놓고 나만은 야삼경에도 피아노를 두드리기가 일쑤였고 맥스웰 커피를 장복하며 밤을 새우던 일이 지금도 생각난다.」―수필 자화상 중에서.
   내가 <교향곡 제1번>을 쓴 것이 1958년이니 꼭 10년 전의 일이다. 학교에 매여 있는 몸이라 예나 지금이나 나는 방학 전에 미리미리 구상을 해 두고 방학이 되면 붓을 들게 마련이다.
   사람들은 여름방학이 되면 산으로 바다로 피서를 떠나는 모양이나 나는 그런 팔자가 못되어 집구석에서 땀을 흘리며 온갖 진통을 겪곤 하는 것이다.
   성경에 「착하고 게으른 종」이란 말이 나오는데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것은 이 시대에 맞지 않는 말인 것만 같다.
  그렇다면 과연 나는 어디에 속하는 것일까?  암만해도 나는 「착하고  게으른 종」인 것만 같다. 왜냐하면 남들은 방학 전에 미리미리 일해 놓고 방학이  되기가 무섭게 바캉스를 즐기는데 나는 밀리고 또 밀린 일들을 방학 때에 해 치워야만 하니까 말이다.
  그러나 앞으로는 「착하고 게으른 종」이란 말을 다시 듣지 않도록 올해에도 이 즐거운 고행을 겪어야만 하니 자업자득이라 아니할 수 없다.

   내가 지금 잉태하고 있는 「네 쌍둥이」는 <교향곡 제9번>, <교향곡 제10번>과 <피아노 연주곡 제3번>,<바이올린 협주곡 제2번>이다. 특히 <교향곡 제9번>은 산조(散調)풍으로 작곡하는 중에 있고, <교향곡 제10번>은 나의 창작 제2기의 총결산을 의미하는 것이므로 말하자면 필생의 대작(?)이 되어야만 할 것 같다.
   이 밖에도 관현악법의 탈고(脫稿)를 서둘러야만 하니 잘못하다가는 네 쌍둥이가 유산이라도 될까 크게 염려된다. 아! 언제쯤이나 「착하고 부지런한 종」이란 말을 들을 수 있을 것인가!.

 < 1968. 7. 15. 연세춘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