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집 2 '독백과 대화'
 

음악으로 조국을 빛낸 순회대사
 ―안익태선생의 급서(急逝)에 부쳐―

나  운  영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음악가 안익태 선생이 17일 이역만리 타향에서 서거하였다는 비보에 접했을 때 나는 마치 이승만 박사의 부음을 들었을 때에 못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 그처럼 정력적이고 투지만만한 분이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는 것은 믿기 어려운 일이었기 때문이다. 안익태 선생하면 한국, 스페인을 비롯하여 독일, 미국, 영국, 남미, 일본 등에서도 모를 사람이 별로 없을 정도로 널리 알려진 세계적 존재이다.
   그는 지휘봉 하나로 극동의 불행했던 코리아를 세계 구석구석까지 알리며 소개한 순회대사였다.

    그는 1906년 1월 10일 평양에서 출생, 숭실고보를 거쳐 일본 동경고등음악학원 첼로과를 졸업하고 첼로 독주회를 가진 다음 푸른 뜻을  품고 미국으로 건너갔다. 신시내티 음악학교를 거쳐 다시 유럽으로 건너가 부다페스트 음악원에서 작곡을 연구하는 한편 독일의 악성 리하르트.슈트라우스에게 12년간이나 사사하여 마침내 슈트라우스 음악제때 은사를 도와 부지휘자로 일을 보았다. 그 뒤부터 악계에 데뷔하기 시작하여 스페인의 마욜카 교향악단 상임지휘자로 있으면서 북미, 남미  여러나라의 교향악단은 물론 비엔나, 베를린, 파리, 로마, 런던, 부다페스트, 쮜리히, 부에노스아이레스, 마드리드, 동경 등의 교향악단도 지휘했으며 특히 코르토, 티보와 같은 거장과도 협연한 바 있다.
해외서만 활동
   이와 같이 눈부신 연주활동을 하는 한편 작곡에도 심혈을 기울여 <애국가>를 비롯하여 교향적 환상곡 <코리아>, 교향시곡 <강천성악(降天聲樂)>, <논개>(哀―강산의 義技 논개) 등을 작곡, 연주했으며 대작 교향시곡(제1악장 비원의 경주,제2악장 극치의 석굴암,제3악장 비경의 해인사,제4악장 비창)의 작곡을 구상하던 중 그 완성을 보지 못한 채 작년 오늘 불귀의 몸이 되어 버렸으니 더욱 애석하다.
   선생은 1930년에 고국을 떠난 후 주로 외국에서만 지휘, 작곡활동을 해 왔던 탓으로 국내에서는 애국가의 작곡자라는 것밖에는 별로 알려지지 않았으나 1957년에 처음으로 금의환국하여 애국가와 교향곡 <코리아>를 지휘함으로써 악계에 일대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그리하여 문화포상을 받았으며 그 후 후진성을 면치 못하고 있는 조국의 음악계의 발전을 위하여 매년 국제음악제를 개최할 것을 결심하여 마침내 1962년부터 그의 주동적 역할로 국제음악제를 개최하여 왔으나 작년의 제4회 국제음악제는 서울시 당국의 협조를 얻지 못해 중지의 고배를 마시고 쓸쓸히 다시 조국을 떠나 연주여행을 다니던 중 작년 7월 런던에서 뉴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지휘를 마지막으로 발병하여 간경화증으로 세상을 떠났다. 혹시나 그의 죽음이 제4회 국제음악제를 못하게 된 데 대한 심적 타격에서 온 것이 아닐까 생각되어 더욱 우리들의 마음을 아프게 해 준다.

특이한 성격 지녀
   그의 유족으로는 스페인人인 타라베라 여사(35세)와 3녀(16, 13, 11세)가 있으며 그렇게도 다망한 국제적인 음악생활 속에서도 매우 행복스러운 가정을 이루었다고 한다.
   그는 국내사정에 어두웠던 탓과 개성적인 예술가가 지니기 쉬운 특이한 성격 때문에 국내 음악인들의 협조를 그리 많이 얻지 못하여 많은 고민을 겪어 오면서도 그의 굳은 결심을 굽히지 않고 제2, 3회 국제음악제를 단독으로 강행했으니 이러한 일은 그가 아니고는 도저히 감당해 낼 수도 없는 일이라 아니할 수 없다.
   이렇게 생각해 볼 때 그를 아껴 오던 후학(後學)인 나로서는 국제음악제 때에 좀 더 적극적으로 선생을 도와 드리지 못했던 것이 후회되며 뒤늦게나마 사죄를 바라고 싶은 마음 간절하다.

   끝으로 제4회 국제음악제가 중지됨에 따라 여가를 이용하여 과거 40년간 항상 꿈꾸고 있던 경주 석굴암, 해인사, 진주 등을 보고 깊은 감명을 받아 필생의 대작인 교향시곡(全4악장)을 구상하며 마지막으로 그가 남긴 글을 소개하고자 한다.
 「우리의 강산과 대자연은 모두가 화려하고 아름답게 합리적으로 꾸며진―금수강산입니다. 그러나 그 속에서 사는 우리 민족은 모순과 불합리 속에서 허덕입니다.
  예술과 아름다운 전설의 나라, 정서(情緖)의 나라가 예술을 잃고 전설을 망각하고 법(法)과 지능(知能) 속에서 진실을 속이며 웃음과 즐거움을 잃고 사는 가련한 민족입니다.
   그러나 우리 민족이 단결하여 힘을 합한 곳에 우리들의 희망과 빛나는 건설의 역사가 멀지 않다는 것을 나는 믿고 우리 금수강산을 세계에 자랑하여 서울이 동양의 아테네가 될 줄로 믿습니다.」

 < 1965. 9. 21. 國際新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