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집 2 '독백과 대화'
 

가다(歌多), 비다(碑多), 교다(校多)

나 운  영

   내가 제주도 여행을 계획한 것은 10년 전의 일이었다. 꿈에도 그리던 이곳에 와 보니 집과 밭을 둘러쌓은 돌담, 새(띠)줄로 그물과 같이 얽어 논 지붕, 구덕(바구니)에 허벅을 넣고 등에 져 나르는 여인, 바다에서 중 노동을 하는 인어(人魚) 아닌 잠수(潛嫂) 등등 모두가 신기하기만 하다. 본래 내가 일행 두 사람과 제주도에 간 것은 민요녹음수집이 목적이긴 했지만 제주시, 성산포, 서귀포를 관광할 수 있었던 것이 평생을 두고 잊혀지지 않을 것만 같다.
    아직도 제주도에 가 보지 못한 사람들은 「제주도에서도 축구를 할 수 있느냐?」고 묻기 쉬우나 너무도 넓은 섬이기에 육지와 같은 느낌마저 준다.
    제주시는 서울 보통시(?)와 같은 느낌을 주는 그러나 깨끗한 도시이다. 여기에 관덕정(觀德亭)이 있고, 삼성혈(三姓穴)이 있고, 용두암(龍頭岩)이 있다. 호남(湖南)에서 으뜸간다고 하는 관덕정을 보니 노산의 시조(홍난파 작곡)가 머리에 떠오른다. 그러나 관덕정 자체보다도 그 양 옆에 지켜 서 있는 돌하르방의 큰 눈이 더 인상적이다.
    삼성혈은 말로만 듣는 것이 더 나을 듯 너무도 초라하다. 삼성혈 옆에 현대식 관광호텔이 있고 그 앞에 교육청이 있는데 전국적으로 유일의 여성 교육감이신 최정숙(崔貞淑)여사를 뵙고 서울 다음으로 학교가 많은 곳이 제주도란 말씀을 들을 때 확실히 제주도는 교다(校多)의 섬이라는 것을 느꼈다.
    교육청 옆에는 민속박물관이 있는데 이 방면의 선각자요 선구자인 태성기(泰聖麒)님이 사재를 털어 세운 것으로서 대단히 진귀한 문화재가 보존되어 있어 많은 관광객의 관심을 끌게 한다.
    나는 여기서 가죽 모자, 가죽 옷, 가죽 신, 아기구덕 등이 몽고의 풍습에서 온 것임을 짐작할 수 있었다.

    다음으로 용두암―실로 괴암(怪岩)이다. 금새 하늘로 올라갈 것만 같은 웅좌(雄姿)와 그 옆으로 멀리 보이는 제주대학 건물을 비교해 볼 때 신이 만드신 예술과 사람이 만든 예술이 얼마나 다른가를 새삼 깨달았다.
  버스를 타고 동쪽으로 돌아 함덕(咸德)을 지나 성산포까지 가는 도중에 우리는 길가나 밭 가운데에 서 있는 수없이 많은 비석을 볼 수 있었다. 무슨 기념비, 충혼비, 학생○○○지묘 등등을 볼 때 확실히 제주도는 비다(碑多)의 섬이라는 것을 또한 느꼈다. 드디어 성산포에 도착하니 먼저 성산 중, 수산 고등학교가 눈에 띈다.
  그 옆으로 멀리 일출봉이라는 일대 기암(奇岩)이 보인다. 창검(槍劍)처럼 보이는 돌로 성을 이루고 있어 99봉이라고도 불리는 석산(石山)에 기어 오르면 산정에 수만평이나 되는 익지(益地)가 있다.
  이것이야말로 섬이란 느낌을 준다. 이곳에서  영주 10경(景) 중  제1경으로 손꼽히는―성산일출을 보면 태양신을 섬기고 싶은 심정이 절로 날 것만 같다.
  우리 일행은 온평리(溫坪里)의 김사화(金四花)님 외 수명과 오조리(吾照里)의 부두환(夫斗煥)님을 찾아 제주도 민요를 녹음 수집하고 다시 버스를 타고 성산면을 떠나 표선(表善)면 성읍리로 가니 고목만 우거져 있고 고색이 짙은 집들이 보인다.
  성읍은 옛날 군청 소재지였던 관계로 육지에서 건너와 토착한 사람들이 많다고 하거니와 이곳은 특히 민요가 많기로 유명한 곳으로서 박영옥 교장님의 주선으로 이강일, 김창언, 이경순, 송금석, 현재선님을 한자리에 모셔 놓고 민요를 녹음했는데 제주도 고유의 민요 이외에도 몽고나 일본음악의 영향을 받은 노래가 섞여 있는 것이 매우 주목을 끌었다.

  다시 버스를 타고 서귀포에 도착하니 바다가 보이고 바람이 시원하다. 이것에는 정방폭포, 천지연폭포가 있는데 정방폭포는 세계유수의 해암폭(海岩瀑)으로서 폭포 소리와 바다 물결 소리의 합창은 지금도 귀에 쟁쟁하다. 천지연폭포는 상록(常綠)에 둘러싸여 있는데 한여름에도 서늘하다.
  폭포 아래에는 깊은 못이 있고 이 속에는 뱀장어가 많이 살고 있다. 다만 폭포 위로 다리가 보이는데 이것이 풍치를 크게 손상시키고 있어 눈에 거슬린다. 이 밖에 관광호텔은 가장 경치 좋은 곳에 자리잡고 있어 그 곳으로 발길을 재촉하게 한다.
  여기서 마이크로 버스를 타고 한라산 횡단도로를 달리니 오르면 오를수록 기후도 바뀌고 육지에서는 보지 못하던 고산식물을 볼 수 있고 또한 초원 일대에 몽고말과 소가 자유로이 풀을 뜯어 먹고 자라는 모습 등이 눈에 띄어 매우 엑조틱하다.

   다시 제주시로 돌아오니 서귀포와는 대조적으로 더운 바람이 불고 답답한 느낌이 든다. 그러나 저녁때에 서?? 가에 앉아 시원한 바람을 안고 전복을 먹는 맛이란 서울서는 상상조차 못할 일이 아닌가 싶다.
   다시 교육청과 방송국에 들러 교육감님과 오세박 방송국장님의 후의로 비장 중이던 제주도 민요 녹음 테이프를 복사한 후 다시 만날 날을 기약하고 한국의 하와이를 떠났다.

   바람 많고, 돌 많고, 여자가 많아 삼다(三多)로 알려진 섬!
   도적 없고, 거지 없고, 대문이 없어 삼무(三無)로 알려진 섬!
   언어의 보배, 식물의 보배, 바다의 보배를 갖고 있어 삼보(三寶)로 알려진 섬!
   이것이 바로 濟州島 아닌 濟州道이다. 그러나 나는 이번 여행을 통해 새로운 삼다(三多)르 느껴 보았다.
   민요가 많은 고장이므로 가다(歌多)요, 비석이 많은 고장이므로 비다(碑多)요, 학교가 많은 고장이므로 교다(校多)이다.
   다만 삼무(三無) 중에 거지가 없다고 하나 육지에서 건너온 거지 아닌 거지 즉 무전여행하는 학생들 또는 무슨 무슨 하기봉사대라는 이름 아래 민폐를 끼치는 학생들 때문에 하나의 사회문제가 되어 간다는 것을 내 눈으로 볼 수 있었던 것이 유감스러웠다.

   끝으로 이번 여행을 통해 200곡 이상이나 되는 제주도 민요를 녹음 수집하게 된 것을 기쁘게 생각하며 이것을 채보(採譜), 분석하여 제주도 민요와 육지의 민요와의 차이점, 제주도 민요 가운데 몽고, 일본 음악의 영향 등을 가려낼 것은 물론 나의 <교향곡 제6번>을 <탐라 교향곡>으로 작곡하기 위하여 온갖 진통을 겪어야 하겠다.

< 1966. 10. 여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