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집 2 '독백과 대화'
 

현실참여

나  운  영

   나는 시문학에는 문외한이다. 그런 탓으로 내 작품 가운데 예술가요가 적은가 보다. 그래도 <달밤> (김태오 작시), <가려나> (김안서 작시), <접동새> (김소월 작시), <별과 새에게> (윤곤강 작시), <당나귀> (조병화 작시) 등이 많이 불리는 것을 보면 어쩌다가 잘못해서 시와 곡이 잘 어울리게 된 것이 아닐까도 생각한다.
    사실 나는 성악곡보다는 기악곡을 즐겨 쓰는 편인데 그 까닭이 시를 이해 못하는 데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작곡하는 데 적합한 시를 발견하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즉 시 자체로서는 좋으나 곡을 붙였을 때에는 암만해도 어울리지 않는 것이 너무나 많은 것만 같다. 그럴 때마다 나에게는 시인들이 좀더 음악을 이해해 주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컸던 것이다.

    한편 나는 <건국의 노래> (김태오), <통일 행진곡> (김광섭), <내 고향> (노천명), <기다림> (박기원) 등 소위 국민가요를 제법 많이 쓴 편인데,  요즈음은 도무지 가사를 쓰는 사람이 없어 작곡을 할 수가 없으니 어쩌면 좋을지 큰 고민거리이다.  대중가요의 질을 높이려면 순수음악 작곡가들이 발벗고 나서야겠는데 매력있는 가사가 없으니 어떻게 작곡할 수가 있겠는가?  즉 시인은 많아도 가사를 쓸 줄 아는 사람이 적으니 이래가지고야 어찌 대중가요가 정화될 수 있을 것인가?  이런 뜻에서 나는 가사문학(?)의 필요성을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
   가사를 대할 때마다 내가 느끼는 불만 가운데 가장 큰 것은 첫째로 형식이다. 즉 누구나 천편일률적으로 7.5조 6행으로 쓰지만 말아 달라는 것이다. 혹 어떤 작곡가는 7.5조 6행이 아니면 작곡할 수가 없다고까지 말하는 모양이나 절대로 그렇지 않다. 7.5조 2행이면 곡조로는 일부분 가요형식(8소절)이 되고 7.5조 4행이면 이부분 가요형식(16소절), 7.5조 6행이면 삼부분 가요형식(24소절)이 되어 버릴 뿐만 아니라 서양 창가조를 면하기 어렵게 된다. 그러므로 나는 7.5조 보다는 4.4조, 3.4조(7.7절) 등으로 작사할 것을 권하고 싶다. 이렇게 되면 우리 민요풍으로 흥겹게 작곡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둘째로는 리듬에 대해서 좀더 유의해 주었으면 한다. 예를 들어 <통일 행진곡>에 있어서 1절이나 2절이나 글자 수는 여섯자이지만 「공산 오랑캐의」는 「2+4」이고 「이북은 부른다」는 「3+3」이니 이렇게 서로 어긋나는 리듬의 가사에 모두 잘 맞는 곡조를 쓰기란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셋째로는 너무 어려운 말, 낡은 말, 딱딱한 말을 피할 것은 물론이고 좀더 우리의 일상생활과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내용의 것이었으면 좋겠다. 예를 들어 막연히 계절을 노래한 가사보다는 소위 대중가요 모양으로 보편성이 있으면서도 매력이 있어야만 불리는 것이니 저속한 표현을 하지 않고도 얼마든지 부드럽고 명랑하게 혹은 감상적으로 쓸 수 있지 않은가? 이 밖에도 여러가지로 느끼는 바가 있으나 어쨌든 「맛」과 「멋」이 있는 가사라야만 좋은 곡조가 될 수도 있고 그래야만 일반에게 애창된다는 것을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 다시말해서 가사문학이 발달해야만 우리나라의 대중가요의 질이 향상된다는 것을 생각할 때 가사도 쓸 줄 아는 시인이 많이 나오기를 고대할 수밖에 없다.
   요즈음 대중가요가 날로 날로 저속해 가고 있어 크게 물의를 일으키고 있는데 그 저속성이란 비단 곡조나 창법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고 무엇보다도 가사에서 가장 뚜렷하게 나타난다. 예를 들어 <푸른 하늘에 침을 뱉아라>, <연애 영번지>, <내 고향 101번지>, <처녀 엄마> 등등은 그 제목부터가 퇴폐적이고 쎅시하니 그 가사의 내용이야 더 말할 필요조차 없지 않은가? 이런 노래를 즐겨 부르면서 어떻게 건전한 생활을 할 수 있을까? 이러한 저속하고 퇴폐적이고 음란하고 염세적인 가사로 된 대중가요를 없애고 명랑하고 건설적인 노래를 부르게 하려면 먼저 노래가 될 수 있는 가사를 쓸 줄 아는―음악을 이해하는 시인이 많이 배출되어야 할 것이다. 즉 대중가요 정화에 있어서 시인의 절대적인 협력이 요망된다.

    시인들이여!  가사를 쓰는 것을 통해 현실참여를 할 의사는 없는가?

  < 1969. 4. 월간문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