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집 2 '독백과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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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집 2집
 

여성과 피아노 교습소

나  운  영

    8.15 전만 해도 자녀들이 음악공부를 하겠다고 조르면 「풍각장이가 나오면 집안이 망한다」하여 학부형들이 극력 반대했었다. 더욱이 비교적 학업성적이 안좋은 학생들 중에서 주로 음악이니 미술이니 하는 소위 예능계통을 지망하려 드는 학생이 많았던 탓도 있어 학부형들의 반발이 매우 심했던 것은 무리도 아니다.
    그런데 6.25 후부터는 음악에 대한 인식이 바로 된(?) 탓인지 자녀들이 음악공부하는 것을 학부형들이 묵인하는 경향이 차차 생기더니 요즈음에는 도리어 자녀들이 고교 2학년쯤 되면 학부형들이 몸이 달아 음악공부를 강요(?)하다시피 하는 풍조가 생겼다. 특히 여성인 경우 피아노 쯤은 칠 줄 아는 것이 결혼조건 중의 하나가 된 듯한데 그래서인지 여성들 가운데 음대 피아노과를 지망하는 학생이 해마다 늘어가고 있으나 이것은 전적으로 반가운 현상이라고만은 할 수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왜냐하면 학부형들의 의도나 학생 장본인의 목적이 도대체가 피아노를 전공하려는 것만이 아닌 것을 알기 때문이다. 즉 피아노에 소질이 있어서 전공하려는 것이 아니라 여성으로서 적당한(?) 공부가 별로 없고 또 음대 피아노과를 겨우 졸업만 하면  결혼 후에 직장에 나갈 필요 없이 「내재봉소」 모양으로 「피아노 교습소」를 집안에 차려 놓고 집 보며, 아이 기르며, 손쉽게 벌어 먹을 수 있다는 자신이 서기 때문인 듯 하다. 한때 여자대학에 있어서 약학과의 입학 지원자가 가장 많았던 것과 요즈음 음대 피아노과를 선택하는 사람이 많은 것은 꼭 같은 이유라 해도 과히 망발은 아닐 것이리라. 그러나 자녀의 소질을 불문에 붙이고 「제2의 한동일」을 꿈꾸는 학부형들이 나날이 늘어만 가는데 이러한 족속들의 비위를 맞추려는 피아노 개인교수님(?)들이 많으니 딱한 일이다. 소나티네도 겨우 칠 줄 알까 말까 한 피아노 선생들이 베토벤이다 쇼팽이다 닥치는 대로 말로만 가르치는 것을 보면 그 교수법이 능란(?)한 데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시범연주를 들려 주지도 못하면서―아니 한번도 공부해 본 일조차 없는 곡을 말로만 권위있게 가르치는 것은 매우 신기한 일이라 하겠다. 이러한 무책임한 피아노 선생들이 날로 늘어 가기만 하는 까닭에 피아노 레슨을 받는 학생들은 많으나 올바르게 배우지 못하며 한편 음대 피아노과를 졸업하는 학생들은 매년 늘어만 가나 대학 졸업 후에도 계속해서  공부하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고 더욱이 연주활동을 하는 사람은 별로 보이지 않는 것이다. 우리나라 학부형들 중에는 남자는 장차 대통령이 되기를 바라고 여자는 장차 피아니스트를 만들려 드는 분이 아직도 상당히 많은 듯한데 이런 허황된 꿈을 언제나 버릴 것인지 ...
   자기의 일생을 좌우할 전공 선택에 있어서 학부형의 강요에 의하여 「완전 타의」로, 혹은 학부형의 설득에 의한 합의하에 「자의반 타의반」으로 전공을 택한 다음 자동적으로 대학을 졸업하고서는 직업의식에 사로잡혀 형식적인 개인교수님(?) 생활을 한다는 것은 그 당사자는 물론 우리 음악계를 위해서는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외국에 못지 않게 피아노가 대량생산되는 우리나라, 바이엘 교본이 가장 잘 팔린다는 우리나라, 피아노를 배우는 어린이가 많은 우리나라, 피아노를 배우려는 학생들보다도 피아노 개인 교수님(?)이 훨씬 많은 우리나라, 음대 피아노과 교수는 많아도 연주활동을 하는 분이 지극히 희소한 우리나라, 음대에 있어서 학생 수의 3분의 2이상을 여성이 차지하고 있는 우리나라―이것이 조국의 현실인가?
    음악을 취미로 삼는 것은 행복스러운 일이나 음악을 전공한다는 것은 고통스러운 노릇이다. 더욱이 「완전 타의」와 「자의반 타의반」으로 피아노 개인교수를 직업으로 삼으려고 음대 문을 두드리는 여성들에게 나는 한없이 동정이 간다.

 < 1965. 12. 여상 >